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 시위 계기 '독일인 정체성' 논란 재점화
NYT "2차대전 직후 수십년 된 문제의식…독일적인 것 학습 가능해"연합뉴스입력2015.01.07 16:03
NYT "2차대전 직후 수십년 된 문제의식…독일적인 것 학습 가능해"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과연 독일인이란 누구인가?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 가능한 것인가'
최근 드레스덴을 비롯해 독일 곳곳에서 벌어진 반(反)이민 시위와 맞불시위를 계기로 지난 수십 년 동안 해묵은 독일인 정체성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반(反)이슬람 단체 '페기다'(PEGIDA) 등은 이민자들에 대해 독일의 공공자원을 축낸다면서 언어, 관습, 종교 등의 측면에서의 이질성을 제기한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네이티브 수준으로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만 진짜 독일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재계와 기성 정당들은 값싼 노동력과 숙련공 수요 등을 이유로 '이민은 좋고 필요하다'는 콘센서스를 공유하고 있다. 이민이 독일 사회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부모를 둔 독일 태생자 대부분이 이중국적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은 바로 지난 한달 사이다.
그러나 정체성 문제가 독일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치 독일이 패배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에서 수 백만의 독일계 주민이 쫓겨나 본국으로 유입됐다. 하지만 이들은 독일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용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중에 서독 경제 부흥기에 노동력 부족으로 터키계, 그리스계, 이탈리아계가 '손님 노동자'로 몰려와 많은 수가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들은 근무 현장을 제외하고는 독일인과 별로 접촉점이 없는 촘촘한 커뮤니티를 구성해 아직도 분리 의식이 남아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당시 1천700만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이 1%밖에 안됐던 동독 출신 주민에게 외국인은 낯선 존재였다. 거기다 발칸반도 난민들이 쇄도해 가뜩이나 어려운 사회 통합 문제를 더 어렵게 했다.
2000년까지도 독일적인 것은 무엇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앙겔라 메르켈도 총리직에 오르기 4년 전인 2001년 무렵에는 독일을 이민의 나라로 규정하길 거부하는 당 정강을 지지했었다. 문제의 정강은 "기독교, 고대철학, 휴머니즘, 로마법,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기독교-서방 문화의 가치체계"를 이민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독일 사회에 통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최근 반이민 시위대에 대해 '편견과 증오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으며 그가 이끄는 기민당도 지난 15년 사이 획기적으로 변신했다.
훔볼트대의 베를린통합및이주연구소가 8천270명의 대표적 독일인을 조사한 뒤 발간한 현대 독일 종교와 정체성에 관한 최신 보고서는 "오늘날 독일인이라는 존재는 학습되고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더 이상 민족적 유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sungjin@yna.co.kr
(끝)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과연 독일인이란 누구인가?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학습 가능한 것인가'
최근 드레스덴을 비롯해 독일 곳곳에서 벌어진 반(反)이민 시위와 맞불시위를 계기로 지난 수십 년 동안 해묵은 독일인 정체성 논란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반(反)이슬람 단체 '페기다'(PEGIDA) 등은 이민자들에 대해 독일의 공공자원을 축낸다면서 언어, 관습, 종교 등의 측면에서의 이질성을 제기한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네이티브 수준으로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만 진짜 독일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재계와 기성 정당들은 값싼 노동력과 숙련공 수요 등을 이유로 '이민은 좋고 필요하다'는 콘센서스를 공유하고 있다. 이민이 독일 사회의 다양성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부모를 둔 독일 태생자 대부분이 이중국적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은 바로 지난 한달 사이다.
그러나 정체성 문제가 독일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치 독일이 패배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유럽에서 수 백만의 독일계 주민이 쫓겨나 본국으로 유입됐다. 하지만 이들은 독일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용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중에 서독 경제 부흥기에 노동력 부족으로 터키계, 그리스계, 이탈리아계가 '손님 노동자'로 몰려와 많은 수가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들은 근무 현장을 제외하고는 독일인과 별로 접촉점이 없는 촘촘한 커뮤니티를 구성해 아직도 분리 의식이 남아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당시 1천700만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이 1%밖에 안됐던 동독 출신 주민에게 외국인은 낯선 존재였다. 거기다 발칸반도 난민들이 쇄도해 가뜩이나 어려운 사회 통합 문제를 더 어렵게 했다.
2000년까지도 독일적인 것은 무엇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앙겔라 메르켈도 총리직에 오르기 4년 전인 2001년 무렵에는 독일을 이민의 나라로 규정하길 거부하는 당 정강을 지지했었다. 문제의 정강은 "기독교, 고대철학, 휴머니즘, 로마법,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기독교-서방 문화의 가치체계"를 이민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독일 사회에 통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최근 반이민 시위대에 대해 '편견과 증오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비판했으며 그가 이끄는 기민당도 지난 15년 사이 획기적으로 변신했다.
훔볼트대의 베를린통합및이주연구소가 8천270명의 대표적 독일인을 조사한 뒤 발간한 현대 독일 종교와 정체성에 관한 최신 보고서는 "오늘날 독일인이라는 존재는 학습되고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더 이상 민족적 유산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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