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매트리스 날으는 양타자되다. 6박 7일의 설악대첩2

소한마리-화절령- 2010. 10. 13. 22:21

바람에 날려버리다

▲ 첫날 등반을 마친 테라스
ⓒ 주미경
불안감은 자려고 침낭을 펼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이 펄럭이는 매트리스와 침낭을 꼭꼭 붙잡아 펴고 40도 정도의 비스듬한 경사에 등을 붙이니 이게 누운 것인지 서서 기댄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우리의 피로감은 그런 거 아랑곳없이 눈꺼풀이 절로 감기도록 극심했다. 하지만 무섭도록 불어대는 바람은 그토록 절실한 우리의 잠을 가뭇없이 날려버리고 말았다.

바람소리라 하면 기껏해야 '휭' 아니면 '쌩'이었으니 우르릉거리고 콰르릉거리는 바람소리야 들어봤을 리가 없다. 우르릉거리는 바람이 침낭커버 속을 세차게 파고들자 침낭커버가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아, 이런! 몸까지 들어올리는 게 아닌가! 확보를 했다고는 하나 천길 절벽 위에서 강풍에 몸이 들리는 느낌이 어찌 소름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비명이 터져 나오고 되는대로 붙잡은 것이 아마 옆에 사람 팔이었나 본데, 어이없는 해프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정말 나는 양탄자였다

우리의 최모씨는 더운 김에 침낭도 안 꺼내고 매트리스만 깔고 잠이 드셨던 모양인데 그 강풍에 추워서 견딜 수가 있었겠나 말이다. 내가 느닷없이 팔을 붙잡는 바람에 깨어나 침낭을 꺼내려 잠깐 몸을 일으킨 사이에 그의 매트리스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정작 날아가는 것은 보지도 못했는데 매트리스가 순식간에 없어졌으니 이 양반 당황할 밖에. "내 매트리? 어어 내 매트리 어디 가써?"

얼마나 황당했으면 매트리스의 '스' 자까지도 채 발음하지 못하고 매트리스가 매트리가 됐을까? 이 바람에 우리의 김모씨까지 깨어나더니 "매트리가 없어졌어요? 그럼 저기 날아다니는 거이 매트리슨가?" 그 말 듣는 순간 황망히 허공으로 눈을 돌리니 얼씨구! 저 멀리 지나가는 능선을 타고 휘익 가로 나르는 네모진 물체가 바로바로 매트리스가 틀림 없으렸다?

김모씨 하시는 말씀, "어어 날으는 양탄자네" 푸하하하~~~ 웃음들이 터져 나온다. 잠이 날아가니 온갖 종류의 걱정들이 최모씨의 머리를 쑤석거리나 보다. "비가 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까만 하늘에는 별들이 어지럽게 반짝인다.

"벼락이 치면 직벽 옆이 가장 위험하다는데…" 우리는 20미터쯤 곧게 올라간 직벽에 붙어있는 좁은 테라스 위에 있다. "바람에 나무가 뽑히지 않을까?" 우리는 볼트 없는 테라스에서 바로 그 나무에 자일을 걸어 확보를 하고 있다. "밥먹고 놔둔 코펠이랑 다 날아가는 거 아녀?" 그러면 또 어쩔 것인가? 그 어둠과 바람 속에서 코펠과 버너의 안위를 위하여 몸을 움직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무섭도록 불어대는 바람에 시달리며 자는 둥 마는 둥 악몽의 밤이 지난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도 바람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다행히 코펠과 버너는 근소한 거리를 굴렀을지언정 날아가지는 않아, 쟈켓들을 꺼내 입고 누룽지를 팍팍 끓여 아침을 먹는다. 3봉의 세 번째 피치를 앞에 두고 두 번째 해프닝은 시작되었다. 밤새 언짢던 뱃속에서 급기야 본격적으로 구라파전쟁이 붙었다. 설사다.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좁은 테라스에서 해결할 일이 난감하다. 우선 약부터 꺼내 먹고 장비를 챙기는 최모씨에게 두 분 먼저 올라가고 나는 볼일 좀 보고 가겠다고 말한다.

우리의 최모씨 얼굴에 걱정이 실린다. 좁은 테라스를 둘러보던 최모씨, 나를 오라고 부른다. 확보해 줄테니 저기 내려가서 볼일을 보라고 하는데, 테라스 끝을 돌아 2미터쯤 아래에 있는 그야말로 사람 몸 하나 겨우 얹을 수 있게 생긴 세모진 공간이다. 일단 동료들의 눈을 피할 수 있으니 되었고, 그 때쯤 되니 사정이 워낙 다급하여 위험이고 뭐고 생각할 여지가 없게 된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여기서 볼일 보다가 황천갈 수는 없는 일, 확보가 문제다. 볼일을 보려면 하네스를 벗어놔야 하는데 그러면 무엇으로 확보를 할 것인가 말이다. 우리의 기발한 최모씨, 자일을 허리에 감아 매듭을 짓더니, 그만 하면 되었다는 데도 못내 미덥지 못한 듯, 어깨에 X자로 한 번 더 자일을 감아 매듭을 지어준다. 젠장, 감동해버렸다.

까마득히 솟아있는 절벽 위, 눈앞이 바로 허공으로 툭 트여진 손바닥만한 테라스에 구겨져 앉아 자세를 잡으니, 저 아래로는 짙은 여름의 녹음이 세찬 바람에 일렁이고 저 멀리로는 검푸른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볼일을 보고 잠잠해진 뱃속에 감사하며 기어 올라와 우리의 다정한 최모씨에게 나는 말했다. 오늘 여기서 해탈의 경지를 맛보았다고 말이다.

▲ 4봉으로 가는 가로크랙
ⓒ 최정열

등반을 포기하다

세 번째 피치부터는 무게에 더하여 루트 파인딩을 위한 전쟁이다.

종료점이든 시작점이든, 1봉을 지나면서부터는 첫 번째 하강코스를 제외하곤 볼트고 쌍볼트고 찾아볼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진 두 종류의 안내문건에 쓰인 글도 서로 다르고, 텍스트와 개념도만 갖고는 정길을 찾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사방이 트여진 바위능선의 장쾌함은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것일 뿐, 거대한 바위의 벽 속에 갇혀 너무나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텍스트를 분석하여 복잡하고 난감한 현실에 적용시키는 일은 우리를 많이도 지치게 했다.

좌절은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지금도 알 길이 없는 피치의 가로크랙을 지나면서 왔다. 받쳐줄 사람 없이는 도저히 뛰어오를 수 없는 바위턱을 올라서 시작된 우리의 용감한 김모씨의 선등은, 우측으로 돌아간 가로크랙으로 시야에서 사라진 채, 몸을 통째로 날려버릴 듯 불어대는 바람을 뚫고 장시간 지속되었다.

완료를 알리는 사인이 무전기를 통해서 오고, 내 어깨를 밟고 바위턱을 올라챈 최모씨가 우측 가로크랙으로 진입하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내가 먼저 가야하는 루트란다. 길게 늘여준 슬링을 잡고 올라 최모씨의 위치까지 전진해보니, 우측으로 가파르게 떨어져 내려간 엄청난 벽을 절개하며 위압적으로 뻗어나간 가로크랙의 모양이, 지난 겨울인가에 선인봉 남면벽 쪽에서 이대장과 함께 격전을 치른 가로크랙의 확대판이다.

최모씨가 나를 먼저 보내려 한 것은 내가 막자로 프렌드를 회수하며 오다가 크랙을 놓치기라도 하면 시계추처럼 떨어져 반대 벽면을 치고 끝내 사망할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이런 경우에 맞닥뜨리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혼란스러워진다. 하나는 나의 안위를 염려해주는 동료에 대한 감동이고, 또 하나는 1인분 어치의 신뢰도 동료에게 주지 못하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책감이다.

어쨌거나 양쪽에서 확보를 봐주는 감격을 누리며 가로크랙에 진입한다. 우리의 선등자 김모씨가 치른 장시간의 격전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생생하게 절감한다. 초입에 설치한 두개의 프렌드를 지나니 거의 끝나갈 지점까지 크랙이 텅 비었다. 이 인간 어쩌자고 이 긴 구간을 확보도 없이 통과했단 말인가? 종료점에 도착하자 그가 답하였다. 맞는 프렌드가 없었다고 말이다. 오 맙소사! 하느님….

▲ 하강 준비
ⓒ 주미경
어디로 연결되는지도 모를 길을 어렵사리 찾아서 간다.

안내문건에 쓰인 포인트가 되는 우물 '정'자를 찾지 못하여, '어거지'로 저게 바로 그거라고 우기기도 하고, 뚝 끊어진 천길 낭떠러지 절벽 사이를 건너느라 확보문제로 고래고래 소리도 질러가며… 그리하여 드디어 마의 3봉을 벗어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등반이 끝나가고 있음을, 말하자면 우리의 등반이 이렇게 참담하게 실패하고 만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어두워지는 하늘에서 빗방울까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의 진행이 우리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임을 깨달았으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에 정직하게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도 일정을 앞당겨 등반을 마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안내되어 있지 않은 지점에서의 탈출은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통과를 기다리는 도전이었다.

기나긴 탈출

탈출은 넓게 펼쳐진 곰바위 4봉을 지나 발견한 P톤에서 시작되었다.

안내문건 어디에도 그 지점에서의 하강에 대한 코멘트는 없다. 그 P톤이 지면까지 우리를 연결시켜주리라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단지 P톤이 있으면 하강이 가능하다는 상식에 의존하여 첫 번째 하강을 신중하게 준비한다. 자일이 크랙에 끼거나 중간에 엉기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꼼꼼하게 공으로 말아 낙자한다.

▲ 하강
ⓒ 주미경
비록 등반은 실패하였으나 하강을 리드하는 우리의 김모씨의 모습은 늠름하였다. 60자 다섯 번에 다시 한번 30자로 계속된 하강은 3시간 만에 무사히 우리를 지면에 내려놓았다. 자일은 말썽 한번 부리지 않고 매끈하게 처리되었으나 우리는 땅에 내려서서도 조금도 즐겁지가 않았다. 하강하는 동안 내내 우리는 별로 말을 나누지 않았는데, 그것은 무지막지한 무게에 짓눌린 추스를 수 없는 등반의 피로감보다는 가슴을 먹장구름처럼 뒤덮은 패배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뒤도 돌아보지 말자고, 울산바위 얘기는 꺼내지도 말자던 결의는 동료들이 내려와 있을 야영장을 향하며 이미 서서히 변질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실수가 미련한 무게에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 불과 12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우리의 피는 빠르게 방향을 바꿔 다시 도전을 시도해보자는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울산바위는 거대했다.

돌잔치 길의 온 이틀은 설악에서 보낸 모든 날들보다도 길었다. 이글거리는 폭염 속에서 우리는 1년을 걸려서도 다 쏟아내지 못할 땀을 거기에 쏟았고, 지고 평지를 걷기에도 힘든 짐을 지고서 바위를 올랐다. 등반을 시작하고부터 얻게 된 모든 감각과 기술과 지식이 총동원되었으며 곤란을 뚫기 위해 호흡을 맞추고 협력하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나에게 기억될 것은, 무게에 압도되어 극단적으로 지쳐버린 상황에서도 떠나지 않고 우리 사이에 머무르던 따뜻한 마음과 웃음이 아니었을까?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