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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한강 그리고 한국문학

소한마리-화절령- 2016. 7. 5. 17:51
신경숙, 한강 그리고 한국문학
윤 지 관 (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권위 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명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세계문단에서 무명작가라 할 한강이 오르한 파묵을 비롯한 쟁쟁한 작가들을 제치고 상을 차지한 것은 이 상이 작가의 전체 업적보다 후보 작품의 문학적 성취를 기준으로 했고 번역의 성과를 중시한 결과다.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와 공동수상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세계문학 속 한국문학 성취 보여

  한강의 수상은 개인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학의 세계성과 관련해서도 의미가 크다. 수상자가 역량과 개성을 겸비한 작가이긴 하나 한국문단에서 단연 독보적인 지위에 올랐다고까지 할 수는 없고, 고은이나 황석영, 이문열 등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원로작가도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한강과 유사한 입지에 있는 한국의 다른 작가들도 번역과 해외출판의 여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라도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며, 이 자체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수준에 미달이라는 오랜 회의론을 불식시킨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채식주의자〉의 국내 판매부수가 급증하여 출판사인 창비는 책을 공급하기에 분주했다고 한다. 창비는 우연찮게도 자사의 출판물로 인해 지난해 표절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는데, 여러 언론에서 환기하다시피 이번 수상이 창비뿐 아니라 한국문학 전반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세평의 부침(浮沈)과 무관하게 한국문학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만한 창작품들을 꾸준히 산출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오를 무렵 미국 뉴욕에서 신경숙의 대표작 〈외딴 방〉이 출간되었다. 탁월한 번역가로 잘 알려진 정하연씨가 오랜 공을 들여 옮긴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미국 평단이 주목했고, “긴장감 넘치고 혼을 사로잡는 아프도록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상찬을 받았다. 수년 전 〈엄마를 부탁해〉가 맨아시아문학상 수상작이 되고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던 덕분이기도 하다.

  신경숙과 한강이 영미 출판계를 비롯한 세계문학시장에서 거둔 성공은 고은이나 황석영과 같은 원로들의 명망성과는 다른 한국문학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전자가 한국 민주화 운동의 투사들이기도 했다면, 두 여성작가는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 등단한 90년대 작가 세대다. 주목할 것은 이 두 작가의 뛰어난 성취들이 굴곡진 한국 역사의 심층과 대결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사실이다. 신경숙의 〈외딴 방〉은 초기작인 〈깊은 슬픔〉의 세계를 뚫고나와 70년대 산업화시대를 회상하고 재구성하는 고투에서 비롯했고, 〈채식주의자〉와 더불어 번역 출간된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항쟁과의 가슴 아픈 대면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두 여성작가의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이 가지는 의미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문학 시대에 한 흐름 이루길

  신경숙을 둘러싼 작년 표절논란의 여파가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외딴 방〉의 특기할 만한 해외에서의 성공이 국내 언론이나 평단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것이 그 한 증좌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 논란의 와중에서 작가가 소모적인 문학권력 논쟁의 희생양이 된 면이 없지 않다. 작가의 실수는 그것대로 문학 차원에서 짚을 일이되 일부에서 주장하듯 문학의 타락과 권력의 횡포로 비난 받을 일은 결코 아니었다. 상습표절의 의혹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외딴 방〉의 국제적인 성공으로 모든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 문단과 사회도 사실은 사실대로, 성취는 성취대로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위력에 맞서는 문학의 대응이 국경을 넘은 작가들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괴테와 막스가 예상한 것처럼 민족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문학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문학의 차원에서라면 아직도 한국문학의 갈 길은 멀다. 문단에 알게 모르게 스며있는 편협한 도덕주의를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고 번역에 대한 제도적 지원도 중요하다. 두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한편으로 제2, 제3의 신경숙·한강이 속출하여 한국문학이 지구시대 세계문학운동의 한 흐름을 이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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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지관
· 덕성여대 영문학과 교수
· 문학평론가
· 한국대학학회 회장

· 저서
〈민족현실과 문학비평〉 (실천문학사)
〈놋쇠하늘 아래서-지구시대의 비평〉 (창비)
〈세계문학을 향하여-지구시대의 문학연구〉 (창비)



다산포럼
은 일부 지역신문에 동시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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