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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 군복무 개념, 이제 바꿀 때 됐다"

소한마리-화절령- 2017. 7. 16. 10:07

[박수찬의 軍]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 군복무 개념, 이제 바꿀 때 됐다"

박수찬 입력 2017.07.16. 00:02 댓글 615

복무(服務). 국어사전에서 ‘어떤 직무나 임무에 힘씀’ ‘몸 바쳐 이바지함’이라는 뜻으로 정의하는 이 단어는 주로 공직자들의 세계에서 사용된다. 특히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원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직무와 관련된 위험이 높으며 효율성이 강조되는 조직에서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입대해 짧게는 2년, 길게는 수십여년의 세월을 보내는 군대는 복무라는 단어가 가장 자주 언급되는 조직이다. 복무이탈, 복무관리, 복무 규칙, 복무 규율 등 복무라는 단어가 없다면 표현하기 힘든 군대 용어도 적지 않다. 특히 군복무라는 말은 일반 사회에서도 널리 쓰이는 단어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군복무라는 단어에 담긴 개념은 국군이 창설된 지 수십여년이 흐르면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거대한 기계처럼 개개인의 개성 대신 철저한 복종과 권위주의적 요소가 강한 전통적 개념의 군복무는 창의성과 수평적 사고, 국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적 추세에 맞추어 군복무를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국방 서비스를 제공하는 ‘봉사’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해군 수병들이 제1연평해전 기념식에 참석해 전방을 향해 경례를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까라면 까”…옛날 군복무는 무조건적 복종이 핵심

군복무의 전통적 개념은 상관이 명령을 내리면 부하는 그 명령을 철저히 이행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적의 대포가 코앞에서 불을 뿜어도 상관이 돌격을 명령하면 지체없이 뛰어야 했고, 적의 포탄이 자신의 옆에 있는 동료를 살상해도 자세를 꼿꼿이 유지한 채 전진해야 했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군복무는 그 당시의 전쟁 패턴과 군대 조직의 특성에 기인한다. 기관총이나 클러스터 폭탄처럼 살상력이 강한 무기가 없던 고대 시절,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응집력이 강하고 조직화된 군대의 효율적인 움직임이 필수적이었다. 그리스군을 최강의 군대로 만든 방진(方陣)은 이같은 필요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군에 맞서던 그리스 스파르타 전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스파르타군은 페르시아군의 거센 공격에도 대오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창을 들고 맞서는 방진은 페르시아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리스식 방진은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졌지만 병사 한 명이 대열을 이탈하기만 해도 적의 공격에 무너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었다. 방진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군은 엄격한 군기를 유지했고, 이를 위해 혹독한 군율을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병사들은 하나의 사람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쟁기계의 구성품으로 바뀌어갔다.

2006년 워털루 전투 재현 행사에서 영국군 병사들이 대오를 갖춰 진형을 형성하고 대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머스킷 소총이 전장의 주력으로 등장했던 16세기부터는 이같은 추세가 강화됐다. 다만 그 이유는 달랐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는 재산이 있는 시민들이 병사가 됐지만 16세기 유럽 각국의 군대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용병들이 대다수였다. 아버지로부터 재산과 작위를 상속받지 못해 군복무를 선택한 귀족,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군인이 된 부르주아, 금화 한 닢의 유혹에 무턱대고 입대 계약서에 서명을 해버린 농민 등으로 구성된 군대를 적진으로 돌격시키려면 한 마디 명령에 아무런 생각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엄정한 군율이 확립되어있어야 했고, 그 수단은 구타와 교수형 등 가혹한 처벌과 폭력이었다. 이같은 형태의 군율 세우기는 국민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근대 사회로 접어든 이후에도 지속됐다. 특히 구(舊)일본군과 러시아군처럼 장교와 병사의 괴리가 크거나 민족적 구성도 복잡하던 군대에서는 구타와 폭력에 의한 군기 잡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장의 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전쟁포로와 민간인에 대한 가혹행위가 벌어지면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2015년 6월 한 육군부대에서 예비군 훈련 입소자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복무가 아닌 봉사 개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 군은 창설 직후부터 국민을 위한 군대보다는 국가가 우선시되는 권위주의 방식의 군복무 개념이 자리를 잡았다. 이같은 현상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군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했다.

국방부는 국군이 상해임시정부의 광복군에서 유래했다고 말하지만 실제 국군은 구 일본군과 경찰, 만주군, 군 경력이 없지만 고등교육을 받은 민간인 등이 모여 창설됐다. 다양한 출신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신생 조직은 창설 초기시점부터 정상적으로 가동되며 효율성을 발휘하는 대신 혼란과 비효율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같은 혼란을 가장 빨리 수습하는 방법이 바로 엄격한 군율과 권위에 기반한 리더십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신생 국군에서 두각을 나타낸 구 일본군 장교출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지휘방식이 바로 이같은 리더십이었다.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 엘리트주의, 권위주의, 수직적 조직구조에서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등 전투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구 일본군의 리더십은 신생 국군을 조직화하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 일본군의 병폐였던 경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변화를 원치 않는 조직으로 변해갔다. 병영에서는 지휘통솔이라는 이름하에 구타와 폭력이 일상화되면서 병사들이 의문사를 당했고 부당한 명령을 수행하다 죽거나 다쳤다. 이 모든 것은 ‘신성한 군복무를 위한 희생’으로 여겨져 소리 없이 묻혀버렸다. 

30사단 병사들이 주한미군 CH-47 헬기를 타고 작전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육군 제공
군사문화가 전국을 뒤덮었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권위적인 성격의 군복무 개념이 적합했을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이래 수평적 사고와 실용주의가 널리 퍼지고,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등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군도 민간 사회의 변화를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국민보다 국가를 바라보던 과거의 군복무 태도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해 안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인에게 군복무 여부를 영어로 물어볼 때 “Did you serve in the army?”(당신은 군대에서 봉사했나요?)라는 문장을 사용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봉사하다’라는 뜻의 serve가 복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즉 미군 장병들은 국민을 위해 안보분야에서 봉사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작은 차이 같지만 실제로는 눈에 띄는 수준의 차이점을 가져다준다. 군이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국방정책 추진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여군의 지위 향상이나 동성애자의 입대 허용 등 예민한 이슈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의사결정을 한다. 이는 군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우수한 인재들이 군에 지원하는 사례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K-9 자주포 승무원들이 포격훈련을 앞두고 내부 점검을 하고 있다.
육군 제공
만약 우리 군이 국민에 대한 봉사나 서비스의 개념을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군사작전 치르듯 꽁꽁 숨겨가며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주둔지를 기습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드 주둔지를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에서 초전면 성주골프장 부지로 옮기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국민들 앞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은 행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여론의 격렬한 반대 속에서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을 밀어붙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드 포대의 국내 반입과 성주골프장 부지 배치도 밀실행정과 졸속 처리로 이뤄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에게 안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군이 갈등과 불안을 서비스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련의 사태들은 군이 국민 대신 국가를 바라봤던 군사정권 시절의 행태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개념의 군복무는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정식으로 국방부 장관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송 장관에게 “국방개혁 전반에 걸쳐 군을 개선한다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우리 군을 환골탈태한다는 각오로 해주시길 당부드린다”며 강력한 개혁을 주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전문가는 “국방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방정책을 마케팅하거나 서비스할 줄 모르고, 그렇게 할 의지도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 장관이 가장 먼저 개혁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군인들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안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세를 갖는 것, 이것이야말로 21세기 국군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로 거듭나게 하는 국방개혁의 시작이 될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