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깊이보기]오스트리아 대선과 유럽의 '극우정치'
경향신문 이윤정 기자 입력 2016.05.24. 04:12
[경향신문]
“매우 훌륭해요, 노르베르트 호퍼. 내일 대통령이 되길 희망합니다.”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 대표 헤르트 빌데르스는 22일 밤(현지시간) 트위터에 오스트리아 대선 후보 호퍼(45)를 지지하는 글을 남겼다. 이날 오스트리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오스트리아자유당(FPOe)의 호퍼와 무소속 알렉산더 반데어벨렌(72)의 접전이 펼쳐졌다.
결국 근소한 표차로 좌파 성향의 반데어벨렌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호퍼와 극우 진영은 존재를 확실히 부각시켜 ‘사실상의 승자’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유럽연합(EU) 내에서 극우파가 정상에 오르는 일도 가능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유럽의 극우파들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부터 호퍼에 열광했다. 선거 당일 빈에서 열린 호퍼 캠프의 파티에는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도 참석했다. 반데어벨렌이 힘겹게 역전하기는 했으나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극우의 선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유럽인들을 EU에서 멀어지게 만든 것은 유럽 경제의 불확실성과 난민·이주민 문제다. ‘오스트리아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호퍼는 남쪽 국경에 담을 쌓고 무슬림의 침략을 멈추자며 반이민 정책을 주장해왔다. EU와의 관계에서 오스트리아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울리크 개롯 다뉴브대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대선 결과와 상관 없이 “오스트리아와 유럽의 연합이 산산이 부서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다음달 열리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그 다음은 내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EU의 운명을 흔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오스트리아 대선 이후 유럽의 평화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조 교수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평화를 위협하는 극우파를 경계해왔지만 이제 유럽인들은 전쟁의 위험성에 무감각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는 “경제 위기와 난민·이주민 문제가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극우파가 파고들기 쉬운 구조가 됐다”며 “10년 전만 해도 틈새 정당에 불과했던 극우파가 이제 유럽 정치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우파가 득세하는 이유를 외부적인 요인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 뿌리내린 중도우파-중도좌파 양당체제의 균열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영국에서는 신좌파로 불리던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잠시 양당체제의 붕괴를 미뤘으나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3당 체제가 굳어졌다. 2010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자민당과 연합해서야 가까스로 집권할 수 있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극우파 영국독립당(UKIP)이 12.7%를 득표하면서 득표율 3위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극우 민족전선(FN)이 28%를 얻었다. 집권 사회당과 중도우파 대중운동연합(UMP)이 사력을 다해 연합전선을 편 끝에 결선투표에서 민족전선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난 3월 주의회 선거에서 약 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앙겔라 메르켈의 좌우 대연정을 위협했다. 극우파에 맞서 중도 좌·우 정당들이 연합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대선은 중도 양당체제의 종말을 알리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안 교수는 “기존 정치에 실망한 이들이 극우로 향하는 현상은 유럽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난민이나 EU 등 외부로 시선을 쏠리게 만들고 있다”면서 “유럽의 양당 구조가 깨지고 새로운 정치 지형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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