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눈 쌓인 탄광촌에 가보았는가, 황재형《쥘흙과 뉠땅》

소한마리-화절령- 2008. 1. 3. 15:43
눈 쌓인 탄광촌에 가보았는가

 

[전시리뷰] 황재형《쥘흙과 뉠땅》

2007-12-05 오후 6:03:44         
[ 이메일보내기 김해진 기자
황재형의《쥘흙과 뉠땅》展이 내년 1월 6일(일)까지 평창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사진은 <쌍굴다리 퇴근시간>, 145.5x227cm, 2000초겨울, 캔버스에 유채.
▲ 황재형의《쥘흙과 뉠땅》展이 내년 1월 6일(일)까지 평창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펼쳐진다. 사진은 <쌍굴다리 퇴근시간>, 145.5x227cm, 2000초겨울, 캔버스에 유채.

겨울이다. 황재형의 《쥘흙과 뉠땅》이 펼쳐진 가나아트갤러리 안쪽도 스산한 겨울이다. 쌓인 지 오래되어 흙과 하나 되어 누워있는 눈(雪). 태백 탄광촌의 구석구석에 스민 그늘과 햇빛 속에서 그 눈의 정경이 유달리 눈에 밟힌다. 전시가 시작되는 날이라 전시장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지만, 그림 속 인적은 드물다.

지난 4일 문을 연 황재형의《쥘흙과 뉠땅》展이 내년 1월 6일(일)까지 평창 가나아트갤러리에서 펼쳐진다. 1991년 이후 16년 만에 여는 황재형의 개인전이다. 태백의 장엄한 경관을 담은 8미터 길이의 대형 풍경화를 비롯한 60여 점의 회화작품에 태백과 함께 살아 온 그의 옹골진 시선이 담겨 있다.

1층에는 주로 눈 쌓인 탄광촌의 모습이 펼쳐진다. 조용하고 차갑다. <쌍굴다리 퇴근시간>, <선탄장>, <침설>, <탄천의 노을> 등의 작품에서 눈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참동안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탄광촌의 쓸쓸하고 지리한 시간을 생각한다. 그 시간은 한 마을의 생(生)과 사(死)를 아우르는 응축된 시간이다. 황재형이 그린 그림들에서 ‘눈’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시계바늘처럼 더디고 꾸준하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땅을 바라보며 눈길을 걷는 사람들. <쌍굴다리 퇴근시간>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작고, 화폭 한가운데 굳건히 자리 잡은 쌍굴다리 아래는 깜깜하다. 이제 막 다리 밑을 벗어나는 사람들의 뒷덜미에 무거운 어둠이 매달려있다. 반대 방향으로 저만치 멀어져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그림에서 가장 환한 빛이 어려있다. ‘저만치 먼’, 빛과의 거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뻐근하다. 우중충한 하늘, 앙상한 나무가 이 그림을 더욱 묵직하게 만든다. 눈처럼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무게’ 속에서 몇 남지 않은 탄광촌의 사람들은 속속들이 외롭다.  

2층에서는 ‘정체된 시간’이 더욱 도드라진다. <정지된 시간>, <출근>, <저녁에>, <버려진 집>, <탄길>, <시간의 두께>, <떠나온 집> 등에서 풍경은 생동하지 않고 멈춰있다. 어느 관람객은 <출근>이라는 작품 앞에서 “출근길에 왜 사람이 없지?” 혼잣말을 한다. 사람이 없는 길, 그러나 사람과 차가 지나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길. 그림 앞에서 작가 황재형이 바라보았을 을씨년스런 폐광지역, 태백의 황지를 생각한다. 헛헛한 길 저 편에 서 있는 붉은 빛 풀이 바람처럼 지나갔을 사람들처럼 휘청거린다.            

<출근>, 65x91cm, 2003늦가을, 캔버스에 유채

버려진 집들은 스러져간다. <떠나온 집> 앞에 도착한 관람객들이 그 집을 들여다본다. 이미 나무 울타리는 비스듬히 꺾였고 부서진 나무판자와 스레트는 함부로 뒹굴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화폭 아래 덧대어진 실제 각목에는 녹슨 못이 박혀있다. 벗겨진 나무칠과 낡은 플라스틱, 삐져나온 못 꼬리. 미술의 밀도 높은 질감이 덩그러니 버려진 집들을 다시 불러내 사람들과 가까이 다가붙게 만든다. 황재형은 그렇게 현실의 ‘스러져가는 한 구석’을 짙은 흙빛으로 다시 떠오르게 만든다.

그림들에는 유화물감뿐만 아니라 흙과 석탄 등의 혼합재료가 함께 쓰였다. 작가가 1983년 가족과 함께 태백의 황지에 터를 잡은 이래 24년이 흘렀고, 흙과 석탄은 작가에게 ‘쥘흙’이 된 셈이다. 대형 도시락통에 석탄을 담아 설치한 작품을 광주비엔날레(2002년)에 출품해 광부의 삶에 대한 진한 사실주의 시각을 선보였던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태백’이라는 공간을 더욱 넓게 조망한다. 이제 ‘뉠땅’은 어디인가. 태백을 다시 호명하는 그림들은 ‘과거’와 ‘현재’의 농도를 강하게 기억하면서 이제 미래를 환기시킨다.

『샘터』 85년 8월호에 실린 작가노트에서 황재형은 탄광촌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돌아오는 길은 떠나올 때보다 더 참담해진 마음이었으나 도시의 기생적인 삶에 익숙해진 탓으로 돌렸다. 그 잠시의 경험으로 작품을 시도했지만 광부의 작업복을 통해서는 광부의 작업복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 남들이 보지 않는 변소에서 눈물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때 자신의 미래를 태백선에 실었던 모양이다.

황석영 소설가는 그의 작품들을 보며 이런 감흥을 전한다. “나는 (그림에서) 지금의 세계를 본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서 동유럽까지의 수많은 마을과 거리들에서, 그리고 미국의 한복판 디트로이트 시의 외곽에서 나는 자본의 욕망이 남긴 거대한 폐허들을 보았다. 철수해버린 공장에는 잡초만 자라고 무너져가는 판자집의 계단에 일자리를 잃은 흑인 젊은이들이 건들대고 경찰차는 인적 없는 도심지를 공연히 쏘다닌다. 짓이겨진 자연과 사물의 모습은 그 쓸쓸함과 황량함이며 슬픔이 너무도 닮았다. 그는 이미 ‘세계의 현실’ 한복판에 서있다.”

 

<떠나온 집>, 98x174cm, 1994겨울,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싸래기 눈>, 182x227cm, 2006봄, 캔버스에 유채
<탄길>, 89x225cm, 1998가을,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광부초상>, 65x53cm, 2002여름, 캔버스
<저당잡힌 풍경>, 162x254.3cm, 1993겨울, 캔버스에 유채
<저녁에>,112x162cm, 2001겨울, 캔버스에 유채
<허물린 산>,130x162cm, 2002겨울, 캔버스에 유채
<식사>, 91x117cm, 1985가을, 캔버스에 유채
<산>, 80x230cm, 2004봄, 캔버스에 흙과 혼합재료
<새벽눈>, 41x53cm, 1998겨울, 캔버스에 유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