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 |
박 원 재(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근래 헌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국가권력을 위시한 공권력의 비상식적인 운용이 초래한 반작용이다. 주로 언급되거나 인용되는 부분은 국체(國體)를 명시한 헌법 제1조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1항)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2항)는 두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주주의의 근본 전제인 주권재민과 그에 따른 대의정치의 원칙을 천명한 내용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
그런데 제1조가 지니는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지나쳐버리기 쉽지만, 우리 헌법에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표현이 있다.
‘자유민주적’이라는 표현이다. 이는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표현은 헌법 전문과 평화통일의 기조를 밝힌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에 차례로 등장한다. 이 두 곳의
내용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의 기본 정치질서는 자유민주주의이고, 통일은 이 자유민주적 질서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마디로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다른 그 어떤 민주주의, 이를테면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선언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맨얼굴
사람들은 어떤 이념을 받아들일 때 그 명칭의 사전적 의미를 그것이 지향하는 고유의 가치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거기에는 그것이 역사 속에서 각색되거나 왜곡 또는 오용된 흔적들이 켜켜이 퇴적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그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누구이며, 또 어떤 맥락에서 주장하고 있는지를 짚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자유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자유’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전적 뜻만으로 그 의미 맥락이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자유주의의 자유는 일차적으로 흔히 부르주아지(bourgeoisie)라고 불리는 서양 근대 시민계급의 자유를 가리킨다. 일련의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리거나 무력화시킨 시민계급이 반대급부로 어디에도 침해받지 않을 자신들의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벌인 투쟁의 산물로
등장한 것이 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는 출발점에서부터 모든 사람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계급이라는 특정한 계층의
자유였다. 자유주의의 이러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인 1인1표 보통선거가 서양에서조차 전면적으로 시행된 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심지어는 2차 대전 이후에서 와서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적어도 현명한 소비자라도 되어야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이것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소비자인 주권자는 상품의 설명서나 제원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해당 상품의 광고모델과 같은 부차적 부분에 현혹되어 구매를 결정한다. 상품 자체의 사용가치, 한 걸음 더 양보하여
교환가치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런 풍토 속에서 제대로 된 상품이 구매될 리 만무하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부딪치고 있는 집단적인 자괴감과 상실감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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