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새 화두 ‘WLB’…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라
[쿠키 사회] ‘일과 삶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라.’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의 10가지 좌우명 가운데 하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국내 대기업 직원을 상대로 ‘직장 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조사한 결과,11개 기업 가운데 7개 기업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WLB,Work-Life Balance)이 급여 수준,고용 안정성,승진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최근 국내 기업의 새 화두로 WLB가 떠오르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 기업들은 초보단계지만,이미 외국 선진기업들은 인재확보의 주요축으로 삼고 있을 정도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각종 WLB 프로그램은 기업에게 우수인재 확보와 생산성 제고를,개인에게 삶의 질 향상을 이루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윈-윈 효과를 내게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진단이다.
◇WLB란=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 Balance)은 근로자가 일과 생활을 모두 잘 해내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위해 설계된 제도를 WLB프로그램이라고 하는데,가족친화적 제도(Family-friendly Policy)라고도 부른다. 선진 외국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WLB프로그램은 100가지가 넘을 정도로 많다. 크게 근무형태 다양화,가족대상 프로그램,개인신상 지원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표 참조) ◇우리나라는 걸음마 수준=기혼여성이 많은 A화장품회사. 이 회사가 모유수유실을 만들어놓은 이유는 우수 여성인력 유지를 위해서다. 젖먹이 아기를 둔 여성들이 모유를 짜 냉동보관한 뒤 퇴근할 때 가져간다. 수유실 설치 이후 여성인력 유지율은 상승했고,특히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아졌다. 회사측은 이런 점이 생산성 향상에 아주 도움이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컴퓨터 기업인 B사는 유연근무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회사 주축을 이루는 40∼50대 가장들에게 가족부양을 위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해소시켜주기 위해서 도입했다. 도입시 우려했던 업무단절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직원들이 업무방식 선진화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고 개인생활 어려움도 많이해소됐다는 성과가 있었다. 이 밖에 가족건강,교육지원,법률상담,개인고충 상담센터,어린이집 운영 등 각종 WLB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금융권은 육아휴직을 2년까지 허용하고 있다.
컨설팅 기업 타워스 페린이 최근 16개 국가 직장인 8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인재를 끌어들이는 주요인에 대해 조사한 결과,우리나라 경우 경쟁력 있는 복리후생제도가 1위,일과 삶의 균형이 2위로 나타났다. 아시아 4개국가(나머지는 일본,중국,인도)보다 WLB 욕구가 현저히 높았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WLB 도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경기가 좋지 않아 일부 대기업이나 사정이 나은 중소기업 정도나 WLB 프로그램을 도입했거나 검토중이다. 경영적 측면에서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긍정적 효과는 당장 가시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WLB 프로그램 취지에는 찬성하지만,현실적으로 적극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지역 500개 기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족친화경영이 기업성과를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기업이 61.2%였다. 하지만 실제로 비용증가 문제 등으로 WLB 프로그램인 육아데이(매월 특정일 정시퇴근),재택근무,수유공간 제공,가족간호휴가제 도입에 대해서는 반대율이 87∼95%여서 현실적으로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시작은 했지만 근무여건상 잘되지 않는 사례도 많다. C은행 경우 지난해 4월부터 수요일을 야근 회식 회의가 없는 3무(無)데이로 정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 수석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WLB가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며 “이제 걸음마를 뗀 WLB의 확산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WLB은 글로벌 트렌드=세계적 컨설팅 기업 매킨지는 이미 1998년 보고서를 통해 WLB가 인재확보 주요축이라고 단언했다. 유럽 선진국가들은 1970년대부터 주로 정부 주도로 가족 친화적 요소 강화,근무형태 다양화,직원 자기계발 지원 등의 형태로 WLB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가정을 사회제도의 하나로 보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인데 주로 보육 서비스,휴가 제도,탄력 근무제부터 시작했다.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겠다는 의미다.
미국은 기업이 주도했다. 대체로 우수한 여성인력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전제에서 1980년대초부터 적극 도입했다. 이어 점차 남녀를 가리지 않고 교육,문화 생활,경력 계발까지 지원하고 탄력근무제가 늘어나는 식으로 확산됐다. 기업이 직장인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만큼 업무 효율성도 제고돼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윈-윈 체제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일부 첨단 IT업체들은 출퇴근시간,근무시간 같은 개념이 아예 없다. ‘WLB 우수 100대 기업’에 속하는 기업들중에는 출장때 탁아비용을 지급하는 곳이 53군데나 된다는 조사도 있었다.
일본은 2000년대에 들어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마련 중이다. 저출산·고령화라는 난제에 빠져있는데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원하는 신세대 성향을 감안해 출산율과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는 게 목표다. 정부는 근로시간,근무지,소득,처우 균형,여성의 계속근무라는 5대 영역을 정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병석 기자 bs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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