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풍경

[설 특집]오래된 동네가 개발된 곳보다 더 좋다

소한마리-화절령- 2013. 2. 11. 18:49

 

주간경향 | 입력 2013.02.11 08:24 

 

달동네 해방촌, 다른 삶의 방식 모색하는 '대안공동체' 거점으로 떠올라

서울은 365일 공사 중이다. 오래된 것들이 부서진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선다. 새로 문을 연 가게가 눈에 익을 때쯤, 아쉬워 할 겨를도 없이 간판은 다른 이름으로 제 모습을 지워버린다. 대형마트들은 작은 가게들이 망하든 말든 제 몸집을 키우기에 바쁘고, 프랜차이즈 상점은 모든 골목을 똑같은 풍경으로 찍어낸다.






카페 해방촌 '빈가게'
그러나 서울의 한복판인 용산구 용산2가동에는 1980년대에 봤음직한 골목이 그 모습을 지키며 남아있다.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곳에는 20년은 족히 넘었을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본이 만든 대형화, 획일화의 광풍을 용케 비켜간 풍경이다. 해방촌은 해방 이후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이 부근 산기슭에 임시 거주처를 마련하고 살게 된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자본의 변덕이 기승을 부리는 서울 한가운데서 해방촌이 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수익이 나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수지타산이 맞았다면 자본은 벌써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렸을 것이다.

개발열풍 비켜가 1980년대 풍경 간직

해방촌 주민들은 해방촌을 일러 '돛단배'라고 말한다. 경사가 높아 거주민 외에는 이동인구가 없으며, 젊은 세대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해방촌이 '돛단배'처럼 고립됐다는 뜻이다. 과거 해방촌에는 '요꼬'라고 불리는 스웨터 공장이 많았다. 공장이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일반주택에 재봉틀 몇 대를 두고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형식이었다. '요꼬'에서 만들어진 스웨터들은 근처 남대문시장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해방촌의 '요꼬'는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그곳을 일터로 삼았던 젊은 사람들도 다른 직장을 찾아 외지로 나갔다. 겉으로는 오래된 가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점점 쇠퇴해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때는 북새통을 이뤘던 해방촌 신흥시장도 시장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해방촌에서 26년 동안 떡집을 운영해온 김진태씨(가명)는 "내가 장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저녁시간이 되면 신흥시장에 사람이 많아 밀려다녀야 했다"며 "그때는 노점 좌판 하나에도 권리금이 당시 돈으로 200만원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들여다보면 비어 있는 가게들도 많다"고 말했다.






해방촌 '종점수다방'
그러나 요즘 들어 '돛단배' 같은 해방촌에 작은 변화를 몰고오는 젊은 얼굴이 늘고 있다. 해방촌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근래 들어 해방촌에 집을 알아보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오래된 동네가 훨씬 아름다워" 해방촌에 머물게 됐다는 김석씨도 그 중 하나다. 김씨가 해방촌에 자리를 잡은 것은 지난해 봄이다. 영화를 만들던 김씨는 지금은 해방촌 커피공방 '콩밭'에서 커피를 만든다. 영화는 오래 하고 싶은 일이지만, 영화만으로는 밥벌이가 어려웠다. 영상프리랜서 일을 하며 벌어놓은 돈으로 커피를 배우고 해방촌에 커피공방을 차렸다. '해방촌'이 좋아서 머무른 만큼 동네 느낌을 살리고 싶어 가게 안에는 '요꼬'를 상징하는 재봉틀도 들여놓았다. 봄이 되면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커피교실도 열 계획이다. '돈을 벌어도 염치 있게 벌자'는 생각에 공정무역 커피인 '스페셜티 커피'로 커피를 만든다. 커피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순환될 수 있게 사치의 산물이 아닌 건강한 농산물로서의 커피를 지역주민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다.

김석씨가 처음 해방촌을 찾게 된 것은 '빈가게' 때문이었다. 꽤 많은 젊은층들이 김씨처럼 '빈가게'를 찾아오면서 해방촌을 알게 된다. '빈가게'는 '빈집 공동체'에서 출발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받는 20~30대가 그마저 월세를 내고 나면 월급의 반토막은 우습게 날아가는 게 서울살이다. 집세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다른 집'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해방촌에 모여 '빈집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조합비 형식으로 조금씩 출자해 '빈가게'를 열었다. 동네 사랑방처럼 '빈가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홈베이킹' 강좌를 열기도 하고, 비정기적으로 다양한 세미나 모임을 갖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아지트'라는 음반을 만들고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공연을 여는 등 지역의 열린 공간으로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빈가게'를 운영하기에는 아직 고민이 깊다. '빈가게'는 대안공간이면서도 소득을 나눠갖는 구조인 만큼 일정한 매출과 조합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빈가게 마스터 유선씨(가명)는 "홍보가 부족해서인지 빈가게 조합원이 많이 늘지 않았다"며 "공간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하고, 현재 이에 대한 논의를 조합원들과 해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해방촌 커피공방 '콩밭'
엄마와 아이들 공간 '종점수다방'


젊은층이 더 이상 해방촌을 떠나지 않고, 떠난 사람들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역 기반을 만들고 싶어 지역주민 스스로 '자생 모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해방촌 108계단 입구에는 '종점수다방'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다. '종점수다방'은 아이들과 엄마들을 위한 공간이다. 엄마들이 언제든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다방이면서, 아이들 또한 언제든 찾아와 책을 읽거나 놀다 갈 수 있는 도서관이자 쉼터이다. '종점수다방'의 황혜원 대표는 결혼을 하면서 해방촌에 살게 된 해방촌 주민이다. 황 대표는 "해방촌은 젊은 사람들이 살기에는 좀 힘든 곳"이라며 "특히 교육문제, 육아문제가 어려워 지역주민끼리 함께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종점수다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해방촌의 전셋값은 오르고 국·공립 어린이집은 부족해 떠나가는 젊은층이 많다. 인근 초등학교 학급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살아야 마을이 유지가 되는데 해방촌은 점점 공동화하는 추세다. 요즘 마을공동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일단은 사람이 살아야 공동체도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종점수다방'에서는 지난해 '마을 미디어'로 라디오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엄마하고 딸이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고, 서로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거나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라디오로 녹음했다. 향후에는 스마트폰을 활용해 지역주민들끼리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올 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해방촌 벽화 그리기를 해볼 계획이고, 작년에 진행했던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여행' 프로그램도 재개할 생각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에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지역주민들끼리 교육 품앗이를 할 수 있는 교육생협을 만드는 게 목표다. 황 대표는 "청소년들에게 불량식품이 아니라 괜찮은 먹을거리를 먹이면서 편하게 음악도 듣고 친구들끼리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그런 공간이 확보된다면 젊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살 만한 동네가 되는 기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 해방촌 '빈가게' 내부 벼룩시장 진열대. | 마아림 제공
떠났던 '수유너머' 7월에 다시 들어와


'해방촌'에 둥지를 틀었다가 2011년 3개의 연구공간으로 나눠져 해방촌을 떠났던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올 7월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온다. 삼선동으로 이사했던 연구공간 '수유너머R'의 박정수 연구원도 해방촌 주민이다. 주말에는 이미 청소년들을 위한 고전강좌를 해방촌 연구공간에서 열고 있다. 박정수 연구원은 "수유너머가 해방촌에 처음 자리를 잡았을 때만 해도 동네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면서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역 어린이집을 다니게 됐고, 지역주민들과도 서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7월 이사를 앞두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 중이다.

한때 해방촌에도 재개발 바람이 분 적이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녹지축'을 만든다고 하면서, 이 지역의 일부를 남산과 용산공원을 연결하는 녹지축으로 형성하려고 했다. 개발 분위기를 타고 한동안 이 지역에 부동산이 많이 생기면서 외지인들이 이곳에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 지역주민들의 반대여론이 높아 녹지축 계획은 무산됐다. 이곳에서 익숙한 이웃들과 평생을 살았던 고연령의 대다수 주민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밀려나 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산공원이 개발되면 원주민들이 밀려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한 주민은 "세월이 더 가서 용산공원이 생기면 동네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만약 잘려진 녹지축을 이어가면서 개발을 하다보면 돈 있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그럼 우리는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역주민은 "용산공원이 들어서면 이 지역이 집값이 올라 원주민들이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도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해방촌이 언덕배기이고 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교회들도 많아서 재개발을 강행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차례 개발 바람을 피해간 해방촌에는 '빈가게' '수유너머' '종점수다방' '콩밭'처럼 또 다른 삶의 방식과 새로운 공동체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들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박정수 연구원은 "해방촌에 새로운 흐름들이 생길 씨앗은 보인다"며 "이럴 때 잘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오래된 노인분들 같은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정답은 없겠지만,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서로가 알게 되고 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관계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글·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
<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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