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금요 칼럼 - 축구장의 안과 밖

소한마리-화절령- 2016. 7. 15. 17:03

금요 칼럼 - 축구장의 안과 밖


고광헌 (시인/한림대교수)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불확실성이 높은 경기는 축구다. 유럽에서는 만년 하위리그 팀이 챔피언스컵을 가져간 명문구단을 깬다. 수비를 잘 하는 고교팀이 역습 한 번으로 대학팀을 고개 숙이게 만드는 게 축구다. 모든 스포츠는 의외성이 본질이지만 그 중 축구는 단연 앞서 있다.

얼마 전 끝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프랑스는 16년의 법칙과 10승 무패라는 통계의 옷을 입혀 챔피언스컵을 거저 가져갈 것처럼 몰아갔지만 포르투갈에게 졌다.

한국에서도 절대강자를 퇴출시켰다. 약자의 반란이 성공한 셈이다. K리그 챌린지 팀 부천이 파컵대회에서 1부 리그 단골 우승팀 전북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선수 평균연봉 4천만 원의 부천이 3억 원인 전북을 이길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지난 5월의 영국은 더 극적이었다. “앨비스 프레슬리가 여전히 살아있을 확률과 맞먹는다”며 무시당해온 레스터시티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가져갔다. 구단의 수입과 선수들의 연봉은 수십 배 씩 뛰었다.  

현실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운 일이 스포츠에서는 빈번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이 후천개벽의 매혹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유다. 이들은 선수들의 몸이 만들어 내는 기량이 예측불허의 미학적 방식으로 ‘사건화’ 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몰입한다. 일상의 불안과 권태를 아무한테도 의지하지 않고 날려버린다. 때론 기성의 흐름을 확 바꾸거나 싸질러버리려는 심리의 투사로도 읽힌다.

“부끄러워 말고 가슴 속의 불을 찾아라.”
시적은유로 가득 찬 이 문장은 레스터시티 라니에리 감독이 선수들에게 한 말이다. 패배에 무감각해진 이들에게 이보다 괜찮은 조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건 그가 선수들이 축구로부터 받은 상처를 보듬는 일을 리더십의 맨 앞에 놨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상처받은 루저의 마음을 치유해 팀을 재건했다. 제이미 보디 같은 벽돌공 출신 8부 리그 선수를 국가대표로 바꿔 논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스타디움 밖의 현실은 여전히 강고하다. 국경수비대의 검문소는 사나워지고 난민들은 지중해 연안을 헤매고 있다. 젊은이들은 축구를 좋아하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축구에서와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뻔뻔스러운 기업은 1~2년 전에 뽑은 직원마저 밀어낸다. 최저임금 1만원 타령은 1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변화는 불온하며 격차는 커지고 있다.

체육계 안은 아예 악취다. 수영협회 두 임원은 수영코치 등에게서 수억 원대의 돈을 갈취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무려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얼마나 죄질이 나쁘면 이처럼 중형을 때렸을까. 박태환 선수를 가르친 노민상 코치도 1억 원을 뜯겼다고 한다. 머리 둘 곳이 없다.  

출구는 보이지 않고, 축구장에서 일어나는 드라마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