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불평등이 우리 경제를 곪게 만들지
한겨레 입력 2016.05.21. 14:47
[한겨레][토요판]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21) 노동시장 이중구조
지난 4월말 현재 우리나라 실업률은 3.9%. 15살 이상 인구 가운데 만일 100명이 일자리를 원한다면 4명이 일터에 나가지 못한다는 얘기야. 머릿수로는 2615만3000명이 직장에 나가고 있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일터 모습은 제각각이야. 돈을 많이 주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 하루 종일 땀을 쏟아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두 시간만 일을 해도 되는 일터도 있어. 일터가 각양각색인 건 자연스럽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해. 자동차를 만드는 일터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터가 같을 수는 없지 않겠어? 각자의 능력과 바람에 따라 일자리를 선택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다면 별문제가 아니지.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아. ‘노동개혁’이란 말 말이야. 비교적 진보 성향이라고 불리던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도 노동개혁은 중요한 화두였고,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어.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노동개혁은 핵심 국정과제야. 일터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가 매우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봐도 되겠지?
우리나라 일터가 갖고 있는 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거야. 일터가 두 개로 크게 쪼개져 있고, 그 쪼개진 둘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 나온 말이야.
이번에는 일터의 이중구조를 알아보려 해.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고, 그래서 뭐가 문제인지를 말이야. 아주 해묵은 과제인 만큼 단칼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말하기 어렵겠지만, 어떤 제안들이 있는지도 살펴보려 해.
같은 일터, 다른 세상
정규직·비정규직. 이런 말 들어봤지? 한번 취업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년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게 정규직이야. 정규직이 아닌 나머지 일자리를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볼 수 있어. 그 형태는 다양해. 가령 몇 달 혹은 몇 년 정도 기간을 정해 놓고 일을 하거나 프로젝트 같은 특정한 일감을 정해 놓고 이게 마무리될 때까지만 일하는 사람도 비정규직이지.
비정규직이 왠지 정규직보다 나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일의 특성이나 스스로의 바람에 따라 비정규직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어. 가끔 뉴스에서 보지? ‘○○○ 아나운서도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방송사에 사표 냈다’라는 소식 말이야. 프리랜서도 대표적인 비정규직이야. 사표 내는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가 정규직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방송사 문을 박차고 나오는 거지. 자발적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어.
그러나 이런 비정규직이 일반적인 건 아니야. 대부분 사람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원해. 왜 그럴까? 당연한 말이지만 비정규직은 일자리 안정성이 많이 떨어져. 정규직은 웬만하면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없지. 한번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면 평생 직장을 잃을 위험이 적어. 반면 비정규직은 2년마다 일자리를 옮겨가야 할 공산이 높아. 일하기로 한 계약 기간이 다 될 즈음에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야 하지.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몰라 항상 불안해하기 십상이야.
기업이 어려워져서 직원을 줄여야 할 때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일차 대상이야. 심지어 비정규직은 스스로를 지킬 노동조합도 없는데다, 정규직 중심으로 이뤄진 노조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워. 때로는 정규직 노조가 자기 식구인 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도 없다고 말할 수 없어.
안정성만큼이나 보상도 큰 차이가 나. 평균적으로 정규직이 100만원을 번다고 하면 비정규직은 70만원 정도 받아. 예전에는 정규직이 핵심 업무를 담당하고 비정규직은 허드렛일을 하다 보니 이 정도의 임금 차이는 날 수 있다고 봤지만, 실상은 조금 달라. 오히려 어렵고 힘든 일을 비정규직이 맡는 경우를 일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비정규직은 복지 혜택도 정규직보다 훨씬 적어. 대표적인 복지제도인 고용보험을 한번 볼게. 고용보험은 일자리를 잃었을 때 얼마 동안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제도인데, 정규직은 100명 중 95명이 가입돼 있지만 비정규직은 63명 정도만 가입돼 있다고 해. 일터에서 밀려나기도 쉽지만, 밀려난 뒤에 기댈 수 있는 사회적 보호도 비정규직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거지.
이런 비정규직이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30%가 넘는다는 거야. 정규직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더 낮은 임금을 받으며, 심지어 언제든 일터에서 쫓겨날 두려움에 떨면서도 실직 뒤에 이렇다 할 만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10명 중 3명이나 된다는 거지.
정부마다 노동개혁 외치는 건
일자리가 두 개로 쪼개져 있고
둘의 차이 너무 크기 때문이야
똑같은 일 하는데 월급도 적고
일자리 잃기도 쉬운 비정규직
1997년 외환위기 휩쓸고 간 뒤
기업들은 비정규직 크게 늘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확대되면
경제도 활력 잃고 제자리걸음만
기나긴 불황 겪고 있는 원인이지
비정규직은 왜 늘어났을까?
처음부터 일터가 이렇게 두 개로 나뉘었던 건 아니야. 20여년 전에는 사실 대부분 일자리가 정규직이었어. 일터가 오늘날과 같은 꼴을 갖추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라고 해. 나라 경제가 한바탕 난리를 겪은 뒤에 이렇게 됐다는 거지.
난리가 났으니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 아니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말이야. 그때 원인으로 지목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일터에 정규직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어. 기업이란 게 그렇잖아. 돈을 잘 벌 때도 있지만 잃을 때도 있는데, 정규직 직원은 이런 상황에 맞춰 줄이거나 늘릴 수 없었어. 앞에서 정규직은 한번 회사에 들어오면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법이 정하고 있다고 했던 말 기억나지?
이런 문제로 인해 당시에 법이 바뀌었어. 비정규직을 쓸 수 있도록 말이야. 그 이후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본격적으로 뽑기 시작했어. 이 정도 수준에서 그쳤으면 다행이었을 수도 있어. 문제는 그다음이지. 비정규직을 뽑을 수 있게 된 기업들이 단지 돈을 적게 주려는 마음에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한 거야. 각종 편법은 물론 반칙까지 저질렀지.
반칙 수법은 한두 개가 아니었어. 정규직이 맡아야 할 핵심 업무인데도 비정규직을 쓰면서 1년 혹은 2년씩 계약만 다시 맺는 거야. 기업이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상관없이 20년을 꾸준히 해야 할 업무라면 당연히 정규직을 써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도 상당수 기업들은 똑같은 사람과 2년마다 계약을 다시 맺는 꼼수를 부리며 적은 돈을 주고 사람을 쓴 거야.
이런 경우도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임금을 적게 주는 거야. 자동차 공장에서 이런 일이 많았는데, 자동차 앞바퀴는 정규직이, 뒷바퀴는 비정규직이 만들도록 한 거야. 같은 일을 시키면서도 다른 대우를 한다는 것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거잖아. 실제 법도 이런 걸 금지하고 있었지만 기업들은 버젓이 그렇게 했어.
이렇듯 일터에는 불공정과 불평등이 커져갔지만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어. 왜냐고? 다소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나라 경제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기업들이 원하는 대로 비정규직을 쓰면 사업을 좀더 유연하게 해나갈 수 있다고 본 거야. 또 사람에 들이는 돈이 줄어드니 더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
경제가 좋아지면 비정규직들도 임금을 더 받을 수 있고 일자리도 늘어나니 중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마저 있었지. 정도가 너무 심한 불평등과 불공정만 줄여가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도 믿었고.
우리 역사상 보기 드문 긴 불황
하지만 실제 이런 믿음과 달리 경제는 더 좋아지지 않았어. 특히 2008년에 금융위기가 닥친 이후부터는 우리나라 역사상 보기 드물 정도로 매우 긴 불황이 이어지고 있지. 이러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하고 있어. 외려 이런 이중구조가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번지는 거지.
몇 가지 진단이 있어. 일단 돈을 많이 못 버는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난 탓에 소비가 줄면서 경제가 나빠졌다는 주장이 있어. 비정규직을 늘려서 물건을 싸게 만들기는 했는데, 정작 이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물건을 사는 소비자이기도 하잖아? 근데 이 소비자 중 상당수가 지갑이 가벼운 비정규직이라면? 당연히 물건이 제대로 팔리기 어렵겠지. 물건이 잘 안 팔리니 기업도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나라 경제도 나빠졌다는 거야.
또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고급 기술자들이 덜 생겨나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생각도 있어. 꾸준히 일을 해야 일 처리도 빨라지고 어려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지 않겠어? 그런데 비정규직들은 일을 꾸준히 하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도 적잖아. 결국 나라 전체적으로 일 잘하는 노동자들이 줄어들게 된 거야. 노동자가 부실한데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없겠지?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나타나고 있어. 갈등 확대야. 좋은 일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노동자들 간 갈등을 넘어 아예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커지게 된 거야. 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싸우기보다는 서로 아픔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하지 않겠어? 마치 운동경기를 할 때 같은 편끼리 호흡이 잘 맞아야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문제는 이런 진단들이 나오고 있지만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거지. 비정규직을 다 없애고 모두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도 답이 아니고, 그렇다고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이중구조를 없애는 것도 정답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냥 가만히 두자니 현재 불거진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질 게 불 보듯 뻔하고.
그래도 실망은 말자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으니까 말이야. 예전처럼 비정규직이 나라 경제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필요하다거나 비정규직이니깐 정규직보다 돈을 덜 받는 게 당연하다거나 하는 주장에 고개를 끄떡이는 사람들이 줄었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런 주장들을 공공연하게 펴는 사람들이 참 많았거든.
지금 상태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또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이런 일터의 이중구조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게 나와. 이런 생각의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모두가 웃으며 일터에서 땀을 흘리고, 그러면서도 기업도 나라 경제도 좋아지게 하는 그런 해법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김경락경제에디터석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며 재정·금융 분야를 다루고 있다. 알려지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알기 쉽게 경제 현상을 소개하는 데 관심이 많다. 쓴 책으로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가, 번역한 책으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메디치미디어)가 있다. 딱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눈높이에서 경제 현상의 이면을 풀어준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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