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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은 왜 '전단지 할머니'가 됐을까

소한마리-화절령- 2013. 11. 2. 21:32

 

그분들은 왜 '전단지 할머니'가 됐을까

"우리를 받아준 유일한 일자리…전단 한 장이 병원비 되고 약값 돼" 노컷뉴스 | 대전 | 입력 2013.11.02 06:03

 
[대전CBS 김정남 기자]

사람들이 '찌라시'라고 말하는 광고 전단지. 그것을 손에 든 그분들이 눈에 띄면 얼굴부터 찌푸렸고 내미는 손은 피하는 게 익숙했다. 어느 날 전단지를 내민 손의 쭈글쭈글한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난생처음 그분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편집자 주]

챙이 넓게 달린 모자에 목을 감싼 꽃무늬 스카프, 두툼한 솜잠바에 목장갑까지.

평일 오후 3시의 대전 으능정이 거리는 젊은이들보다 할머니들이 더 많다. 중무장을 해도 이르게 찾아온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윤 할머니(73)가 몸을 떨었다.

"거리에 섰는 게 왜 안 힘들어. 여름엔 덥지, 좀 있으면 춥지..."

윤 할머니가 카페 광고지를 돌린 지도 벌써 3년. 당뇨와 혈압이 있는 할머니는 오후 3시에 나와 인적이 뜸해질 무렵까지 전단을 돌린다. 건강한 할머니는 오전 11시에 나오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오후 3시에 나온다. 하루에 몇 장을 돌리는지는 모른다. 시간으로 쳐서 하루 만 원을 조금 넘게 받는다. 전단지는 할머니의 병원비가 되고 약값이 된다고 했다.

"왜 힘들게 전단지를 돌리세요?"

미련한 질문에 볼멘소리가 돌아왔다.

"늙은이들을 누가 써. 젊은이들도 노는디. 식당 주방에라도 가면 '며느리가 해주는 밥이나 처먹지 늙은이가...' 늙은이가 벌어먹을 게 없어서 간 건데..."

'전단지 돌리기'는 윤 할머니를 받아준 유일한 일자리다. 할아버지들은 경비원을 하거나 주차장을 지키거나 학교 앞에서 지킴이라도 할 수 있지만 할머니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다고 한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생 대부분이 황혼의 할머니인 이유인가보다. 으능정이 거리의 최고령은 85세였다.

미용실 전단지를 돌리던 송 할머니(80)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 정성들여 돌린다고 했다.

"내가 열심히 해야 (미용실에) 사람이 하나라도 더 들어가지. 그래야 나도 먹고살고 그 집도 먹고살고..." 죄송한 마음에 광고지 몇 장을 달라고 하는데 한사코 손사래를 치신다. "아까워. 안 읽고 내비면(버리면)..."

그런 할머니도 서운한 게 있다.

"그지(거지)여... 그지지... 마다하는 것도 어거지로 주고 거리에 섰응께. 그지하고 똑같어..."

할머니들은 '거절'에 익숙했다.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됐어"라며 지나치는 모습에 머쓱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받아는 줬는데, 요즘은 통 받아주지도 않어. 먹고살기가 어려우니 갈수록 팍팍해지는 거 같어."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 할머니(63)에게는 '노하우'가 있다.

"이쁘다 뭐 하다 너스레를 떨어야지. 학생들 안 받아 가면 '아이고 이쁜이 이쁜이 받아가' 하면 받아가꼬 가."

"이걸로 늙었다"는 70대 할머니의 가방 안에는 빈 도시락 통과 보온병이 있다.

"5천 원씩 주고 어떻게 먹어 이거 벌어서. 밥은 내가 싸와서 먹어야지.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지 뭐. 이런 데 저런 데 올라가서 먹지." 건물 계단이 할머니의 '식당'이다.

불황이 닥치자 거리에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 사람이 줄자 가게들은 전단지를 줄었다. 줄어든 전단만큼 할머니들의 일자리가 줄었다.

으능정이 거리에만 20여 명 남짓한 할머니들이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거리에서 낯선 시선들과 마주하는 '전단지 할머니'는 대전에만 100명을 훌쩍 넘는다고 했다.
jnkim@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