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북으로 돌아가다.

사북으로 돌아가다8.

소한마리-화절령- 2006. 4. 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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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만 4일 동안의 해방구, 총파업이라고 부르기에는 비조직성과 무계획성이 두드러지는 사북사태가 일단락 되었다. 아직 4일간의 해방구의 자유를 채 잊지 못한 일부노동자들의 일탈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회사와 지서를 다시 인수한 회사측과 경찰 측도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사태가 종결되고 공수부대가 철수한 24일부터 신문 방송의 보도태도가 일변하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이수많은 무기와 폭약을 수중에 넣고있다는 등 폭력성에 촛점을 맞추며 거품을 물고 불안감을 부추기던 언론이었다. 이제는 갑자기 탄광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생활조건과 근로조건 등을 보도하면서 복지대책의 미흡을 지적하는 등 간살을 떨기 시작하였다. 신민당과 통일당 등 야당과 정부 합동 대책반 등 각 단위의 조사단도 한꺼번에 몰려와 그럴듯한 대책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사태 종결후 공식적인 정부 대책반과는 별도로 사태의 원인과 향후의 종합적인 에너지 및 노동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정부 합동조사단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행정기관과 광업소를 통해 지역내 사정을 청취, 수집하고 각 계층 사람들을 면담하였다. 그 때 누군가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우연한 조우였는지 모르지만 이들 정부합동조사단을 만났다. 동료 청년회원인 노동자 3명과 조사단장인 박창규 노동청 차장, 조사단의 사실상 리더로 보이는 당시 경제기획원 과장으로 지금은 미국으로 도피중인 전 정보통신부장관 이석채 씨를 비롯한 고위 공무원 5명이었다. 그때는 많은 재야 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름대로 고무되어 있던 터이고 일단은 사태에서 승리한 처지이어서 약 3시간 동안의 면담을 통해 탄광노동자에 대한 당국의 대책에 대해 열변을 토하였다.

 

 정부측과 합의안을 체결할 당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았지만 그게 어디 그렇게 순진하게 믿어도 좋은 것일까? 어쨌든 경찰관이 죽고 온 나라를 뒤흔든 사건을 그냥 넘어갈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태의 여진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며칠이 지나도록 검거선풍은 불지 않았다. 아마도 검거대상자를 특정할 채증작업의 방대함과 함께 너무 서둘면 자칫 2차 소요를 유발할지도 모른다는 당국의 뒤늦은 사려가 있었음직하다. 광업소가 정상적으로 재가동한 것은 사태 발생 만 1주일이 지난 28일경부터였다.

 

 

 며칠간의 긴장된 평온이 유지되고 광업소도 정상 가동하기 시작하였고 행여나 하던 경찰도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나도 긴장을 늦추고 다시 회사로 출근하였다. 설령 검거선풍이 분다고 하여도 나에게 어떤 영향이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나는 이 사태가 발생하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몇 명의 경찰관의 목숨을 결정적으로 구해 주기까지 했으므로 이를 입증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태 종결 후 몇몇 방송 인터뷰에 응하여 방송된 일이 있어서 행여나 그 일로 당국의 주목을 받지는 않을까 염려는 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며 힘찬 발걸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더구나 사태 기간 중에 그리고 사태 종결 후 방송인터뷰에서 보여 준 태도를 높이 산 동료 노동자들이 직선제로 바뀌게 될 노조 지부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물론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 핵심 노동자를 의식화, 조직화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사기를 북돋우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얼마간의 여유를 되찾아 지난 사태의 경험을 거울삼아 본격적인 목적의식적 노동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그 동안 알게 된 서울 등지의 선진적인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구체적 연계와 지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정상조업에 들어가고 첫 휴일인 5월 첫 일요일에 서울에 올라가 예의 청계피복노조의 민종덕 사무장과 이소선 어머니, 천주교의 정인숙 씨와 JOC 관계자들, 통일사회당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 때 JOC를 방문하면서 아리랑모사, 대동화학 등의 사업장에서 쟁의를 벌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만났는데 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였다. 20살을 겨우 넘겼을 젊은 여성 노동자들이 벌써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신과 동료들의 권익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나는 그 동안 무얼 했다는 말인가 하는 자괴감을 느끼며 사북으로 돌아가 더욱 열심히 일하고 조직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게 되었다. 정인숙 씨의 주선으로 노총 위원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중인 동일방직 노동자들을 방문하면서 그간의 내 지향이 탄광노동자로서의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었음을 반성하고 지난 세월을 보속하기 위해서라도 탄광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시금 작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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