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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윤임현 10주기(週忌)에 부쳐

소한마리-화절령- 2013. 8. 19. 13:08

고(故) 윤임현 10주기(週忌)에 부쳐

 

 

‘신성한 노동’ 따위는 없다. ‘직업에 귀천 없다’는 설레발도 그만치기 바란다. 공정하지 않은 분배체계 아래에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해 몸이 조각나고 정신이 황폐해지는 극한의 고통을 신성한 노동이라 쌩까는 협잡과 사기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80년 사북 이후, 아니 70년 전태일 이후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소신(燒身)공양과 투옥과 고문과 산업재해로 신산(辛酸)의 고통을 겪으며 마련한 87년의 작은 성과마저 신자유주의 이름으로 빼앗긴 오늘, 노동은 천대받는 것을 넘어 조롱당하고 있다.

 

여기 모인 이들 모두 지난 70~ 80년대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 구체적인 빈곤과 탄압을 물리치기 위해 불사른 청춘이 퇴색되고 역진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4반세기 전으로 되돌아가 상담소를 열고 근기법 준수 투쟁을 벌여야 할 정도로 역사가 뒷걸음치고 있다. 사북과 고한, 태백, 철암, 도계와 문경에서 치열하게 불태운 청춘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의 나라, 노동자가 주인 되는 나라라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오욕칠정에 흐느끼는 고깃덩어리이 불과한 인종(人種)이 진실로 추구해야 할 어떤 곳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세계에 살고 있는 듯 하다. 군사독재를 기관차로 내세운 자본과 그 하수인 어용노조에 의해 죽음과 고통을 강요받았던 사북과 탄전이 이제는 수많은 중생들을 부나비처럼 불러 모아 바늘귀만한 열락(悅樂)의 유혹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또 다른 지옥을 연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시절 고락을 함께 하며 세상의 짐을 감당하려했던 사랑하는 동지 고 윤임현 형과 수억 겹의 인연이 겹친 자취들입니다. 돌이켜 보면 반드시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53년 짧다면 짧았던 형의 삶에도 유쾌하고 보람찬 기억도 상당할 겁니다. 특히 문경에서 썩어빠진 어용노조를 형의 그 치밀하고 끈덕진 활동으로 뒤집어엎고 건강한 노동자들의 것으로 돌려놓은 일이나 고한에서 삼탄노조를 바꾸는 데 쏟은 정열을 어찌 고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다만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진행된 산업구조조정에 따라 석탄 산업이 축소 일로에 놓임으로 해서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겪은 낯설고 외로운 처지에 내몰린 90년 이후의 삶은 참으로 아쉬운 바 있습니다. 비단 형만이 겪은 것은 아니고 아직 그 후과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누구보다 영리했던 형의 노력과 고심으로 여럿이 더불어 먹고 살 방안을 만들고자 무진 애를 쓰던 형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릅니다. 그 고심과 노력의 와중에서 저 남쪽 바닷가 고향으로 내려가 차린 공장에 매진하던 모습도 선연히 떠오릅니다. 비록 매 발걸음이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희망의 근거로 삼기에는 충분했을 공장에 정열을 쏟는 모습은 참 좋았습니다. 형이 그토록 소망하던 진짜 꿈, 형처럼 또 우리들처럼 거칠고 검붉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민중의 삶을 기록하고 남기려 하던 글 쓰는 일을 잠시 유보해야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그대로 충분히 가치로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10년 전 이 날 힘겹게 차린 공장 안에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혼자 전기장치를 수리하다 찰나의 실수인지 어떤 작용인지에 접속하여 훌쩍 떠난 형의 그 절박하고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이, 마치 붕락(崩落)된 갱도(坑道),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 기약 없는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탄부(炭夫)의 그것처럼 전달됩니다.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고통 속에 형을 떠나보낸 지 10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형이 남긴 글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상의 위인도 후손을 잘 만나야 그 자취가 빛나는 법이련만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제 삶의 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마다 빚진 마음으로 형을 찾아옵니다.

 

다음을 어떻게 기약할 지 알 수 없으나 우리의 청춘을 어느 만큼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늦지 않게 형을 기억하고 우리의 청춘을 배상받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뜻을 모으기로 헛된 기약을 남깁니다. 형과 함께 했던 모든 이들, 모든 기억들을 십년을 맞은 오늘에 생생히 떠올리며 저마다 자기 시대를 응시하며 살 것을 다짐합니다. 노동해방 같은 거대 찬란한 목표는 아닐지라도 각자의 시공간에서 석탄광의 청춘을 헛되지 않게 살아 갈 것을 다짐합니다.

 

윤임현, 당신은 우리 청춘의 상흔이며 빛나는 추억입니다. 채탄 막장에서 발견되는 삼엽충 화석처럼 우리 기억에 끝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생의 저편에서 이편을 가만히 지켜보며 편안히 웃음지을 당신을 떠올립니다.

 

2013년 8월 18일 고(故) 윤임현 10주기(週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