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지금 느껴도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
김광섭 입력 2017.02.24 12:54 댓글 13개
[오마이뉴스김광섭 기자]
<시스템>, <열외인종 잔혹사>, <광신자들>, <반인간선언>, <아지트>, <천하무적 불량야구단>, <망루>. 주원규 소설가가 발표한 작품의 제목들이다. 그간 사회의 환부 한가운데에서 고독하고 치열하게 발버둥치는 아웃사이더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그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사임당을 들고 왔다. 지난 1월에 출간한 역사소설 <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이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보아온 독자들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사임당의 어떤 모습을 보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찾은 걸까?
"어떤 면에서는 사임당이 자기 내면세계에서는 고독한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많은 사람이 사임당의 작품이나 그림에 열광했지만 정작 사임당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는 외로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연속성에서는 사임당이 제 사회적 관심의 일부였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현모양처 사임당이 아닌 그림과 글에 능한 예술가 사임당이다.
"예술가로서 자기 치열함이 조선시대 여성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 아닌가 해서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다독시대' 칼럼을 연재 중이며 팟캐스트 '문학의 신'을 진행하면서 독자와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가 주원규를 2월 8일 종로구 익선동에서 만났다.
"공통적으로 가장 휴머니티가 있는 책들이죠. 피상적 감동을 주는 것보다는 삶의 진솔함을 줄 수 있는 책이라면 철학, 인문, 에세이 가리지 않고 소개하는 편입니다."
▲ 주원규 소설가 |
ⓒ 김광섭 |
"저는 절반의 서운함도 있고, 절반의 감사함도 있어요. 절반의 서운함이라는 것은 작가로서의 씁쓸함이겠죠. 어떻게 보면 책의 콘텐츠가 드라마나 다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조금 편승해서 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서 서운함이 있어요. 절반의 감사함은 드라마 열풍으로 다시 사임당이 조명이 되고 전시와 출판이 같이 붐을 이루어 서로 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감사함입니다."
- 작품을 처음 쓴 시기는 3년 전인가요?
"제가 예전에 역사 인물 3부작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흥선대원군, 두 번째가 사임당, 세 번째가 이준 열사, 헤이그 특사에 대해서요. 집필은 3년 전 즈음에 완료했었습니다."
- 드라마 방영을 예상하고 쓴 건가요?
"아뇨. 드라마가 될 줄은 생각을 못했어요. 아마도 그때는 출판계 환경이 열악해서 출간이 어려웠나 봐요. 출판 기획도 어려웠고요."
- 예술가의 모습에 주목했음에도 현모양처의 모습도 많이 나와요. 7남매를 낳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순종하는 모습들도 있고요.
"처음에는 예술적 풍모와 집념을 많이 다루고 싶었는데 사료를 조사하고 강릉 오죽헌기념재단을 가서 인터뷰를 한 결과, 사임당이 그때 당시 유교적 질서와 가치관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예술적인 것들을 어떻게 모색했을까 하는 안팎의 치열함도 같이 다루면 좋겠다 했어요. 자녀들을 잘 건사하는 모습, 남편이 좀 부도덕한 모습을 보여도 수용할 수 있는 모습까지 담았습니다."
▲ 역사장편소설 『사임당, 그리움을 그리다』(인문서원) |
ⓒ 김광섭 |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스승으로 삼고 덕을 통해 널리 사람들을 깨우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제가 호를 짓고 허락받고자 하는 이유는 제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 더 나아가 함께하는 모든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워나가는 이유가 모두 나의 나됨을 깨닫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 사임당이 어린 나이에 사임당(師任堂)으로 당호를 짓는 장면이 인상적인데요.
"당호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밝혔다는 부분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1차 사료에 기록되어 있고요. 그런데 그것은 사실 추상적으로 밝혀진 사실이고, 어린 시절 사임당에게 뜻이 있지 않았을까 해요. 지금 느껴도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이구나 느꼈습니다."
- 그림을 팔아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장 역할의 모습도 나와요.
"그것도 1차 사료에 약간은 묻어있지만 논쟁의 여지는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충분히 추정 가능한 생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학문과 일에는 관심이 없고 술에 빠져 사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물로 그렸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절반의 팩트와 절반의 픽션이 가미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때 당시 생활상과 사회상에 과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의 어떤 능력을 깊이 인정을 해주면서도 유교적인 가치관이 들어와서 남성이 위세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죠. 남편 이원수는 부인에 대한 깊은 동경과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술로 소비하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남성가부장제의 폐해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사임당은 처음으로 남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았다. 순박하고 선한 인상이었다. 투박하고 생김새에선 영락없는 대장부의 기개가 묻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청을 거부할 수 없는 천성적인 유약함이 가득했다.(책 59쪽)
- 이원수가 인맥을 통해서 관리직을 얻었을 때, 사임당은 당당한 입신을 원한다고 해요. 그때, 이원수가 '당신은 정말 빈틈이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 깊던데요.
"글을 쓰면서도 사임당에 대한 감정이입이 절반은 되면서도 절반은 섭섭함이 있더라고요.(웃음) 지금 시대와 비교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남편에게 강요하는 게 옳았을까? 한편으로는 지아비가 당당하게 소신을 펼쳤으면 좋겠다는 남편에 대한 기대와 이해도 같이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 현룡(율곡 이이)이 '어머니가 어머니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사임당은 자기 세계에 대한 관심과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 것 같아요. 사임당이 느끼는 세계는 대자연의 세계였고 대자연의 세계는 차별받지 않고 모든 이들이 공생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열망했고요. 현룡은 어머니에게 그런 세계를 배웠기 때문에 현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작가 전하고 싶은 작품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는데요.
"전체적인 메시지에요. 예술가의 이지적인 면모를 넘어서 대자연과 사회를 아우르는 사상가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 그런 메시지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게 있을까요?
"저는 남성작가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충분히 존중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남성과 여성, 신분 차이. 오늘로 이야기하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와 편견, 오해와 대립을 넘어서 크게 통합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예술을 통해, 정서적 만족을 통해서 구현하고 싶은 주제의식이 있습니다. 쓴 만큼 완성도가 높아야 하는데 여전히 많이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웃음)"
-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아쉬운 점 많죠. 항상 장편소설을 쓰고 나면 후련함도 있지만 따끈따끈한 책을 처음 받아볼 때 왜 이렇게 밖에 못 썼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잘하고 싶다는 열정도 생기고요."
- 열정이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는지.
"절반의 오기, 절반의 겸허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겸허함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는 여기까지구나' 조금 더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도 배우고 있습니다."
- 한계가 있어도 소설은 빨리 집필하는데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오나요?
"제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제가 급해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급하지 않은데 뭔가 맡은 일이 있으면 급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누가 채근하지 않는데도 빨리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작파할 것 같아서 빨리 마무리하는 편입니다."
- 흥선대원군을 다룬 <불의 궁전>에 이은 역사소설인데요. 역사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있을까요?
"역사소설을 기술하고 쓸 때는 주관적 팩트보다는 객관적 팩트에 입각한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은 아니지만 최근, 픽션에서 타임슬립을 한다든지 비약을 많이 가져간다든지 하는데 저는 역사소설, 역사 이야기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해요. 팩트에 입각한 감정이입을 중시합니다."
-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를 이야기하는 건가요?(웃음)
"드라마 자체로 재미도 분명히 있겠지만 제 주관은 그렇다는 것입니다.(웃음)"
- 목회 활동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 삶은 어떤가요?
"목회를 2009년도에 시작했는데, 처음 3년 동안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목사인지, 작가인지 혼란스러웠는데 지나서 이런 것이 삶과 분리되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성직자라는 표현 안에 차별화가 있었지, 일상을 살면서 사람을 느끼고 우리가 품은 종교적 대상에 대해 함께 나누다 보니까 지금은 글을 쓸 때는 작가, 설교할 때는 목사입니다."
- 신작 <나쁜 하나님>을 온라인 매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고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입니다. 기독교를 가톨릭과 나눌 때 개신교라고 하는데, 개신교의 존재 의미가 새롭게 갱신하고 인간다움을 회복하자였는데, 너무 많이 그 취지와 멀어진 것 같아요. 그런 한국교회 안타까운 풍경을 소설로 담아보고 싶은 주제의식이 있습니다."
- 시나리오와 희곡 쓰기로도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고요?
"영화 각색 작업이라고 하죠. 감독이나 원작자가 쓴 것을 영화적 코드에 맞게 하는 각색을 상반기에 하고 있어요. 하반기에는 제 로망인데, 제가 쓴 희곡을 연출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 어떤 내용인가요?
"제목이 해청전이에요. 심청전을 해부한다는 뜻입니다. 낭독공연을 시연했었는데 그 작업을 하반기에 진행하려고 합니다."
- 요즘 초단편소설이 많이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이 있나요?
"사실 시류에 편승하는 느낌이 들어요. 초단편이라면 남미의 보르헤스적 스타일이 원형으로 보이는데, 지금 국내에서 도입되는 초단편소설들은 약간 스마트폰 세대에 어필하려는 짧은 글쓰기에 편승하지 않는가 해요. 문학적인 것을 엘리트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문학적 가치를 너무 좀 격하시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죄송한 말인데, 단편소설 풍토가 한국문단에서는 너무 과잉되어 있고,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것만큼은 저 혼자만의 지적이 아니고 세계에서 바라보는 한국문학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그것은 갱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소설로 이 시대에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저는 리얼리즘 소설을 많이 추구하는 편이고요. 사회의 환부와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작업을 앞으로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사회주의 소설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런 소설들이 갖는 교조주의라고 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해라' 하는 지나친 주제의식의 무게감들은 많이 털어내려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3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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