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치안의 '私營化'>②안전도 양극화(끝)

소한마리-화절령- 2012. 8. 28. 11:29

<치안의 '민영화'>②안전도 양극화(끝)

부유층 주거지 '요새화'…경찰 민생치안 강화해야 연합뉴스 | 김정은 | 입력 2012.08.28 07:31 | 수정 2012.08.28 10:12
부유층 주거지 '요새화'…경찰 민생치안 강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안전 양극화'는 치안이 민영화하면서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치안 서비스가 하나의 상품이 되면서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안전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옛 명성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의 상징'으로 꼽히는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를 비롯해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최첨단 무인경비시스템을 갖추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한다.

거주자와 외부인을 엄격하게 분리해 자신들만의 폐쇄된 주거단지(gated community)를 이루는 방식으로 요새와 같은 자체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

이들은 단지 내에서 불미스런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도 경찰에 의존하기보다는 보안을 담당하는 민간경비업체가 상황을 정리해 주는 것을 선호한다. 민영화한 치안 서비스를 향유하는 셈이다.

반면, 이와 같은 민영 치안 서비스를 구매하기 어려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이나 원룸 촌은 끊임없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데 최근 주부 성폭행 미수 살인사건이 발생한 동네 역시 다가구주택이 많은 곳이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범죄의 '풍선효과'는 안전 양극화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보안 시스템이 잘 갖춰진 지역에서 방범 설비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지역으로 범죄가 전이되면서 가난한 동네가 범죄에 더욱 취약해지는 악순환을 낳는 것이다.

김성언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안이 강화되면 범죄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보안이 약한 쪽으로 옮겨가는 전이현상도 나타난다. 그러면 시장에서 보안상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범죄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범죄자는 범행을 할 때 장소와 대상 등 여러 선택을 한다"며 "대상이 쉽고, 범행을 했을 때 들키지 않고, 들켰을 때 도망가기 쉬운 게 가장 좋은 표적인데 당초 계획했던 곳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범행하기 편한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개인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도 경제력에 따른 치안의 격차가 나타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서울의 각 구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2010년 방범용 CCTV를 가장 많이 설치한 곳은 강남구(725대)였고, 가장 적은 곳은 관악구(66대)였다. 강남구는 주민 1천명당 1.2대, 노원구는 1천명당 0.1대가 설치된 셈이다.

2010년 재정자립도로 보면 강남구는 25개 자치구 가운데 상위 4위, 관악은 하위 6위다. 관악구는 그해 서울에서 성폭행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려면 안전 취약 지대·계층 보호, 민생치안 강화를 위한 경찰력의 재분배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안전의 빈익빈 부익부 문제는 국가가 보완해야 한다"며 "경제 여건에 따른 치안 서비스 차별을 최대한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력을 운용하는데 시민의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민생치안 분야는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게 현실이다.

허경미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01∼2010년 경찰청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 동안 경찰 전체 예산 가운데 범죄 예방 및 수사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4.09%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비(非) 범죄 대응 부서의 평균 예산은 전체의 28.82%로 범죄 대응 예산의 7배가 넘었다.

경찰 공무원 수도 2002년 9만1천592명에서 2009년 9만9천594명으로 전체적으로 9.20% 증가했으나 교통, 생활안전, 지구대, 파출소, 수사 등 범죄대응 영역의 인원은 오히려 5.3%P 감소했다.

반면, 집회나 시위 관리 등에 투입되는 경비부서의 인력은 2.82%P(3천402명) 늘어났다.

이 기간 전체 범죄가 3.63%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범죄 대응 인력은 오히려 줄인 것이다.

허 교수는 "경찰의 기본은 범죄예방, 생활안전 기능"이라며 "경찰도 이전보다는 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치안 수요가 많은 지역에 대해선 보다 기동력 있게, 좀 더 탄력적으로 순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