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인간

자연의 메신저, 고흐 그림의 위로

소한마리-화절령- 2017. 11. 7. 08:55
자연의 메신저, 고흐 그림의 위로
유 지 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꿈틀대며 타오르는 붓의 흔적, 그 흐름을 타고 피어오르는 별, 꽃, 나무, 밀밭, 까마귀, 사람들 이미지는 시선을 끌어들인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휴대폰, 방석 , 컵 받침, 가방, 스웨터 등등… 온갖 일상용품에 복제되어 전시된다.

미치도록 그리다가 37세에 떠난 화가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며 정신병까지 앓다 37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영화, 음악, 뮤지컬 등 예술 텍스트들로 재생산되고, 일상에 영감을 준다. 조용필이 노래했듯이, 지구 한구석에서 외로운 삶에 지친 한 사람,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살고픈 그는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라며 위로받는 심정을 토로한다. 로드 다큐 〈바람의 춤꾼〉(2017, 최상진)에서도 아픔을 춤으로 풀어내는 이삼헌의 방에 놓인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림 액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그림이 춤꾼의 자유로운 예술혼에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 강렬한 숨결이 이 가을 〈러빙 빈센트〉(2017, 도로타 코비엘라 등)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6만여 점에 달하는 유화 애니메이션은 고흐 화폭을 영화세상 풍경으로 바꾸어낸다. 에피소드 연작 〈꿈〉(1990, 구로사와 아키라) ‘제5편 까마귀’에서도 화폭이 프레임으로 부활한다. 고흐 그림을 가만히 지켜보던 구로사와는 ‘아를르의 도개교’ 속으로 빠져든다. 몽환적 풍경 속에서 고흐는 자른 귀를 감싼 붕대를 두른 채 노랗게 펼쳐진 밀밭과 거기서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는 까마귀 떼를 그리고 있다. 꿈 한 조각에 머물던 이미지가(제목처럼) ‘빈센트를 사랑하는’ 107명 예술가의 작업을 통해 장대한 이미지 세상으로 피어난다.

   고흐는 후원자이자 버팀목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늘 편지를 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1년 후, 우편배달부는 아들 아르망에게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수신자인 테오도 세상을 떠나, 또 다른 수신자 추적에 나선 아르망은 풍문에 휩싸여 가려진 고흐 삶의 진실을 밝혀내는 여정에 돌입하게 된다. 주치의 가셰 박사와 의혹에 쌓인 관계, 그의 딸 마르그리트와의 비밀스런 관계들이 미로처럼 펼쳐진다. 살아 움직이는 그림들이 배경이자, 소품이고, 캐릭터가 되는 경이로운 이미지 세상이다.

   아르망을 따라가노라면, 고흐는 어떤 이에겐 괴팍한 인물이지만, 또 다른 이에겐 친절하고 다정하며, 순박한 예술 노동자이다. 여관주인 딸 아를린에 따르면, 그는 아침 일찍 들판에 나가 온종일 그림 그리고 돌아와 테오에게 편지쓰기가 일상이며 아이들을 사랑했다. 나룻배 사공에 따르면, 그는 강을 좋아해 홀로 고즈넉하게 강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 까마귀가 그의 점심을 먹는 것을 귀엽다고 구경하며 감탄하던 풍경을 들려주기도 한다.

‘예술의 위로를 상처받은 가슴에’

   〈반 고흐:위대한 유산〉(2013, 핌 반 호브)에선, 죽은 후 엄청나게 유명해진 삼촌의 유산을 받은 조카 빌렘 반 고흐(테오의 아들)의 곤경에 처한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 격랑을 타고 세계시민에게 공개돼 인기를 누리는 ‘반고흐 미술관’ 건립 동기가 영화에서 밝혀지는 흥미로운 구석도 있다. 십여 년 전, 심포지엄 참석차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반 고흐 미술관에서 홀로 한나절을 지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뇌에 찬 표정이 진하게 각인된 초상화들, 강렬하게 피어오르던 꽃잎들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껴 그때 사왔던 화집을 꺼내본다. 화집 제목은 ‘반 고흐의 꽃들:자연의 위대한 책’이다. 남루한 삶,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그 사랑과 경탄을 화폭에 담아낸 고흐는 자연을 전해주는 메신저란 생각이 든다. 친구가 선물해준 책가방에는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들이 가득 피어나는 그림이 담겨있다. 그 책가방을 걸치고 낙엽을 밟으며 가을길을 걸어가며 파란 하늘과 떠가는 구름을 보노라니 그가 전해주는 자연이 일상의 격려이자 위로란 깨우침이 일어난다.

   돈 맥클린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며 만든 노래처럼, “이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가 마음속에 전해온다. “예술의 위로를 상처받은 가슴에”라며, 세상이 몰라줘도 자연과 예술로 접속하며 스스로를 격려했던 고흐의 마음이 와닿는 가을 하루하루에 감사한다. “우리가 그 무엇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그의 말도 경계를 넘고픈 모든 이들에게 주는 따스한 격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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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2005 동국대 명강의상〉수상

· 저서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