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일파(이하 박순실 일파)의 사익추구를 위한 약탈 대상은 평창올림픽과 생활·엘리트 체육, 한류 등 문화콘텐츠 사업에 집중됐습니다. 문화 부문은
아이돌 그룹의 콘텐츠 개발과 매니지먼트를 위한 한류사업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체육계는 올림픽부터 클럽스포츠까지 곳곳에 퍼져 있는 이권에 검은손을
뻗었습니다.
검은손은 조직적이었습니다. 부산의 칠성파나 광주의 서방파처럼 박순실 일파도 막강한 조직을 구축했습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그와 성이 다른 가족, 청와대 수석과 장·차관, 고위공무원과 재벌 회장, 교수·교사들이 조직범죄의 주·조연을 맡았습니다. 정치조폭!
억지스럽지 않습니다.
박순실 일파의 ‘딸’ 정유라를 위해 승마협회가 발굽 채 흔들리고, 부정입학이 자행됐습니다. 교육부와
대학과 출신 고교 관계자들이 범행의 하수인으로 가담했습니다. 승마협회 감사를 하다 찍힌 문체부 공무원은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는 두목의
한마디에 좌천에 이어 강제퇴출을 당했습니다. 김종 문체부 전 차관이 범행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박순실 일파는 스위스의 한 회사와
제휴를 맺고 평창올림픽 시설공사에 빨대를 댔습니다. 개폐회식장을 오방낭 이미지가 연상되는 오각형으로 설계변경 했습니다. 추가비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클럽체육으로도 마수를 뻗쳤습니다. K스포츠클럽 프로젝트가 그것입니다. K스포츠클럽은 전국에 37개가 있고, 앞으로 시군구별로 1개
정도씩 늘어날 계획입니다. 롯데그룹으로부터 70억 원을 받았다 들통 나자 돌려준 사건이 이 사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대한체육회가 K스포츠클럽 예산을 집행했습니다. 매년 1백억 원 안팎의 정부예산이 들어갑니다. 박순실 일파는 대한체육회에서 ‘K스포츠재단’으로
운영주체를 바꿔 두고두고 사익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사업과 홍보대행 등에도 손을 댔습니다. 수백 억 원대의 이권사업입니다.
박순실 일파의 또 다른 실세 장시호가 몇몇 빙상선수 출신 후배들을 이용해 십수억 원을 약탈한 동계스포츠영제센터 사업 비리는
애교수준입니다.
박순실 일파는 왜 이토록 모질게 체육계를 파고들었을까요. 참으로 궁금합니다. 문화계는 한류를 뒷받침하는 K-컬처
밸리사업에 그쳤습니다. 차은택 한 사람을 꽂았더니 나머지는 공무원들과 기업이 나서 해결했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예술가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예산지원을 끊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공연예술을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사익을 보장하는 약탈사업에는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체육계는 달랐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그 믿는 구석은 우리
체육계가 만들어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K스포츠재단 등에 참여한 이들을 보면, 사회적 규범과 가치 판단 없이 저들의 사익추구에 전 존재를
맡겨버렸습니다. 저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습니다. 올바른 길이 아닌데 함께하고, 잘못을 저지르는데도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 침묵하는 것을 의리의
미덕으로 알았습니다.
운동장에서는 공정과 공평의 원칙을 지켜온 체육인이 세속의 악덕 앞에서는 침묵해버렸습니다. 이런 순종의 관행이
체육계와 체육인들을 식민지의 신민으로 낙인찍게 만든 원인입니다.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를 치르고, 8회 연속 올림픽 10위권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내면은 삶의 진실에서 벗어난 허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노예적 굴욕의 상징적 숫자일 뿐입니다. 박순실들의 지배도구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독립적으로 스포츠 단체를 이끌어가는 곳은 손꼽을 정도입니다. 대부분 재벌 오너나 그 대리인, 돈을 모을 수 있는 정치인
차지입니다. 88올림픽이 끝난 지 30년이 가까이 되지만 한때 국민적 영웅이던 은퇴선수들은 이들 재벌 오너나 정치인 회장에게 의탁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체육인과 체육단체는 전혀 독립적이지 못합니다.
최근 체육시민단체는 시국선언에서 “그동안 스포츠는 국위선양이라는
미명하에 정권에 복무하고 시민을 호도해왔다.”라며 “정치적 무지상태의 일부 운동선수와 지도자들은 권력의 노리개로, 때론 먹잇감으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뼈아픈 고백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박순실 일파에 체육계가 일방적으로 휘둘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삶을 독립적으로 일궈나갈 줄 아는 사람과 조직만이 내적 힘을 갖게 됩니다. 우리 체육계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운명을 타자에게
의탁한 채 삐에로처럼 연기만 했습니다.
자존심을 세우고 감시하고, 사리에 맞지 않을 땐 따지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문화예술계는
권력에 약한 연예 쪽 말고는 정부나 지자체가 잘못하면 폭로와 저항으로 맞섭니다. 이 모두가 공화국의 시민적 권리이기도 합니다. 박순실 일파가
문화계에 대한 약탈을 한류 사업 정도에서 끝낸 것은 당사자들의 이런 저항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박순실 일파는 체육계와
체육인들을 만만하게 봤습니다. 체육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우리 체육인과 체육계는 모멸과 자괴의 순간을 반면교사 삼아, 시민적 가치의 내면화를 통해
자립 역량을 키울 때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박순실류 따위가 쥐고 흔드는 저급한 식민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