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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되레 위협하는 '중대형 아파트의 덫'

소한마리-화절령- 2012. 1. 9. 11:03

 

노후 되레 위협하는 '중대형 아파트의 덫'
한국일보|
입력 2012.01.09 02:37
|누가 봤을까? 50대 남성,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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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달랑 집 한 채뿐인데…
수도권 전용85㎡ 이상 5년 만에 7000만원↓
소형으로 갈아타도 남는 게 적어 발동동
'실버 재테크' 매력 잃어 당분간 약세 지속될 듯

2009년 말 대기업에서 은퇴한 한선우(56)씨는 최근 우울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퇴사 직후 시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1년도 안돼 망하면서 눈 깜짝할 새 빚더미에 앉게 됐다. 2억원 가량의 퇴직금과 지인에게서 빌린 8,000만원까지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경기 용인의 아파트(175㎡ 규모)를 팔아 빚을 갚고 재기도 도모할 생각이었지만, 2006년 8억원 넘게 주고 구입한 아파트 가격이 5억5,000만원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그나마 집을 내놓은 지 1년이 되도록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고, 결국 잦아지는 빚 독촉에 우울증만 얻었다. 그는 "수도권에 큰 집 하나 있으면 어떻게든 노후 걱정은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구입가보다 3억원이나 더 떨어졌으니 빚 갚고 나면 근처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푸념했다.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한 은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중대형의 덫'에 걸려 노후 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은퇴 후 지급되는 쥐꼬리만한 연금으로는 관리비와 재산세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 그래서 중대형 아파트를 팔아 소형으로 갈아타고 남은 돈으로 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 한 채를 더 구입해 임대 사업이라고 하고 싶지만, 최근 4~5년 새 가격이 수억 원씩 떨어진데다 그마저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신세다.

경기 김포 한강신도시의 한 대형 아파트에 사는 대기업 임원 출신 장모(55)씨. 2년 전부터 살던 집을 팔아 소형으로 옮기고, 남은 돈을 오피스텔에 투자해 임대료 수입으로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때 6억~7억원을 호가하던 집이 3억원대 중반까지 곤두박질치면서 그의 꿈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장씨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없지만, 그나마 팔린다고 해도 3억원대 시세로는 소형 아파트 마련하기도 벅차 오피스텔 임대는 엄두도 못 낼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가 작년 말 조사한 수도권 소재 전용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의 가구당 평균 매매가는 6억3,316만원으로, 2006년 말(7억356만원)에 비해 7,040만원 떨어졌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 종합지수 자료에서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는 2006년 정점을 찍은 후 약보합으로 돌아섰고, 2008년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아 하락폭이 더욱 가팔라진 상황이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신도시 중대형 아파트가 가구당 평균 8억2,697만원에서 6억4,254만원으로 1억8,443만원 빠져 하락폭이 가장 컸다. 특히 분당은 정자동 일대 유명 주상복합들이 가격 하락을 주도하면서 5년 새 가구당 2억5,577만원이 떨어졌고, 과천 중대형도 가구당 평균 3억6,109만원 하락했다.

서울도 중대형 평균 매매가(8억9,341만원)가 2006년 대비 5,019만원 떨어졌다. 최고 20억원을 호가하던 도곡동 D주상복합 201㎡가 최근 13억원 선까지 추락하는 등 강남권의 경우 5억원 이상 급락하는 중대형이 속출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수도권 전용 85㎡ 이하 중소형 가격은 2억6,886만원에서 2억8,973만원으로 2,087만원 올랐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소형 아파트 강세와 중대형 약세가 최근 1~2년 새 이어졌기 때문에 큰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옮긴다 해도 가용자금 여력이 줄어든다"며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중대형 주택의 매력이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특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자금 마련을 위해 중대형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을 경우 중대형의 약세는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