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21세기의 그룬트비

소한마리-화절령- 2013. 1. 19. 23:26

저녁에 부천남부역에서 박민규 시인을 만났다. 영종도에서 지역신문일을 하면서 세월을 소비하고 있는 박시인과 오랜만에 만나서 대선 뒷담화와 사북, 태백 관련 방담을 안주삼아 막걸리잔을 좀 나누고 헤어진 게 9시 조금 넘어서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집에 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남부역 지하상가를 건너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데 한 사나이의 행동거지에 시선을 뺏겼다.

어두운 거리지만 아직은 휘황한 불빛으로 비치는 사나이는 한눈에도 남루하기 짝이 없다. 사나이는 지하도 입구의 커다란 배전판 아래 놓여 있는 커피캔을 집더니 이내 그 자리에 던지듯 두고 간다. 실은 이 장면이 얼핏 눈에 띄었기 때문에 사나이가 남루하다고 단정했을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 폐품을 줍기 위한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걸음을 늦추며 사나이를 좀더 지켜 보기로 했다. 바로 그 배전판 키높이의 지붕에는 누군가 버리고 간 테이크 아웃 음료수 잔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불투명한 커피 잔이고 하나는 투명한 오렌지 쥬스(아마도~)잔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짐작한대로 사나이는 두 개의 잔을 점검한다. 첫번째 불투명한 커피잔을 흔들어 보더니 빈잔이었던지 제자리에 두고 1/3가량 남은 오렌지쥬스잔을 집더니 배전판 옆으로 돌아가서 누가 볼세라 얼른 마시곤 잔을 버린다.

나쁜 예감은 이렇게 들어맞는 건가~? 주머니를 뒤지니 천원짜리 지폐가 두 장 잡힌다. 누군가 마시다 버린 차가운 오렌지 쥬스를 마시고 다시 걸음을 힘겹게 천천히 옮기는 사나이를 뒤따라 가서 어깨를 툭 치자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는 사나이는 60세 전후일까 아니면 그토록 참혹한 궁핍에 찌들어서 더 들어보이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 말없이 돈을 손에 쥐어 주자 그도 아무 말없이 받아든다. 그리곤 나는 발길을 재촉하여 3Km가량 떨어진 집으로 걸어갔다. 2.000원이면 당장의 굶주림은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설령 그 돈으로 막걸리나 소주를 사 마시고 어디선가 취해 쓰러지더라도 마시다 버린 차가운 오렌지쥬스보다는 낫겠지, 하고 상념에 잠겨 걷는다. 

그가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이든 무슨 잘못을 해서 가족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이든 국민소득 2만불이 넘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복지국가는 20세기 패러다임이라느니 어쩌고 배운 티 내는 이들이 찟어진 입이라고 뭐라 떠들든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하고 거창한 생각을 하며 걷다가 이른바 운동가, 활동가들이 개량주의자라고 약간은 비하하는(?) 자선활동가들. 그들이라면 그에게 2.000원을 쥐어주고 위안삼으며 복지국가 어쩌고 난체하기보다 일단 그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 먹여주고 씻겨주고 입혀주고 잠 잘 곳부터 마련해 주지 않을까.

방금 박시인과 소박한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며 너무 많은 걸 먹고싶은 욕구를 억제할 나이가 됐느니 어쩌구 떠든 걸 굳이 죄스러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아무리 헛되이 살았을지언정 그 정도도 먹지 못할 정도로 잘못했을리는 없거늘. 그 사나이 역시 무슨 잘못을 하고 살았어도 국가든 지나가는 과객이든 당장의 생존을 지지해 줄 의무와 책임이 있지 않을까.

문재인의 패배와 상관없이 그래도 이 사나이들을(사나이만 아닌 여성들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어제부턴가 문득 그룬트비와 달가스가 떠올랐다. 박정희 시절, 아직 국민학생일 때 새마을운동을 시작도 하기전 국민가요 '잘 살아보세'가 울려퍼지던 시절, 공화당 정부가 써먹던 4H 등 계몽운동의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던 이들이지만 그야 그걸 이용한 박정희의 문제이고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절망에 빠진 덴마크를 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이들이니 무언가 참조할 일이 있지 않을까.

막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시기의 그룬트비와 달가스를 그대로 따르자는 이야기로 오독하는 이는 없겠지만 21세기의 이 땅에서 좀더 긴 싸움에 나설 작정을 하고서야 배우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룬트비와 달가스를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배우거나 60년대 KBS 라디오의 계몽프로그램에서 조금 들은 게 전부인지라 얼마나 왜곡되어 전해졌는지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꼭 그룬트비가 아니어도 이 나라의 어딘가 드러나지 않은 계몽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사나이가 오늘밤 조금이라도 덜 차가운 곳에서 잠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