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황인오 칼럼] 보속(補贖)하는 마음

소한마리-화절령- 2012. 12. 24. 16:49

[황인오 칼럼] 보속(補贖)하는 마음
2012년 12월 23일 (일) 21:39:17 황인오 i-fire@hanmail.net

황인오(전 부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천주교 신자라면 누구나 아는 '보속(補贖)'은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있는 고백성사(告白聖事)에 따르는 절차를 뜻한다. 신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원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 죄를 씻기 위해 구세주인 예수를 믿고 선행을 하며 살도록 규정되어 있다.

   
▲ 황인오 ⓒ부천타임즈

천주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이 죄를 용서받는 길은 이신득의(以信得義), 오로지 예수를 전적으로 믿음으로써만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천주교도 기본적으로 이신득의의 관점을 취하고 있으나 동시에 이행득의(以行得義), 즉 인간의 노력, 선행으로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병행하는 셈이다.

 

고백성사, 또는 고해성사는 이 두 가지 관점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자는 먼저 신부에게 나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신부는 하느님을 대리하여 죄를 용서하고 동시에 고백한 죄의 크기(?)에 따른 의무를 부과한다.

 

요즘은 대체로 묵주기도 등의 의무를 부과하지만 과거에는 기도만이 아니라 죄의 형태와 크기에 따른 구체적인 행위를 요구했다고 한다. 바로 이 기도나 구체적 행위를 보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 경우는 1980년 겨울 계엄법 치하의 서울구치소에서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집전으로 세례를 받아 천주교에 입문한 뒤 82년 말 바깥세상으로 나와 80년대 내내 주로 원주교구에 속한 사북탄전지대에서 노동사목 활동 등의 형태로 노동운동에 종사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황상근 신부님, 최기식 신부님, 김영진 신부님, 그리고 성심수녀회의 도움으로 '가톨릭광산노동상담소'를 사북성당에 설립하여 탄광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와 조직적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87년 대파업 때에는 지역 내 수십 개 탄광의 파업 등 쟁의를 지원하다가 다시 투옥되어 만 8개월을 갇혀 지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간사를 맡아 일하다가 나중에는 상담소장 노릇을 하며 산업재해로 큰 부상을 당했으나 회사와 노동부의 무성의로 올바른 치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도와 치료와 보상을 받게 해 주거나 경찰, 보안사 등의 사주를 받고 동료노동자들을 감시하던 이른바 프락치를 적발하기도 했다. 대부분 기업의 노동통제기구로 전락한 탄광지역 어용노조와 탄광기업의 감시와 테러 위협 등을 수도 없이 겪으며 10년 가량 일했다.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울로 올라와 지내는 과정에서 92년 이른바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다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때의 투옥생활은 나와 주변 사람들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제 15대 대통령선거에 맞추어 발표되는 바람에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맞붙은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낙선하는 데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갓 스무 살의 탄광노동자 시절인 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을 보며 의분을 참지 못해 동아일보 구독운동과 광고 게재 등으로 참여한 것까지 치면 17년이고 80년 사북노동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투옥된 것부터 쳐도 10년이 넘는 동안 온전히 청춘을 바쳐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처지였다. 사형구형을 거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때로서는 기약없는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민주화에 기여해도 모자랄 형국에 오히려 민주화에 걸림돌을 놓은 셈이라는 현실이었다. 때문에 사건을 둘러싼 온갖 풍설들이 개인적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나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나로 인해 벌어진 사태에 비하면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조용히 감내할 일이었다.

 

98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으로 생각보다 빨리 석방되었지만 부채의식을 덜 수는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 그 사건으로 인한 부채를 덜고 넓은 의미에서 민주화운동의 일각에서 아주 작은 일이나마 보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7년부터 생업을 전폐하고 부천시민연합을 중심으로 일선 활동에 참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80년 6월말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3년 가량 서울구치소와 대전, 대구교도소를 전전하며 다짐했듯이 민주화가 달성될 때까지 내 삶은 민중과 역사에 복무하겠다고 거창하게 다짐한 바도 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충실히 복무하겠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리 작은 집단에서든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하는 데는 끼지 않겠다고 수도 없이 다짐한 터여서 무엇이든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는 자세로 임했다고 할 수 있다. 마침 백선기 대표가 18대 총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생긴 공간에 시민연합 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지역 시민운동의 리더십을 교체하는 시간을 벌어주는 구원투수로서 공백을 메우는 데 충실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70~80년대의 의식과 행동양태가 강하게 자리 잡은 세대로서 변화무쌍한 21세기 시민운동을 계속 끌고 나가는 것이 꼭 도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2010년 2월 시민연합 대표 임기를 마침으로서 어느 만큼은 보속했고, 임박한 6.2지방선거와 2012년의 총선거, 그리고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진보진영이 승리하는 데 전력을 기울임으로서 내 보속을 마무리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혁신과 통합, 시민통합당을 거쳐 민주통합당에 잠시 적을 두기도 했지만 혹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개인적인 정치활동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12월 대선에서 기대한 대로 민주진영이 이긴다면 과거에는 두 겹 하늘을 쓴 채로 나날이 죽음과 맞닥뜨리는 고통스러운 노동에 종사하는 탄광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신음이 뒤덮었던 사북과 태백탄전 일대가 지금은 카지노를 둘러싼 도박, 퇴폐와 향락으로 수많은 가정과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현장으로 변한 바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작은 소망은 있었다.

 

과거 군사독재와 탄광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싸움에서 ‘지역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얄팍한 욕망의 찌꺼기를 발산하도록 부추기는, 상대가 분명하지 않은 유령들과 맞서 볼 발심(發心)은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나마 탄광노동자들의 상대적으로 건강한(?) 절망에 물든 시절에나 더러운 욕망의 찌꺼기나 분출하도록 구성된 카지노 사북이나 아이들이 꿈을 키우고 자라나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곳이다. 그때보다 더 악화되어 꿈을 키우기는커녕 아이들의 꿈을 오염시키는 소돔과 고모라로 전락한 곳으로 돌아갈 마음을 가진 셈이다. (뉴시스 2012년 9월 19일자 '카지노 유해환경에 포위된 정선 사북초교 이전' 기사 참조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20919_0011457562&cID=10805&pID=10800)

일단은 사북으로 돌아갈 발심도 유보하고 애초 다짐대로 이번 대선을 끝으로 보속은 마무리하고 글쓰기 등 간접적인 형태로 활동하며 내 시간을 가지려 한다. 내 보속이 충분치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랄 수밖에~! 혹자가 말한 것처럼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건 정말 작은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시나 다른 서정적인 글을 끄적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진보적 재편이나 지역사회의 현안과 관련된 의견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내가 속한 것으로 간주되는 단체나 진영의 처지를 고려하여 썼다면 더 이상 그런 고려할 필요없이 말 그대로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며 쓸 것이다. 예수탄신을 맞아 여러분 모두의 행운을 빌고 정말 행복한 2013년 맞으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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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새 대통령의 5년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와 우리 모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