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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의 드담드담 평행세계 속에서 만나는 세 일본 여배우의 또다른 삶

소한마리-화절령- 2015. 10. 4. 13:38

김선영의 드담드담

평행세계 속에서 만나는 세 일본 여배우의 또다른 삶

한겨레 | 입력 2015.10.03. 16:21

[한겨레][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

일본을 대표하는 세 여배우가 뭉쳤다. 다케우치 유코, 마키 요코, 미즈카와 아사미가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 삶의 결정적 전환점에서 만약 지금과 다른 길이 펼쳐졌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배우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상상을 버무린 이 드라마는 말하자면 세 여배우의 또다른 삶을 평행세계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일 먼저 그려지는 것은 마키 요코의 세계다. 2015년 현재, 요코는 멋지고 당당한 자태로 등장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재일한국인의 삶을 소재로 하여 국내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2005년 영화 <박치기>를 중요한 작품으로 꼽은 뒤 배우로서의 성공적인 이력이 간략하게 덧붙여진다. 그리고 드라마는 곧바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그녀를 찾아간다. <박치기> 오디션에 떨어지고 부업으로 연명하는 단역배우 마키 요코다. 같은 꿈을 꾸는 또래 배우들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현실에 점점 지쳐가는 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만화로 그리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미즈카와 아사미는 14살 때 극장판 <소년탐정 김전일-상하이 인어 전설> 오디션에 합격해 데뷔한 순간을 전환점으로 꼽는다. 이어 소개되는 그녀의 초기 대표작 중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작품으로는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가 있다. 그녀의 평행세계 주인공은 마키 요코와 마찬가지로 무명의 단역배우다. 요코에게는 만화라는 다른 위안의 매체가 있으나 아사미의 꿈은 오로지 배우, 그것도 세계적인 배우가 되는 것뿐이다. 오디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도 그녀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세번째 주인공은 다케우치 유코다. 1995년 하라주쿠에서 기획자 눈에 띄어 연예계에 진출하게 된 순간을 생의 전환점으로 꼽은 그녀의 대표작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정도이며, 일본의 국민배우 기무라 다쿠야와 주연한 드라마 <프라이드>,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사이드카의 개> 등이 특히 유명하다. 이 일본 최고의 여배우는 어떤 삶을 상상했을까? 평행세계 속의 유코는 연예계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고, 출판편집자로서의 격무에 지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이랬을지도 모를 여배우들>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세 배우의 신선한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수많은 캐릭터를 거쳐온 그녀들임에도 불구하고 평행세계 속 인물들은 각자의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하기에 흥미롭다. 그 인물들은 현재 배우로서의 모습과 비교하면 평범하고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똑같이 치열하게 살아간다. 드라마는 세 배우의 어린 시절 반영처럼 보이는 한 신인 여배우 캐릭터를 통해 평행세계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며 ‘누구도 쉽게 유명해지지 않는다’는 주제를 슬쩍 흘려보낸다. 실제의 배우들이나 평행세계의 그녀들이나 모두 각자의 삶의 주인공이다. 남자 배우들에 비해 주체적 자서전을 펼쳐 보일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 여배우들의 흔치 않은 고백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드라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