<이글은 합천군청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고 합니다>
합천군 심의조 군수님께.
<이 편지를 올리려고 군청 홈페이지를 둘러보았으나 마땅한 게시판 기능이 없어
서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저희는 합천군 적중면에 있는 원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군수님께서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공원이름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꾸려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
으로서 저희끼리 토론도 해보고 전체 회의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기도 했습니
다.
저희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닙니다. 저희
중에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든지, ‘삼청교육대’라든지,
‘언론탄압’, ‘자기 말 듣지 않는 사람을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 ‘부정하고 불의
한 돈 긁어모으기’, ‘세금내지 않기’ 등등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서 분노하는 친구
도 있고, 그냥 역사상식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
께서 일해공원을 세우려고 하시는 바람에 좀더 깊이 있게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습
니다.
군수님께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합천을 드높이기 위해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이자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군수님. 그러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다”하고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
다. 그러나 저희들은 전두환 대통령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들은 광주 금남로에서 도청 앞 광장에서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 사진도 봤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삼청교육대’에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들이 피
맺힌 절규를 하는 것도 보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억압하고 언론을 폭력으로 다스
린 것도 보았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말년에는 기업대표를 불러다가 협박
해서 수천억대의 돈을 긁어모아서 자기 호를 딴 일해재단을 만들려고 했고, 자기
는 “단돈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있으면서 툭하면 숨겨놓은
돈이 발각돼서 조사를 받는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
을 저지르면서도 사과는커녕 뻔뻔스럽게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군수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과거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더군
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신 군
수님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하고
요. 전두환 전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부모 형제를 잃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혹은 불구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요? 군수님도 그 사
람들이 다 빨갱이거나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희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국가가 법률로써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인정했
고, 따라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그 죄를 물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을 알
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인 듯 대대로 기리
게 될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여서 칭찬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혼란스러워 하
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국가가 맞는지, 군수님이 맞는지 도대체 어느 것
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고, 보아온 것들이 모두 군수
님 앞에서는 거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
니다. 그렇지만 군수님께서는 우리 생각과 ‘다른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명백히
‘틀린 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배우는 저희가 봐도 심각하게 틀린 일입니다.
군수님. 망월동 묘지를 가보셨는지요? 그 숱한 죽음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하
실 수 있는지요? 군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을 그 영령들은 어떻게 바라보실 거 같
은지요? 그 가족들은 또 어떤 생각이 들겠는지요? 어린 저희도 그 정도의 도리는
알겠는데 군수님은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요? 군수님. 광주는 우리의 조
국이 아닌지요? 군수님께서는 지금 하시는 일은 정의롭지도 않고, 오히려 지역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민의 대표이신 군수님께서 합천군민인 저희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서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말하기가 창피합니다. 군수님께서도 저
희 같은 손자나 손녀가 있을 테지요. 제발 생각을 바꿔주셔서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정말 간
절히 바랍니다.
2007년 2월 9일
경남 합천군 원경고등학교 학생을 대표하여
학생회 회장 정겨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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