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사북으로 돌아가다9

소한마리-화절령- 2006. 4. 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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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서울을 다녀 온 후 이틀인가 야간 작업조 일을 하고 돌아온 시각이 5월 8일 오전 9시 반 가량이었다. 집에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침 10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을 것이다. 아직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이고 현장에서 틈틈이 자둔 것도 있고 해서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나니 오후 2∼3시경이었다. 3시쯤 일어나 점심을 먹고 방을 뒹굴며 신문과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고 잠시 후 삐걱이는 대문 소리가 나더니 두어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방문 앞에 멈춰 서서 사람을 찾는다. 안방에 있던 인택 형님이
"누구요?"라며 나가는 기척이 들린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여기가 황인오 씨 댁입니까?" 하고 묻는다. 누군가 싶어 내다보려는데 형님이 먼저
"아, 회사에서 오셨군요, 어제 인오가 집에 일이 있어서 출근을 못했지요. 지금 교회에 갔는데 들어오는 데로 회사에 연락하라고 하지요. 일부러 찾아왔는데 죄송합니다" 라는 게 아닌가. '아니 내가 어제 회사에 다녀왔고 방안에 있는 걸 알면서 무슨 소리지' 싶어 일어나 나가보려는데 낯선 목소리의 남자가
"아, 그래요. 그럼 이따가 다시 연락하지요"하며 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린다. 곧 방문이 열리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 형님에 내게
"빨리 옷 입고 준비해, 임마. 너 잡으러 왔어" 하며 서둔다.
"내가 급하게 둘러댔지만 탁 보니 형사들이다. 얼른 준비해서 사북을 빠져나가거라"라면서 나를 재촉한다. 묻고 답할 틈도 없이 나도 얼른 옷을 입고 주머니에 있던 약간의 현금과 형님이 챙겨주는 몇 만원을 받아들고, 역시 하얗게 질린 얼굴의 형수와 인혁, 인욱 등 동생들을 뒤로하고 형님과 함께 집을 나섰다. 형님이 앞장을 서서 행여나 아는 형사나 누군가와 조우하지 않도록 살피려는 것이다.

 

 앞장 선 형님이 어디서 들었는지 역에는 정보과 형사들이 깔렸고 역만이 아니라 광업소와 사택마다 형사들과 정보요원들이 깔렸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동안의 채증작업을 통해 체포대상자로 200 여명의 노동자와 부인들을 특정해 놓은 것이다. 디데이로 정한 간밤에 수백 명의 계엄 합수단 소속 수사관들이 현장과 사택에서 일제히 체포했다는 것이다. 다만 내 경우는 직영이 아닌 사북에서도 산간오지의 덕대에 근무하고 있어서 소재파악이 조금 늦어 간발의 차이로 체포에 실패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200명이 넘은 체포대상자중에 놓친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버스를 탔던가, 형님의 친구가 모는 택시를 탔는지 기억이 정확치 않으나 고한으로 올라가 열차를 탄 것이 맞아 떨어졌다. 사북을 빠져나간다면 제천, 서울로 가는 길목인 증산역을 이용하리라는 경찰의 계산을 역이용하여 무사히 사북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고한 역으로 가서 거기서 오후 5시쯤 제천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일단 체포는 모면하고, 결과적으로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의 최일선에 좀 더 앞당겨 투신하게 된 것이다.

 뒷날 80년대와 90년대 말까지 나는 물론이고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학내외 사건으로 인혁, 인욱 두 남동생 등 삼 형제가 번갈아 감옥을 드나들면서 부모님과 가족의 애간장을 태우던 때에도 집안의 장남으로 의연한 버팀목이 되어 준 인택 형님. 그때에도 역시 동원탄좌의 보안감독으로 일하면서 내가 없는 지난 2년 동안에도 집안을 꾸려온 형님은 그때 그 순간 어떻게 그들이 나를 잡으러 온 형사들인 것을 알았을까? 어떻게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마치 준비된 대사를 외우듯 침착한 태도로 형사들을 따돌릴 수 있었을까? 평소에 정치, 사회문제에 집중적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다른 무슨 비행(非行)으로 경찰서 한 번 드나들지 않은 형님이. 그 때 형님의 기지(機智)가 아니었으면 그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경찰관 살해범이라는 상상도 못할 혐의로 인해 나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한 두 개인의 의도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정돈(整頓)을 위한 격동을 겪는 중이 아니었던가? 그 시절의 소용돌이의 배후에서 시대와 인간을 지배하던 광기와 증오의 물결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곧이은 광주와 삼청교육의 미친 열기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이성을 잃은 역사의 거세 찬 소용돌이 속에서 한 낱 탄광부에 지나지 않는 목숨 하나쯤 사라진다 해도 그뿐, 누가 어쩌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목이 서늘해지는 그 때, 형님은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형사라는 것을, 아우인 내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을 간파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