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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에 살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점리 마을의 12월

소한마리-화절령- 2014. 12. 16. 23:11

[두메에 살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점리 마을의 12월월간마운틴|안준영 기자|입력2014.12.11 11:15|수정2014.12.11 11:19

 
[MOUNTAIN=안준영 기자사진신희수 기자] 밤이 되어서야 태백에 도착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찾아가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지역을 찾아가서 부딪혀 보자는 계획은, 그대로 부딪혀 깨져버렸다. 사방으로 산에 막혀 있는 마을이라서 '산막이 마을'이라는 괴산의 어느 산 마을은 이미 관광지가 돼 버렸다.

마을이었을 곳에는 민박집, 식당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었다. 자동차로는 찾아들어올 수 없고, 걷거나 배를 타야지만 들어올 수 있는 산막이 마을은 그 지리적 요건만 보면 완벽한 오지다. 그러나 그곳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막이 옛길은 2011년에 개통돼, 불과 3년만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 유명 관광지 중 한 곳이 되었다. 옛 마을의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은 두메가 아니었다.

↑ 0002(사진=신희수 기자)

두메를 찾아서
두메 혹은 오지라고 부르는 곳은 어떤 곳이고, 과연 그런 곳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두메의 기준을 둔다면 무엇을 둘까. 전기나 포장도로조차 없는 곳이 두메일까. 우리나라에 그런 곳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사람마다 상상하는 두메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올리지 않을까. 관광지가 돼 버린 산막이 마을도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는 두메일 것. 어느 이유에서건 자신의 두메를 잃고 도회로 나와야만 했던 이들은 '그래도 어딘가에는 옛날 그대로의 시골 마을이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 0003(사진=신희수 기자)

태백시에서 두메로 가는 길을 알려줄 안내인을 만났다. 괴산에서 태백으로 바로 달려온 건 그가 보낸 한 장의 시골집 사진 때문이었다. 태백시에서 35번 국도 백두대간로를 따라 강릉 방면으로 이동하다가 424번 지방도 건의령로 방향을 튼다. 건의령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목이 보인다. 알고 가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숨겨진 길이다. 길은 차 한 대 지나갈 정도로 좁다. 그나마 포장도로여서 다니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다. 내비게이션에는 길의 모습이 표시되었지만 거미줄같이 얽힌 길들은 어디로 통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여기에서는 길 잃기가 쉬워요. 이어질 것 같았는데 끊기고, 끊길 것 같은데 이어지거든요."
안내인 김부래씨는 〈거짓말과 같은 오지의 산〉 저자이며, 태백에서 활동하는 산꾼이다. 그 역시 이 마을에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산 곳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마을이다.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왼쪽으로 꺾으세요' 그의 안내를 받아 조심히 찾아간 곳에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틀어져버린 것 같은 초가삼간 한 채가 있었다.
"얼마 전에 여기 와서 노부부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갔어요. 지금은 안 계시나봐요."

↑ 0004(사진=신희수 기자)

집주인을 여러 차례 불러보았으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문고리에는 철사가 꼬아져 있었다. 집주인은 금방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집 아래로도 길은 더 이어진다. 가로등 불빛이 듬성듬성 마을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은 먼 곳에서 마을을 보여줄 만큼 밝진 않다."내려가면 낭떠러지 옆에 길이 나 있어서 어두울 땐 위험해요. 날 밝으면 가세요."

사람이 살아야 두메
아침에 다시 찾아간 마을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밤 사이에 집주인이 돌아왔을 리 없었다. 빈집을 지나치고 더 아래에 있는 집을 찾아 내려간다. 마침 어느 집마당에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 노인에게 가서 말 좀 묻자고 하니 아무 말 없이
객쩍은 미소를 보낸다. 안에서 주인이 나와 다시 말을 건넸다. 집 주인은 안에 들어와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하자며 안내해주었다. 차를 내주는 부인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미소만 짓던 노인은 집주인의 빙장이었던 것이다(이러한 이야기는 집주인에게 물어볼 수 없었지만, 나중에 찾아간 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마을에 대해 이것 저것을 물었다. 처음부터주소를 알고 왔더라면 묻지 않아도 됐을 질문이었다.

↑ 0005(사진=신희수 기자)

이 마을은 점리라고 부른다. 남향으로 난 곳은 양지말, 북향은 음지말이라고 나눠 부른다. 삼척시청 홈페이지에는 점리의 유래에 대해서 "옛날에 토기점(土器店)이 있어서 점리(店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설명해놓았다. 토기점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점리 마을이 약400년 전인 조선 현종 때 울진 장
씨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고 말한다.
태백, 삼척에서 탄광 산업이 한창일 때에는 점리 마을에도 200여 가구가 살았다. 지금은 47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에 사람이 많을 때에는 점리초등학교에 학생이 있었지만, 이미 폐교된 지 오래다. 점리는 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농촌이다. 일부러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가볼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것은 없다.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는 없냐고 묻자 집주인이 해준 이야기는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이야기다.

↑ 0006(사진=신희수 기자)

"건의령터널을 빠져나오면 문안걸항이란 곳이 있어요. 그 위에 보면 터널 오기 전에 왼쪽에 정승터가 있는데, 옛날에 정승이 피난 와 살던 곳이에요. 문안걸항은 정승의 하인들이 와서 문안 드리는 곳이고, 거기에서 하인들이 살았대요. 지금은 2차선 도로 내면서 사라졌는데,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면 개무덤이라고 있어요.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지만 개가
주인을 따라 다녔어요. 한 여름에 문안걸항 가기 전에 이 주인이 지쳐서 누워 잠을 잤는데 산불이 났지 뭐예요. 산이 다 타버렸는데 이 사람은 살았어요. 보니까 누운 자리로는 불이 안 번지고, 그 옆에는 개가 죽어 있더래요. 개가 주인 살리려고 제 몸에 물을 묻혀서 불길을 막은 거지요."

↑ 0007(사진=신희수 기자)

노부부 사는 산골 집
점리 마을의 집들은 드문드문 떨어져 있다. 높이로만 치면 마을은 해발고도 350~700m지점인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가파른 곳은 피하고, 완만한 곳에 집을 짓고 밭을 갈아먹고 사는 자연부락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귀농・귀촌인구가 늘고 있다지만, "그것도 좋은 곳에 가서나 한다"며 점리 마을에는 외지인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원
래 살던 이들도 태백이나 도계에 나가서 살림하고, 농사철에나 들어온다.
사람 있는 집을 찾아서 마을을 돌아다녀본다. 외양간에 소가 있고, 처마에는 곶감을 달아둔 집이다. 무작정 찾아간 집에는 노부부가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느닷없이 찾아와 "사진을 찍으면 안 되냐"는 부탁에 노부부는 이장 댁에서 가서 먼저 말을 하고오라고 한다. 이장님을 만나보았지만 취재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어느 방송국에서 와
서 어느 집에 가서 한과 만드는 것을 취재해갔는데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내살림살이 남한테 보여줘서 뭐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 맞는 이야기다. 오지를 찾아 여행하는 도시인들이 정작 그곳 사람들에게는 불청객일 수도 있다. 취재 역시 직접 오지로 떠날 수 없는 도시인들을 위한 것이지 그곳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점리 이장님은
취재를 거절했으나, 다른 마을 주민의 취재까지 막을 권한은 없다는 말을 했다.

↑ 0008(사진=신희수 기자)

다시 노부부가 사는 집을 찾아갔다. 마침 태백에서 사는 동생 부부가 배추를 가지러 왔다. 할머니는 동생 부부와 배추밭으로 나가고, 할아버지는 외양간을 치운다. 모두가 분주하다.
노부부는 점리 마을에서 줄곧 살아왔다. 젊었을 적에도 도회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농한기에나 탄광 가서 잠깐 일한 적은 있어도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노부부에게는 이곳은 두메가 아니다, 그저 삶의 공간일뿐이다.

↑ 0009(사진=신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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