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Liberal democracy)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 및 정부형태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세우고 민주적 절차 아래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주권주의와 입헌주의의 틀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은 기본권, 법앞에의 평등,행복권,사회보장권,사생활 보호권, 적법절차의 원리,사상과 언론,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한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의회 제도를 갖춤으로써 다수가 그 정치적 의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한편, 핵심적 인권의 헌법적 보장을 통하여 다수의 횡포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제어한다.
정의와 내용
자유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해서는 그 오랜 역사와 더불어 진화,발전하여 견해가 다양하며 포함하는 내용도 풍부하고 상이하다.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와 입헌적 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보면서 11가지의 요소를 들고 있다. [1]:
- 선거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반대표도 상당하며 헌법 원리를 부정하는 정치적 세력은 정당의 설립과 선거의 참여가 부정된다.
- 군을 비롯하여 민주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기관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기관에 복종한다.
- 시민은 자유롭게 만들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하고 독자적인 결사와 같이 그들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여러 경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신념의 자유, 의견의 자유, 토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언론과 같이 정보를 구득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어야 한다.
- 행정권력은 독립된 사법부, 의회, 다른 공적 기관 등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한다.
- 시민의 자유는 독립되고 평등한 법적용을 하는 사법부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결정은 존중받고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
- 시민은 법 앞에 정치적으로 평등하다.
- 소수자는 억압받지 아니한다.
- 법의 지배 원리는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 헌법의 최고규범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프리덤 하우스는 자유민주주의를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대의 민주주의로 정의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김세균 교수는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다른 계급들에 대한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민주적 방식'으로 관철하는 정치형태"라고 규정한다. [2]
한편, 이른바 대한민국 헌법상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해당 표현은 1972년 유신 헌법에서 처음 등장하였는데 평화통일 조항과 함께 들어왔다. 이에 대해 이를 냉전 완화라는 세계 정세 가운데 반공주의라는 소극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당시 정권이 안고 있던 고민의 산물으로 분석하는 견해가 있다. [3] 한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민주주의의 인식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당시 헌법 개정에 참가한 헌법전문가들이 양자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4]
한편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ㆍ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ㆍ변혁시키려는 것"이라고 설시했다.[5]
참고로, 독일연방헌법법재판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를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질서"라고 규정했다.[6]
구성요소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 평등,자유,인권의 보장
- 시민'국민people주권
- 헌법'입헌주의
- 사상,언론,집회,결사의 자유
- 권력분립
- 대의제도
- 복수정당제도
- 민주적 선거제도
- 사법권의 독립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구성요소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기원
자유민주주의와 그 용어의 기원은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로 올라간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군주제였고 정치권력은 국왕이나 귀족들에 의해 행사되던 시기였기에 당시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심각하게 고려되지는 않았다. 대중들의 끊임없는 변덕 때문에 민주주의는 본래적으로 불안정적이고 혼란스럽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더욱이 인간은 본래적으로 폭력적이고 악하기 때문에 인간의 파괴적인 충동을 억제할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므로 민주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배치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많은 유럽의 군주들은 왕권신수설에 기초하여 자신의 권력에 의문을 품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에 대해 도전을 감행한 세력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계몽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세상의 일은 인간의 이성,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정치적 권력이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법의 지배라는 생각 아래 법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대해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세기 말에 접어들어 이러한 사상은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영감을 주었으며 두 역사적 사건은 자유주의 이념의 확산을 낳았고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세운 원리들을 실천으로 옮겨 새로운 정부 형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정부 형태들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와는 달랐는데 국민의 일부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이러한 부르주아가 중심이 되는 프랑스의 자유주의 체제는 이후 단명으로 끝났으나 훗날 자유민주주의의 원형이 되었다. 새로운 정부 체제의 지지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었기에 신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첫 번째 원형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설립되었을 때,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국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위험한 극단론자이라는 시선이 뒤따랐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보수적인 왕권파들은 스스로 전통적 가치와 자연적 질서의 수호자라고 규정했으며, 나폴레옹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랑스 공화국을 장악한 후 제정 시대를 열고 온 유럽을 정복했을 때 왕권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은 입증되는 듯했다. 나폴레옹이 실각한 이후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확산을 막고자 하는 구체제의 반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은 이미 일반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펴졌고 19세기 동안 전통적인 군주제의 힘은 약해졌다. 개량과 개혁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끌었다. 자유주의는 극단적인 주장을 멈추고 정치적인 주류로 들어섰다. 동시에 자유주의가 아닌 다수의 이데올로기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각자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발전하였다. 정치적 스펙트럼이 변화하여 전통적인 군주제는 이제 극단 중의 극단으로 밀려났고 자유민주주의는 주류 중의 주류가 되었다. 19세기 말까지, 자유민주주의는 더이상 자유주의만의 이념이 아니었으며 많은 다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도 지지받게 되었다. 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난 이후, 자유민주주의는 정부 이론 가운데서 지배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고 광범위한 다수에 의해 지지받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자유민주주의가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주의자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계속 논쟁이 있어왔다. 자유주의의 이념은 (특히 고전주의적 자유주의에서) 고도로 개인주의적이고 개인과 정부와의 관계에서 정부의 힘을 제한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반대로 민주주의는 다수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원리로서 집단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견해도 상당함에 유의할 것).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민주주의적 집단주의의 타협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의 지지자들은 자유롭지 않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보장하는 독재정의 존재를 근거로 입헌적 자유주의와 민주적인 정부가 반드시 필연적인 관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양자는 정치적인 평등의 개념에 기초하므로 입헌적 자유주의와 민주적인 정부 간에는 모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진정한 존립을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독일의 법학자 구스타브 라드부르흐는 민주주의를 좌파적 자유주의로 해석한 것은 잘못 되었다고 보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만이 아니라 종류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의 무조건적 지배를 말하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의 의사를 위하여서는 (경우에 따라) 다수의 의사에 대하여 자기자신을 주장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리고 자유주의 사상의 출발점은 전(前)국가적 자유의 보장인데 반하여 민주주의는 개인의 전국가적 자유를 다수자의 처분에 위임하여 대신 다수 의사의 형성에 관여할 가능성만을 가진다고 한다. 고로 자유주의는 자유를 민주주의는 평등을 말하며 자유주의는 개인에게 무한의 가치를 민주주의는 유한의 가치를 준다고 이야기한다. [7]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이자 법철학자 노르베르토 보비오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평등의 관념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적 실천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지만 민주주의의 특징을 인민 주권의 동의어로서 받아들인다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의 자연스러운 성과로 수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8]
대한민국의 판례
-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결단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및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깊은 신념과 준엄한 원칙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통틀어 일관되게 우리 헌법을 관류하는 지배원리로서 모든 법령의 해석기준이 된다. [9]
-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호를 그 최고의 가치로 하여... [10]
- 헌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 … 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으로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는바...[11]
주석
- ↑ Think Centre
- ↑ 《사회 평론》1991년 6월호,〈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 강원택 외, 《헌법과 미래》, 31면.
- ↑ 국순옥,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무엇인가〉
- ↑ 헌재 1990. 4. 2. 89헌가113, 판례집 2, 49, 64
- ↑ BVerfGE 2, 1[12];BVerfGE 12, 45[51] ; 권영성, 헌법학원론(2007년판)에서 인용. 해당 저서에서는 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석.
- ↑ 구스타브 라드부르흐(최종고 역), 《법철학》,2005년, 102~103면.
- ↑ 노르베르토 보비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1992년, 48면.
- ↑ 헌재 2001. 9. 27. 2000헌마238등, 판례집 13-2, 383, 402
- ↑ 헌재 1994. 4. 28. 89헌마221, 판례집 6-1, 239, 259-260
- ↑ 헌재 2005.10.27, 2003헌가3, 판례집 제17권 2집 , 189, 19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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