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일본 야스쿠니 신사와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 씨에 대한 일본의 범죄인 인도요청이 우리 법원에 의해 거부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우호 협력은 미구에 닥칠 아시아 시대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세 나라 사이의 여러 가지 미묘한 갈등요인에 대한 건설적인 이해와 타결은 시급한 일이다. 세 나라 간의 역사·영토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일본문화에 대한 개방이 본격화하면서 1999년에는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영화『나라야마 부시코』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영화의 주제라고 할 기로(棄老: 노동력 없는 노인 버리기) 풍습과 노총각의 수간(獸姦) 등의 장면에서 처참하게 가난한 일본 전통사회의 문화가 막연히 비슷하게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그것과는 큰 이질감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우리 전통문화가 특별히 우월하다고 여길 필요까지는 없으나 우리 사회에는 완전히 사라진 신분제의 유습(遺習)이 일본사회에는 부락민에 대한 차별 등의 형태로 아직도 완강히 남아 있는 것 따위로 볼 때 상당한 이질감을 숨길 수 없다.
인류학자인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문옥표 교수는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일본 ‘군마현 하나사쿠 마을’에 거주하기도 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하며 일본의 여성과 문화 등, 농촌사회의 생활양태와 주민의 의식 등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물이 1994년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일본의 농촌사회』이다. 평소 인류학과 일본사회의 역사, 문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필자에게는 두 가지 욕구를 충족시키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에는 근대화 이후 전통문화가 오히려 부활, 확장되는 양상 등, 우리의 경우와 견주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문 교수의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세밑을 앞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와 관련된 사례를 하나 들어 보려고 한다. 일본 농촌의 풍습 가운데 악의에 찬 의례가 있다. ‘산린보우’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삼린망(三隣亡)’이라고 쓴다. 한 마디로 세 이웃이 망해서 그 집들의 복이 자기에게 오기를 비는 일련의 행위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특정한 기일(忌日)에 집을 지으면 불이 나서 세 이웃이 망한다는 미신을 뜻한다는데, 이곳 ‘하나사쿠’ 마을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면서 한지로 심지를 만들어 물 위에 세우면 심지가 쓰러지는 방향의 집에 나쁜 일이 생겨 망하게 되고, 그만큼 자신의 집으로 복이 되어 오게 해 달라는 주술적 의례라고 한다.
또 다른 형태로는 옛날 집 툇마루 판자 사이에 동전을 꽂아 두고, 놀러 온 이웃 중에 그 동전이 꽂힌 곳에 앉은 사람의 복이 모두 자기 집으로 온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특별한 원한관계도 없는 이웃에 불행이 닥쳐 망하고, 망한 만큼 자기에게 복이 되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설명되는 일이나, 우리네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 못 할 풍습, 의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전통사회에서도 미신적인 풍습의례가 많았고 남을 해코지하는 예도 있을 것이다. 남을 해코지하는 풍습, 의례라고 해도 도둑을 잡기 위한 ‘고양이 양밥’처럼 아무런 원한관계나 범법의 혐의가 없는 선량한 이웃을 해코지하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마비키’(‘솎아낸다’라는 뜻)라고 불리는 영아살해 풍습은 봉건적 수탈과 낮은 생산력으로 인한 절대빈곤이 낳은 산물로 비슷한 궁핍을 겪은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가끔은 엿보이지만, 일상적인 풍습은 아니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등장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3년 만에 잇따른 자책골로 무너진 자리에 복귀한 일본 자민당 아베 총재의 산린보우로 주변 나라의 살림살이에 구멍이 나게 생겼다.
20여 년의 장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양적 완화를 통한 엔화 환율을 낮추고 있다. 일본 상품 서비스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기술혁신이나 시스템 개혁을 통한 근본적인 국가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주변국의 재화를 진공청소기처럼 일본으로 이전시키려는 말 그대로 산린보우 심보의 환율조작인 셈이다.
일본군의 군대위안부연행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이른바 집단자위권 행사와 같이 본격적인 재무장으로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전체의 긴장을 높이는 것 역시 일본 전통의 ‘산린보우’ 악습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개하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근세 이전에는 왜구의 준동으로 조선과 중국을 괴롭히고, 16세기 말의 임란(壬亂)과 19~20세기 침략 전쟁으로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한 일본은 2차 대전 패전 후에도 진정한 반성과 사과 한번 없이 세 이웃을 괴롭혀, 온 일본의 총 보수화로 어떤 패악을 부릴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때마침 중국과 남·북한 모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서 일본의 도전에 어떻게 현명하게 응전할 것인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5·16쿠데타 당시 일본 자민당 부총재였던 오노 반보쿠(大野伴睦)가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는 자신의 양자(養子)나 다름없으므로 일본의 뜻대로 한일회담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큰소리친 바 있다. 그의 딸인 박근혜 당선자는 어떻게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극복하고 위안부문제, 역사교과서, 독도문제 등 잇달아 기다리고 있는 일본의 ‘산린보우’와 같은 도발에 대응할까.
이미 박근혜 당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구성의 첫 단계부터 법 절차를 무시할 뿐 아니라,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뺨을 때리듯 막말 인사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거나 차디찬 철탑 위에 올라가서 절망의 나락에 빠진 처지를 호소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일본의 ‘산린보우’ 악습은 비교도 되지 않을 악행으로 삶을 송두리째 짓밟힌 노동자와 서민 등, 이 나라 민중들은 살림살이에 어떤 변화를 올 것인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다. 12월 내내 누그러질 줄 모르는 추위처럼 첫 단추부터 어깃장을 놓는 걸로 봐서 기대하지 말아야 할지, 첫 단추 잘 못 끼운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명박 정부보다는 잘하리라고 기대해야 할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어느 쪽이든 가난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재벌 대기업의 곳간 채워주는 악행만은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그런 가운데 대를 이어 동아시아 세 이웃의 곳간을 넘보는 일본의 ‘산린보우’에 북한과 중국 등, 이웃과 보조를 맞추어 현명하게 대응하기를 기대해 본다.
‘남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사람은 나중에 자기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박근혜 당선자와 일본의 아베 총리 모두 귀담아들어 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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