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를 보수가 말하다④>"보수우파 불협화음, 설치는 정치꾼 때문"
데일리안 | 기사입력 2008.10.30 09:04
[데일리안 변윤재 기자]
"보수우파가 관변단체나 하면서 정부 눈치만 볼 거라고요? 우리가 지난 10년동안 비판해 왔던 게 진보좌파의 그런 행태였습니다. 몇몇 단체가 그런 기미가 보일 순 있겠죠, 그건 개별 혹은 특정단체의 일입니다. 섣불리 일반화시키지 말아주세요." 23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찬성 운영위원장(55)은 꽤 신랄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 보수가 보수를 말한다 > 인터뷰 중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이었으며, 거리낌없이 말을 이어갔다. 간혹 말을 한 뒤 "이건 곤란한 내용인 것 같다"고 '비보도'를 요청할지라도 일단 '해야 하는' 말을 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박찬성 위원장은 정통보수 진영에서도 '강경파'로 꼽힌다. 인공기를 불태우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노골적인 비난을 하는 그는 뼈 속까지 반공과 안보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스며있는 인물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선 안 된다´는 것은 박 위원장의 신조. 북한의 핵은 폐기돼야 하고 북한 김정일 정권은 '독재정권'으로 동등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햇볕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북유화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한다.
이처럼 '반북 반김정일' 성향의 박 위원장이 지난 5년 '반노무현' 행보를 걸었던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박 위원장은 보수우파 진영의 시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낸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수구꼴통 집회에 누가 모이냐' '일당 받고 모이는 사람뿐'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에 반박이라도 하듯 3.1절 국민대회, 6.25 국민대회 등 대형 집회들을 이끌었고, 2004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에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과 함께 '30만' 인원을 동원하는데 역할을 했다.
1996년 과소비추방운동본부를 이끌고 탑골공원 앞에서 '외제담배 불매'를 주장하며 외제담배를 쌓아두고 불을 질러 화제가 됐을 당시만 해도 박 위원장은 '열혈 시민운동가'였다. 그러나 이후 보수우파의 색을 분명히 하며 '인공기 화형식'을 하고 '선군정치 타도'를 주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는 모습은 진보좌파의 비난을 받았다. 그들에게 박 위원장은 반골기질이 강한 끈질긴 '안티'세력이자 반공정신이 투철한 '수구꼴통'일 뿐이었다.
일부 진보좌파 언론은 '불분명한' 과거를 문제삼는가 하면 '어용운동가' '기회주의자' 등으로 몰며 '고결한' 자신들과 차이를 강조했다. 박 위원장의 진의는 끊임없는 의심의 대상이었고, 그의 시위는 매우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행동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통보수의 평가는 다르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챙긴다' '투쟁이나 행동할 때 선봉장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우직한 인물'이라는 게 박 위원장에 대한 정통보수 진영의 평가다.
박 위원장은 "앉아서 연구하는" 사람들과 달리 "실천하고 행동하는" 보수우파에 속한다. 불가피하다면 물리적 충돌도 생길 수 있고, 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 모든 일에는 시비를 가려야 하고 그 기준은 '대한민국' 그리고 '헌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 위원장의 논리는 때로는 강경한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촛불집회가 미국산 회고기 수입에서 KBS 등 공영방송으로 의제가 옮겨간 뒤인 6월, KBS 앞에서 맞불집회를 하며 촛불집회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에 왼쪽 눈을 맞아 수술을 받았다.
"내가 무서웠으면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겠습니까. 비난한다 해도 괜찮아요, 각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진보좌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상당히 오버하는' 보수인 박 위원장은 지난 4개월 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보수우파의 야성'이라고 하면 으레 손꼽혔던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침묵'할 뿐이었다.
'야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하자 박 위원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무서운 게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침묵이에요.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너무 화나고 실망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걸 두고 언론에서는 '보수우파 정부라고 해서 봐 준다'는 식으로 표현하더군요. 감싸주고 봐줄꺼면 촛불집회 때 했어야지, 지금 이러는 게 봐주는 겁니까?"
이 대목에서 박 위원장의 목소리 톤은 살짝 높아졌고 얼굴은 씁쓸함 반 실망 반이었다. 박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의 출마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새마을운동처럼 제2의 도약을 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비추면서도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국가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것에 대해 너무 뜸을 들였습니다. 밥도 뜸을 많이 들이면 맛이 떨어져요. 이 대통령은 이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는 현실이고 모든 이를 충족시키는 최고보다 최선의 것을 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좌우를 모두 만족시켜려 했어요. 한국 근현대사 수정도 조속한 시일 내에 과감하게 추진했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여론 살피고 전교조 눈치보며 머뭇거리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확대됐습니다."
박 위원장은 특히 이 대통령의 '실용'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실용에 대한 보수우파의 비판은 공통적인 것이다. '실용은 이념도 정치철학도 아닌 위장술'이며, 이념사상적인 빈곤함을 '경제성장'과 '실용'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
박 위원장은 "대통령은 국가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대통령부터가 방향을 모르고 헤매고 있으니, 국민이 선뜻 따라가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겠느냐"며 "보수우파적인 정체성을 구현하는 게 무엇인지, 정책적 측면에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우파라고 했던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의 노력이나 열정에 대통령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촛불집회의 의제가 정치화된 이후에도 보수우파, 특히 정통보수에서 조용히 있었던 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가 바라는 건 국가정체성 및 정통성 확립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 강화였으나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은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통보수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이나 태도는 다소 부정적인 편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정통보수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내 편이 돼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싸웠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이 대통령을 감싸안아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시청 앞에서 집회가 있으면 나이 50, 60 이상의 분들이 자비를 들여서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그렇게 시내까지 나옵니다. 식당에 1만원짜리 밥 차려놓고 나오라고 사정해도 안 나오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그런데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참여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표를 줘서 대통령이 됐다는 걸 이 대통령은 잊었나 봅니다."
"대통령이 좌파를 향해 윙크하며 우파의 밥상에 앉았다는 푸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던 박 위원장은 "10년 동안 '없는 사람' '모난 사람' 취급받았어도, 그게 이 대통령이 정통보수를 외면하고 배려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고 말했다. 말투에선 섭섭함이 묻어났다.
'정통보수에 대한 배려'는 참여정부식의 정부 참여와는 다르다. 참여연대 출신들이 정부 산하 위원회 등에 '낙하산' 인사로 내정되면서 참여연대는 정권과 운명공동체가 됐다. 객관성과 중립성에서 위협받았고, 시민단체로서의 신뢰도도 낮아졌다.
박 위원장은 "보상을 해달라는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친북좌파에게 훼손된 부분은 복원하고 사회 각 분야에 침투된 이들 세력을 정리해달라는 것이다"며 "제2연평해전과 건국 60주년 이외에는 미진하다"고 말했다.
"정통보수는 '정권을 잃은 뒤 국가나 민족,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보수우파가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좌파 정권 저지를 위해 언제든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고 말한 그는 "보수우파를 주장한 대통령이 잘해주지 못하면 우리는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데 보수우파 정권 아래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싸워야 할 판"이라고 푸념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는 이 대통령의 태도는 보수우파를 바라보는 20, 30대 젊은 층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대통령은 보수우파, 특히 정통보수를 '극우'로 여기는 듯 보인다는 것. 하지만 박 위원장은 "극우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는 김정일에 굴종적으로 이용당하면 북한 주민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는 만큼,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입장"이라며 "북한을 반대하고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점에선 획일화된 면이 있고 좀 '센' 편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면 우리처럼 단호한 단체도 있어야 하고, 우리같은 단체들이 '강한' 사상을 갖게 된 배경-우리나라의 분단과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리의 당위성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극우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어요. '김정일은 세계 최악의 독재자'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김정일이 죽어야 우리가 산다'는 말은 아무나 못하지 않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현실은 더욱 은폐됐어요. 평양에서 깨끗한 옷 입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이거든요. 우리가 거짓말하는 극우라고 하는데 그 말을 하기 전에 북한의 정확한 현실을 공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장이 불편한 부분은 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을 혼란스럽게 해놓고 이득을 취하려 하진 않습니다. 정통보수단체들이 정부에게 돈 받고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순수하게 회비와 자비로 운영돼요. 과거에는 어용보수, 물론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전쟁을 해서라도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자'는 식의 '극우'도 없고요. 대북관계에서 상호호혜주의를 요구하는 게 '극우'입니까? '극우'가 요즘은 달라진 겁니까?"
박 위원장은 지금이야말로 '강한 보수'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젊은 친구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끌어내고 세대교체도 빨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과거에는 반공단체가 주축이었기 때문에 현재 정통보수에는 군 출신의 원로들이 많은 편"이라며 "굳이 그 분들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폄훼하는 건 옳지 않다. 원로들이 있었기에 정통보수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만큼, 그분들의 경험에 젊은 층의 추진력이 결합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보수 자체가 뉴라이트나 중도보수처럼 '젊어'지거나 '유연'해지긴 어렵다. 결국 '얼마나 잘 설득하고 공감대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며 "중진들이 연결고리가 돼서 움직여야 한다. 원로와 중진들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중진들과 신진들 간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정통보수 내의 결속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가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우리가 하던 식으로 '김정일은 나쁘고 북한은 없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들고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 체제에 대해 경험을 해 본 세대지만, 10~30대는 그렇지 않아요. 간첩사건이 일어났다 해도 그런 긴장감보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가 더 길었기 때문에 '특이한' 현상 정도로 남아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통보수는 이 자체로도 자생력이 있지만, 10, 20년 뒤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50이 넘은 내가 '어린 편'인데도 변화하면 우리의 가치나 이념까지 잃는다고 생각해서 변화하는 걸 두려워 해요."
박 위원장은 "'격'을 따질 게 아니라 '재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분명 젊은 친구들 중에도 정통보수에 공감하거나 흥미를 느끼는 친구들이 있을 텐데, 이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시위도 재밌어야 되는 세상입니다. 촛불집회는 이슈와 재미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했어요. 정통보수도 근엄함을 탈피하고 젊은 친구들이 호흡하고 어울릴 수 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진보좌파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특히 막연하게 '젊은 층의 보수화를 위해 후진 양성을 한다'고 하지 말고 타깃을 정하고 구체적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가령 막 군을 전역한 20대 남성이라든지 원칙을 강조하는 30대 여성, 이런 식으로요."
박 위원장은 "진보좌파는 시위에 대한 노하우와 문화가 축적돼 있다.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사랑방'처럼 운영되는 곳도 상당수고, 이들은 젊은 층에 시위나 캠페인에 대한 기술-플랜카드 제작법, 구호 만드는 법, 경찰의 강제 해산시 대처 방안 등-을 전수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수우파도 그런 '적극적'이고 '생활 밀착형'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들도 좋은 방법"이라며 "마라톤이나 걷기 대회 같은 행사를 통해 일단 대중적 친밀도를 높이고 그 가운데 우리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전사'를 양성하는 식으로 구체화시키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정치꾼이나 브로커가 판을 쳐서 보수우파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운동'을 해야 된다"며 "기득권을 잡으려고 하거나 정치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행동은 보수우파에 대한 불신만 부른다. 보수우파 시민단체 출신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이를 강조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우파가 주류세력이기 때문에 정략적인 면이 두드러지면 자충수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번 인터뷰는 '강경파이자 행동 중심의 정통보수'라야 한다는 2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통보수 진영의 인사들은 '거북한 얘기 같다' '굳이 불편한 관계를 자초할 순 없지 않느냐'고 난색을 표했지만, 박 위원장은 인터뷰에 대한 설명도 듣지 않은 채 "알겠다"고 답했다. '믿으니까 할 수 있다'는 박 위원장의 말은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보수우파가 뭘 해야 하는지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뉴라이트가 나왔을 때 정통보수의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뉴라이트, 너무 정치적이 됐어요. 우리도 물론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과 두려움때문에 뉴라이트를 믿지 못하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면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왜 비난하고 각을 세워야 합니까. 좀 넓게 높게 멀리 보고 이타적인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보수우파는 그게 부족해졌거든요. 이유를 따지지 말고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 나서는 단순함도 더 키워야 합니다. 똑똑한 보수우파보다 열심히 움직이는 보수우파가 더 중요하고 크다는 걸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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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국가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것에 대해 너무 뜸을 들였다"고 섭섭함을 표시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박찬성 위원장은 정통보수 진영에서도 '강경파'로 꼽힌다. 인공기를 불태우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노골적인 비난을 하는 그는 뼈 속까지 반공과 안보에 대한 굳건한 신념이 스며있는 인물이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의 태도가 달라져선 안 된다´는 것은 박 위원장의 신조. 북한의 핵은 폐기돼야 하고 북한 김정일 정권은 '독재정권'으로 동등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햇볕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북유화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한다.
이처럼 '반북 반김정일' 성향의 박 위원장이 지난 5년 '반노무현' 행보를 걸었던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박 위원장은 보수우파 진영의 시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낸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수구꼴통 집회에 누가 모이냐' '일당 받고 모이는 사람뿐'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에 반박이라도 하듯 3.1절 국민대회, 6.25 국민대회 등 대형 집회들을 이끌었고, 2004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에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과 함께 '30만' 인원을 동원하는데 역할을 했다.
1996년 과소비추방운동본부를 이끌고 탑골공원 앞에서 '외제담배 불매'를 주장하며 외제담배를 쌓아두고 불을 질러 화제가 됐을 당시만 해도 박 위원장은 '열혈 시민운동가'였다. 그러나 이후 보수우파의 색을 분명히 하며 '인공기 화형식'을 하고 '선군정치 타도'를 주장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개 비난하는 모습은 진보좌파의 비난을 받았다. 그들에게 박 위원장은 반골기질이 강한 끈질긴 '안티'세력이자 반공정신이 투철한 '수구꼴통'일 뿐이었다.
일부 진보좌파 언론은 '불분명한' 과거를 문제삼는가 하면 '어용운동가' '기회주의자' 등으로 몰며 '고결한' 자신들과 차이를 강조했다. 박 위원장의 진의는 끊임없는 의심의 대상이었고, 그의 시위는 매우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행동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통보수의 평가는 다르다. '잔꾀를 부리지 않고 한번 믿음을 준 사람은 끝까지 챙긴다' '투쟁이나 행동할 때 선봉장에 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우직한 인물'이라는 게 박 위원장에 대한 정통보수 진영의 평가다.
박 위원장은 "앉아서 연구하는" 사람들과 달리 "실천하고 행동하는" 보수우파에 속한다. 불가피하다면 물리적 충돌도 생길 수 있고, 이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 모든 일에는 시비를 가려야 하고 그 기준은 '대한민국' 그리고 '헌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 위원장의 논리는 때로는 강경한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촛불집회가 미국산 회고기 수입에서 KBS 등 공영방송으로 의제가 옮겨간 뒤인 6월, KBS 앞에서 맞불집회를 하며 촛불집회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에 왼쪽 눈을 맞아 수술을 받았다.
"내가 무서웠으면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겠습니까. 비난한다 해도 괜찮아요, 각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진보좌파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론플레이에 능하고 상당히 오버하는' 보수인 박 위원장은 지난 4개월 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 '보수우파의 야성'이라고 하면 으레 손꼽혔던 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만 '침묵'할 뿐이었다.
'야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하자 박 위원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무서운 게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침묵이에요.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아무 말이 없다는 건 너무 화나고 실망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걸 두고 언론에서는 '보수우파 정부라고 해서 봐 준다'는 식으로 표현하더군요. 감싸주고 봐줄꺼면 촛불집회 때 했어야지, 지금 이러는 게 봐주는 겁니까?"
◇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비추면서도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자로서 바람직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국가정통성을 바로 세우는 것에 대해 너무 뜸을 들였습니다. 밥도 뜸을 많이 들이면 맛이 떨어져요. 이 대통령은 이상에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는 현실이고 모든 이를 충족시키는 최고보다 최선의 것을 택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좌우를 모두 만족시켜려 했어요. 한국 근현대사 수정도 조속한 시일 내에 과감하게 추진했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여론 살피고 전교조 눈치보며 머뭇거리다 이렇게까지 논란이 확대됐습니다."
박 위원장은 특히 이 대통령의 '실용'에 대해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실용에 대한 보수우파의 비판은 공통적인 것이다. '실용은 이념도 정치철학도 아닌 위장술'이며, 이념사상적인 빈곤함을 '경제성장'과 '실용'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
박 위원장은 "대통령은 국가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대통령부터가 방향을 모르고 헤매고 있으니, 국민이 선뜻 따라가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겠느냐"며 "보수우파적인 정체성을 구현하는 게 무엇인지, 정책적 측면에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우파라고 했던 것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였느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의 노력이나 열정에 대통령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면서 "촛불집회의 의제가 정치화된 이후에도 보수우파, 특히 정통보수에서 조용히 있었던 건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가 바라는 건 국가정체성 및 정통성 확립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 및 시장경제체제 강화였으나 이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은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더욱이 정통보수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이나 태도는 다소 부정적인 편이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정통보수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내 편이 돼줄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싸웠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이 대통령을 감싸안아 줄 순 없지 않습니까. 시청 앞에서 집회가 있으면 나이 50, 60 이상의 분들이 자비를 들여서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타고 그렇게 시내까지 나옵니다. 식당에 1만원짜리 밥 차려놓고 나오라고 사정해도 안 나오는 게 요즘 세상입니다. 그런데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참여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표를 줘서 대통령이 됐다는 걸 이 대통령은 잊었나 봅니다."
"대통령이 좌파를 향해 윙크하며 우파의 밥상에 앉았다는 푸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던 박 위원장은 "10년 동안 '없는 사람' '모난 사람' 취급받았어도, 그게 이 대통령이 정통보수를 외면하고 배려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고 말했다. 말투에선 섭섭함이 묻어났다.
'정통보수에 대한 배려'는 참여정부식의 정부 참여와는 다르다. 참여연대 출신들이 정부 산하 위원회 등에 '낙하산' 인사로 내정되면서 참여연대는 정권과 운명공동체가 됐다. 객관성과 중립성에서 위협받았고, 시민단체로서의 신뢰도도 낮아졌다.
박 위원장은 "보상을 해달라는 개별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친북좌파에게 훼손된 부분은 복원하고 사회 각 분야에 침투된 이들 세력을 정리해달라는 것이다"며 "제2연평해전과 건국 60주년 이외에는 미진하다"고 말했다.
"정통보수는 '정권을 잃은 뒤 국가나 민족,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줬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보수우파가 정권을 재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보좌파 정권 저지를 위해 언제든 싸울 태세가 되어 있다"고 말한 그는 "보수우파를 주장한 대통령이 잘해주지 못하면 우리는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는데 보수우파 정권 아래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싸워야 할 판"이라고 푸념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는 이 대통령의 태도는 보수우파를 바라보는 20, 30대 젊은 층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대통령은 보수우파, 특히 정통보수를 '극우'로 여기는 듯 보인다는 것. 하지만 박 위원장은 "극우도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는 김정일에 굴종적으로 이용당하면 북한 주민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는 만큼,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입장"이라며 "북한을 반대하고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점에선 획일화된 면이 있고 좀 '센' 편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면 우리처럼 단호한 단체도 있어야 하고, 우리같은 단체들이 '강한' 사상을 갖게 된 배경-우리나라의 분단과 대립-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우리의 당위성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박 위원장은 지금이야말로 '강한 보수'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젊은 친구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이끌어내고 세대교체도 빨리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은 "과거에는 반공단체가 주축이었기 때문에 현재 정통보수에는 군 출신의 원로들이 많은 편"이라며 "굳이 그 분들에 대해 불편해 하거나 폄훼하는 건 옳지 않다. 원로들이 있었기에 정통보수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만큼, 그분들의 경험에 젊은 층의 추진력이 결합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보수 자체가 뉴라이트나 중도보수처럼 '젊어'지거나 '유연'해지긴 어렵다. 결국 '얼마나 잘 설득하고 공감대를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며 "중진들이 연결고리가 돼서 움직여야 한다. 원로와 중진들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중진들과 신진들 간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정통보수 내의 결속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위원장은 정통보수가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우리가 하던 식으로 '김정일은 나쁘고 북한은 없어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이 들고 멀리하게 됩니다. 우리는 북한 체제에 대해 경험을 해 본 세대지만, 10~30대는 그렇지 않아요. 간첩사건이 일어났다 해도 그런 긴장감보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가 더 길었기 때문에 '특이한' 현상 정도로 남아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통보수는 이 자체로도 자생력이 있지만, 10, 20년 뒤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50이 넘은 내가 '어린 편'인데도 변화하면 우리의 가치나 이념까지 잃는다고 생각해서 변화하는 걸 두려워 해요."
◇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시위도 재밌어야 되는 세상입니다. 촛불집회는 이슈와 재미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했어요. 정통보수도 근엄함을 탈피하고 젊은 친구들이 호흡하고 어울릴 수 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진보좌파를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특히 막연하게 '젊은 층의 보수화를 위해 후진 양성을 한다'고 하지 말고 타깃을 정하고 구체적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가령 막 군을 전역한 20대 남성이라든지 원칙을 강조하는 30대 여성, 이런 식으로요."
박 위원장은 "진보좌파는 시위에 대한 노하우와 문화가 축적돼 있다.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사랑방'처럼 운영되는 곳도 상당수고, 이들은 젊은 층에 시위나 캠페인에 대한 기술-플랜카드 제작법, 구호 만드는 법, 경찰의 강제 해산시 대처 방안 등-을 전수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보수우파도 그런 '적극적'이고 '생활 밀착형' 사업들을 추진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들도 좋은 방법"이라며 "마라톤이나 걷기 대회 같은 행사를 통해 일단 대중적 친밀도를 높이고 그 가운데 우리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전사'를 양성하는 식으로 구체화시키는 게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정치꾼이나 브로커가 판을 쳐서 보수우파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운동'을 해야 된다"며 "기득권을 잡으려고 하거나 정치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행동은 보수우파에 대한 불신만 부른다. 보수우파 시민단체 출신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이를 강조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우파가 주류세력이기 때문에 정략적인 면이 두드러지면 자충수가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번 인터뷰는 '강경파이자 행동 중심의 정통보수'라야 한다는 2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정통보수 진영의 인사들은 '거북한 얘기 같다' '굳이 불편한 관계를 자초할 순 없지 않느냐'고 난색을 표했지만, 박 위원장은 인터뷰에 대한 설명도 듣지 않은 채 "알겠다"고 답했다. '믿으니까 할 수 있다'는 박 위원장의 말은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보수우파가 뭘 해야 하는지는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뉴라이트가 나왔을 때 정통보수의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뉴라이트, 너무 정치적이 됐어요. 우리도 물론 한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과 두려움때문에 뉴라이트를 믿지 못하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면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 왜 비난하고 각을 세워야 합니까. 좀 넓게 높게 멀리 보고 이타적인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보수우파는 그게 부족해졌거든요. 이유를 따지지 말고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 나서는 단순함도 더 키워야 합니다. 똑똑한 보수우파보다 열심히 움직이는 보수우파가 더 중요하고 크다는 걸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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