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박 원 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노인들의 삶을 소재로 한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 하나가 세대를 넘나들며 따듯하면서도 먹먹한 감동을 남기고 얼마 전 끝났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한 세대를 풍미하고 있는 브라운관의 대스타들이 함께 출연하여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제목의 드라마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평생을 언니·오빠, 형·동생하며 살아온 초등학교 동창들로 이루어진 육칠십대 노인들의 ‘지지고 볶는’ 일상을 줄기로 하고, 그 자식들의 일과 사랑을 곁가지로 삼은 내용이다. 정말 삶은 축복이며 감사일까?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그들이 살아온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갖가지다. 언젠가는 세계여행 시켜준다는 말을 믿고 가부장제의 화신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견디다가 어느 날 그것이 메아리 없는 자신만의 꿈임을 확인하고는 집을 나가 독립을 선언하는 문정아(나문희)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화해를 시도하는 그녀의 남편 김석균(신구), 깨끗하고도 여린 소녀 같은 삶을 살다가 치매에 걸려 좌절하는 정아의 죽마고우
조희자(김혜자), 젊어서는 남편의 바람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나이 들어서는 친정가족과 마흔을 바라보는 과년한 딸 뒤치다꺼리로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 짬뽕전문점 주인 장난희(고두심), 암 투병을 하면서도 우아한 여배우의 삶을 놓지 않는 난희의 동갑내기 친구 이영원(박원숙), 지지리도 못난
일가친척들을 돌보느라 결혼도 못하고 평생 돈 버는 일에 매달려 살면서도 언제나 쿨한 카페 여사장 오충남(윤여정), 상처하고 혼자가 된 후 첫사랑
희자에게 대시하다가 그녀가 치매에 걸리자 조심스럽게 돌봄의 손길을 내미는 ‘노땅’ 변호사 이성재(주현).
‘언젠가’에 머물러 있던 죽음이 어느새 손에 잡히는 거리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삶은 축복이자 감사라고 말할 수 있는 ‘노인’은 몇이나 될까? 이것은 언필칭 입신양명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유한한 생명을 살면서 자신의 종말을 의식해야 하는 생물종이 굴레처럼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이다. 노인의 삶은 이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러므로 노인이야말로 운명 앞에 선 단독자이다. 죽음은 ‘우리’가 아니라 결국 ‘나’의 존재가 소멸되는 사건임을 실존적으로 받아들여야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노인 문제의 본질, 제대로 물을 수 있어야 노인들이 느끼는 이 단독자로서의 불안감을 사회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인정받음’이 아마 그 가운데 하나일
듯싶다. 자신의 지나온 인생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알 때, 다른 이의 삶에서 그것이 적어도 하나의 의미였음을 확인할 때, 그는 적어도
삶의 무의미성이 주는 불안감으로부터 얼마간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 관하여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노인의 경험이 젊은 세대로부터
인정받고 있는가? 나이든 세대의 지혜가 여전히 젊은이들을 인도하는 등불이 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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