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사르코지 동지' 호칭은 희대의 코미디"
[기고] 프랑스 대선에 대한 이명박·박근혜의 견강부회
[프레시안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주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승리한 것을 두고 국내 보수 유력후보들이 그와 닮은꼴을 강조하면서 12월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은 결코 가당치 않은 데다 사뭇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프랑스 사회가 일은 하지 않고 복지혜택만 누리는 이른바 '프랑스병'을 앓고 있어 유권자들이 위기의식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감세정책 등을 주장하는 우파의 후보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며 "우리의 국가적 상황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참 앞질렀다.
한국 보수세력들의 위험천만한 왜곡
대선행보에서 가장 먼저 선수를 치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사르코지 후보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보수의 기치와 실용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는 정신적 동지에게 축하 드린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성 후보의 패배가 아니라 우파가 승리한 것"이라며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확산될지 모를 '여성후보 한계론'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아무리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보수세력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지나칠 정도로 제멋대로다. 보수세력에서는 세계화의 물결에 반기를 들어 온 프랑스에마저 친미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적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열을 올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하듯이 따져 묻는다. 2007년 대선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선 반미와 친미, 무기력한 정부와 효율적인 정부, 방만한 복지와 일자리 창출, 반(反)기업정서와 친(親)기업정서, 하향식 평준화와 상향식 경쟁체제 등 이를테면 '무능한 좌파정권'과 '유능한 우파정권' 중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 즉 세계 최강인 미국의 가치에 굴종해야 하고, 마구잡이식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야 하며, 약육강식의 정글을 울창하게 만들기 위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명박의 견강부회 "사르코지는 나의 정신적 동지"
그런 이유에서일까? 자칭 '유능한 우파'인 이명박 전 시장은 한번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지구촌 반대편의 유능한 우파인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정신적 동지"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취임식 준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사르코지가 어떤 답신을 보낼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그가 한국적 우파의 실체를 감지했다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친애하는 이명박 씨, 단 한 번도 당신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저는 당신에게 대통령 자리는 효율성과 이윤추구를 최선의 목표로 내세우는 기업의 CEO 직과는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결코 약육강식의 세계화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당신과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 곳 프랑스에서 당신네 정도라면 아마도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 어른과 잘 통할 것 같군요. 솔직히 당신이 저를 '정신적 동지'라고 부른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퇴락하는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과연 프랑스는 병을 앓고 있는가? 또한 프랑스는 다시 부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로 선회하고 있는가? 사르코지의 당선을 친미정권의 등장으로 규정한 우리 보수언론은 사르코지의 승리를 계기로 프랑스 사회가 경제적 재앙의 치유를 위해 훨씬 더 미국적으로 개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들은 프랑스 현지의 전문가들과 언론에서조차 감히 언급하지 않는 '프랑스 경제의 재앙'을 아주 쉽게 내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프랑스가 퇴락하며, 궁극적으로 미국화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예로, 최근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양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 프랑스 사회가 미국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을 국가경쟁력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현재 프랑스의 생산성은 세계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좋으며 미국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노동자는 시간당 41.85달러를 산출했다. 이는 미국 노동자보다 시간당 3.02달러나 많이 생산하는 것이며, 7퍼센트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유러피언 드림>과 <노동의 종말>에서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시장에서 노동비용이 치솟게 되면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의 생산성은 주 35노동 시간도입 이후 오히려 높아져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삶의 질의 지표라 할 만한 의료수준은 어떠한가? 프랑스는 미국의 약 절반의 돈을 의료에 쓰지만 평균 수명은 더 길고, 유아 사망률은 더 낮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병을 얻은 우리의 재미교포가 치료를 위해 의료비가 천정부지인 미국을 피해 한국으로 오겠는가. 바로 며칠 전에는 걸프전쟁 등에서 부상당한 참전병들이 역시 비싼 의료보험료 탓에 적성국인 쿠바에까지 치료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지 않았는가? 이에 반해 유학생이나 주재원의 신분으로서 프랑스에 잠시라도 살다 온 사람들은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은 기억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의료비 폭증은 일반 가정은 물론 미국 경제와 정부의 재정능력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치체계가 심각하게 부패한 탓에 실질적인 의료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는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없다. 현재 재정적자를 안고는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으로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6% 수준을 맴돌고 있다. 지속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미국은 국내총생산의 25% 이상을 빚지고 있는 국제 채무국이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국제 채권국이다.
경제활동 인구층의 취업률은 미국보다 높아
또한 우리 보수언론은 거의 9%인 프랑스 실업률을 언급하면서, 프랑스병의 심각성을 지적하지만 이 또한 진실의 왜곡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학생층과 노령층을 제외한 실질적 경제활동 인구층인 25~44살의 취업률은 미국보다 사실 조금 높다. 그나마 젊은층과 노령층의 낮은 취업률은 대부분 프랑스 사회제도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젊은층의 경우 프랑스 대학 학비는 거의 무료이며, 대부분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에 비해 일할 필요가 훨씬 적은 것이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 노령 노동자들은 의료보장을 받기 위해서 일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 경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민자 실업률이 일부 지역에서 40% 가까이 달할 정도다. 프랑스는 이민자들을 자국 사회로 통합시키고 경제적 번영을 나누는 일을 제대로 해 오지 못했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지만 프랑스 이민계층을 통합하는 문제와 프랑스 경제체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사르코지 당선자가 '국민 정체성' 부처의 신설을 통해 이민계층을 통합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유럽통합 이후 프랑스는 유럽중앙은행 등 유럽연합(EU) 기관의 공동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에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자국의 실업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사르코지가 EU 정책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이다.
좀 더 정리하자면,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프랑스도 나름대로의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즉, 프랑스 경제는 우리 언론들이 위기를 운운할 정도의 재앙에 빠져든 것은 아니며, 많은 기준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결코 맹목적인 숭미적 신자유주의자 아니다
아울러 사르코지의 당선을 계기로 프랑스가 친미적 신자유주의의 국가로 빠르게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우리 보수언론의 어설픈 예측이다. 사르코지가 프랑스 정계에서 보기 드문 친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공약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보다는 보수주의적 사회·문화정책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느낌이다.
[프레시안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주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승리한 것을 두고 국내 보수 유력후보들이 그와 닮은꼴을 강조하면서 12월 대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아전인수식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은 결코 가당치 않은 데다 사뭇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보수언론들은 "프랑스 사회가 일은 하지 않고 복지혜택만 누리는 이른바 '프랑스병'을 앓고 있어 유권자들이 위기의식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와 감세정책 등을 주장하는 우파의 후보를 선택했다"고 평가하며 "우리의 국가적 상황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참 앞질렀다.
한국 보수세력들의 위험천만한 왜곡
대선행보에서 가장 먼저 선수를 치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사르코지 후보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보수의 기치와 실용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는 정신적 동지에게 축하 드린다"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여성 후보의 패배가 아니라 우파가 승리한 것"이라며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확산될지 모를 '여성후보 한계론'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아무리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보수세력들의 아전인수식 해석은 지나칠 정도로 제멋대로다. 보수세력에서는 세계화의 물결에 반기를 들어 온 프랑스에마저 친미 우파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적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열을 올린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강요하듯이 따져 묻는다. 2007년 대선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선 반미와 친미, 무기력한 정부와 효율적인 정부, 방만한 복지와 일자리 창출, 반(反)기업정서와 친(親)기업정서, 하향식 평준화와 상향식 경쟁체제 등 이를테면 '무능한 좌파정권'과 '유능한 우파정권' 중 누구를 택해야 하는가? 즉 세계 최강인 미국의 가치에 굴종해야 하고, 마구잡이식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야 하며, 약육강식의 정글을 울창하게 만들기 위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권'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명박의 견강부회 "사르코지는 나의 정신적 동지"
그런 이유에서일까? 자칭 '유능한 우파'인 이명박 전 시장은 한번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지구촌 반대편의 유능한 우파인 사르코지 당선자에게 "정신적 동지"라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취임식 준비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쁠 사르코지가 어떤 답신을 보낼지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그가 한국적 우파의 실체를 감지했다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싶다.
"친애하는 이명박 씨, 단 한 번도 당신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저는 당신에게 대통령 자리는 효율성과 이윤추구를 최선의 목표로 내세우는 기업의 CEO 직과는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결코 약육강식의 세계화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당신과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 곳 프랑스에서 당신네 정도라면 아마도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 어른과 잘 통할 것 같군요. 솔직히 당신이 저를 '정신적 동지'라고 부른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퇴락하는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
과연 프랑스는 병을 앓고 있는가? 또한 프랑스는 다시 부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로 선회하고 있는가? 사르코지의 당선을 친미정권의 등장으로 규정한 우리 보수언론은 사르코지의 승리를 계기로 프랑스 사회가 경제적 재앙의 치유를 위해 훨씬 더 미국적으로 개조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들은 프랑스 현지의 전문가들과 언론에서조차 감히 언급하지 않는 '프랑스 경제의 재앙'을 아주 쉽게 내뱉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프랑스가 퇴락하며, 궁극적으로 미국화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예로, 최근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양한 통계 자료를 인용해 프랑스 사회가 미국보다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생산성을 국가경쟁력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현재 프랑스의 생산성은 세계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좋으며 미국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02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노동자는 시간당 41.85달러를 산출했다. 이는 미국 노동자보다 시간당 3.02달러나 많이 생산하는 것이며, 7퍼센트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유러피언 드림>과 <노동의 종말>에서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시장에서 노동비용이 치솟게 되면 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의 생산성은 주 35노동 시간도입 이후 오히려 높아져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삶의 질의 지표라 할 만한 의료수준은 어떠한가? 프랑스는 미국의 약 절반의 돈을 의료에 쓰지만 평균 수명은 더 길고, 유아 사망률은 더 낮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병을 얻은 우리의 재미교포가 치료를 위해 의료비가 천정부지인 미국을 피해 한국으로 오겠는가. 바로 며칠 전에는 걸프전쟁 등에서 부상당한 참전병들이 역시 비싼 의료보험료 탓에 적성국인 쿠바에까지 치료여행을 떠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지 않았는가? 이에 반해 유학생이나 주재원의 신분으로서 프랑스에 잠시라도 살다 온 사람들은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은 기억을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의료비 폭증은 일반 가정은 물론 미국 경제와 정부의 재정능력을 위협하고 있지만 정치체계가 심각하게 부패한 탓에 실질적인 의료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와 달리 프랑스는 아직까지 이런 문제가 없다. 현재 재정적자를 안고는 있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2% 수준으로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의 6% 수준을 맴돌고 있다. 지속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미국은 국내총생산의 25% 이상을 빚지고 있는 국제 채무국이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국제 채권국이다.
경제활동 인구층의 취업률은 미국보다 높아
또한 우리 보수언론은 거의 9%인 프랑스 실업률을 언급하면서, 프랑스병의 심각성을 지적하지만 이 또한 진실의 왜곡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학생층과 노령층을 제외한 실질적 경제활동 인구층인 25~44살의 취업률은 미국보다 사실 조금 높다. 그나마 젊은층과 노령층의 낮은 취업률은 대부분 프랑스 사회제도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젊은층의 경우 프랑스 대학 학비는 거의 무료이며, 대부분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있다. 미국 대학생들에 비해 일할 필요가 훨씬 적은 것이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 노령 노동자들은 의료보장을 받기 위해서 일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 경제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민자 실업률이 일부 지역에서 40% 가까이 달할 정도다. 프랑스는 이민자들을 자국 사회로 통합시키고 경제적 번영을 나누는 일을 제대로 해 오지 못했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지만 프랑스 이민계층을 통합하는 문제와 프랑스 경제체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사르코지 당선자가 '국민 정체성' 부처의 신설을 통해 이민계층을 통합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유럽통합 이후 프랑스는 유럽중앙은행 등 유럽연합(EU) 기관의 공동정책에 절대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탓에 개별 국가 차원에서 자국의 실업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사르코지가 EU 정책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이다.
좀 더 정리하자면,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이 프랑스도 나름대로의 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즉, 프랑스 경제는 우리 언론들이 위기를 운운할 정도의 재앙에 빠져든 것은 아니며, 많은 기준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결코 맹목적인 숭미적 신자유주의자 아니다
아울러 사르코지의 당선을 계기로 프랑스가 친미적 신자유주의의 국가로 빠르게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우리 보수언론의 어설픈 예측이다. 사르코지가 프랑스 정계에서 보기 드문 친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공약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보다는 보수주의적 사회·문화정책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느낌이다.
이를 확인하듯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끝난 지난 달 22일 밤 1위를 차지한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는 힘찬 목소리로 대국민 감사 연설에서 "국민을 폭력·범죄와 함께 '기업 해외 이전'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세계화에 따른 자국 내 일자리 감소를 염두에 둔 말이겠지만, 사기업이 생존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을 폭력·범죄와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결코 신자유주의의 맹신자가 아님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사르코지의 연령별 최대 지지층은 60살 이상이다. 이들은 종신연금의 혜택을 누리는 계층으로 보수주의의 텃밭이다. 계층별로는 수공업자와 소상인의 82%가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이들이 대자본을 대변하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질서와 권위를 위한 보수주의 중에 무엇을 선호하는지는 뚜렷해 보인다. 이처럼 가장 보수적 연령과 계층에서 사르코지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를 숭미적 신자유주의자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세계의 여타 국가들처럼 프랑스는 지금 변화가 절실한 시점에 있다. 특히 우파 집권 12년 만에 실업률은 높고 국가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청년층과 이민자·실업자 등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통적 이념정치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 투표율이 84%나 된 것은 참여민주주의의 승리라기보다 국민들의 불안과 기대를 반영한다.
하지만 선택의 폭은 좁았다. 우파정권의 실책이 주요 논쟁의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 새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자리에 시장의 힘,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사르코지가 밀고 들어왔다. 그가 말하는 '강한 프랑스'는 잘 짜인 구상이라기보다 불안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한 충격요법의 성격이 강하다. 그는 공약에서 과거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과의 협력강화를 약속하고, 재산세·상속세를 내리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며, 복지 축소를 내세웠지만, 프랑스적 제도의 기본적 철학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이번 대선에서 주간 35시간 근무제나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에서 변화를 주장하지만 감히 이의 폐지를 약속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가 법인세 인하와 공공부문의 개혁을 약속하고, 비행청소년과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반대하는 등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낸 것은 마치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영국 총리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르코지가 나름대로 진단한 프랑스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이지, 미국을 추종하기 위한 맹목적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아닌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색채는 이미 20년 전 좌파정부 때부터 시작돼
설사 사르코지의 색채가 신자유주의라고 해도,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요소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대선이 아니라 1982년 사회당·공산당 연합정권의 출범 때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좌파 연정은 프랑스에서의 일국 사회주의와 세계적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한 적응이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그 이후 프랑스는 속도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적어도 경제 영역에서는 시장원칙을 확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유럽연합(EU)의 통합정책이 경제부문의 개방화, 자유화, 경쟁강화를 기본 전제로 삼고 있는 만큼 EU통합의 리더국가인 프랑스의 신자유주의적 변화는 당연한 일이었다. 제2차 동거정부(Cohabitation)를 구성한 좌파내각인 리오넬 조스팽 정부조차도 집권 4년 동안(1998-2002년), '유럽화'(europeanisation)란 또 다른 이름의 '변종 세계화'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도 프랑스의 조세 부담률은 여전히 좌익적
그러나 프랑스 사회가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방향으로 부분적 변화를 이뤘다고 해서 앵글로 색슨형의 시장사회로 돌변했거나 앞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논리적 비약이다. 프랑스의 조세 부담률은 40%대로 여전히 30%대의 영국이나 20%대의 미국보다 현저히 높으며, 그런 점에서 기껏 20.6%(2006년)에 불과한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사회주의적 국가다.
사르코지의 대선 공약대로, 5년 뒤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 부담률을 4% 포인트 줄인다고 해도 프랑스는 여전히 영국이나 미국보다 훨씬 사회주의적 사회임이 틀림없다. 그런 프랑스의 사르코지를 두고서, 이명박 전 시장이 '정신적 동지'라고 운운한다면 '오뉴월에 오수(午睡)를 즐기던 개도 웃지 않을까'? 과거의 김대중 정권과 현재의 노무현 정권을 두고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이명박 전 시장은 입만 열면 '두 좌파 정권'의 복지정책이 세금 증가로 이어져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도대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어느 수준인줄 알고나 말하는 건지 의문이다.
어디 이명박뿐이랴? 박근혜 전 대표도 그렇거니와 보수 우익 세력들은 기회만 있으면 작금의 복지제도를 퍼주기라고 매도하면서 세금감면 등 기업 활동의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육박하는 국가들 가운데, 우리 보다 낮은 조세 부담률을 기록하는 나라가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들이 국민들에게 당장 확실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며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기 보다는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나 일자리를 잃은 국민들을 보듬는 게 우선 순서일 것이다.
우리 보수세력들이 사르코지의 복지삭감 주장에 환호하면서 자신들의 반(反)사회적 정책을 정당시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넌센스다. 사르코지가 유권자들에게 "영국의 좌파가 실천하고 있는 것을 프랑스의 우파가 제안하는 용기를 가질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듯이, 실제로 프랑스 우파는 영국 좌파보다 더 좌익적이다.
프랑스대선 결과에 대한 국내 보수우파 세력의 견강부회적 해석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의 진보세력마저 냉철한 분석에 앞서 부화뇌동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진보세력의 한탄과 넋두리가 순전히 국민들의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천만다행이겠지만, 자칫 이로 인해 반(反)보수·우파 전선의 많은 이들에게 자괴감과 패배감을 안겨주지 않을까 두렵다. 지구 반대편의 역풍이 이곳에 다다를 때쯤 자주 순풍으로 바뀌는데 2007년의 대선 바람이 어떠할지 모를 일이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www.knsi.org)의 현안진단 80호 "사르코지 당선은 숭미적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미래의 불안감과 기대감의 표출!"(5월 15일)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편집자>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주간 (anotherway@pressian.com)
'세상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집회가 짜증난다고요?" (0) | 2007.06.07 |
---|---|
사르코지 당선의 의미와 한국인의 오해 (0) | 2007.05.17 |
위험한 한국사회 (0) | 2007.04.19 |
돼지의 한 평생 (0) | 2007.04.10 |
인간과 하이에나가 함께 사는 비밀의 도시 (0) | 2007.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