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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박규수의 동도서기적 발상

소한마리-화절령- 2017. 8. 11. 16:56

정약용과 박규수의 동도서기적 발상

 

  정약용의 유명한 <기예론>은 기술에 관한 선진적 관점을 보여준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세대가 내려올수록 기예는 더욱 정교해진다.”[人彌聚則其技藝彌精,世彌降則其技藝彌工] 다시 말하면, “광역일수록, 최신일수록 기술수준은 높아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도출된다. 첫째 개방론이다. 고을보다 나라 수준에서, 한 나라보다 여러 나라일 때, 사람이 더 많기 때문에 기예의 수준도 높아진다. 정약용은 기술수준의 향상을 위해서 외국과 교류하고 기술 도입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적으로 ‘개방론’으로 귀착하는 것이다.

  둘째 진보적 태도이다. 과거의 기술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주력하게 된다는 정책적 함의도 중요하지만, 관점이 획기적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전통시대 지식인들이 늘 과거를 이상적인 사회로 말하던 상고적 태도와 상반된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기술, 즉 물질적 측면에 제한된다. 이 점을 다산은 분명히 했다.

  "효제(孝弟)는 천성에 근거하고 성현의 책에 밝혀져 있기 때문에, 다만 이를 확충하고 닦아서 밝히면 예의(禮義)의 풍속을 이룰 것이다. 이는 밖에서 기다릴 것도, 새로 나온 것에 기댈 것도 없다."  

  물질적인 것은 밖에서 들여오거나 최신의 것을 기대하지만, 정신적인 것은 전통의 가치로 충분하고, 실천만이 남은 과제다. ‘기예론’은 기술이 초점이지, 도덕이 초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맹아가 보인다. 나중에 서양의 충격에 직면해, 본격적으로 ‘동도서기론’이 부상했다. 전통의 가치[東道]를 지키면서도 서양의 우월한 기술문명[西器]을 도입하여 서양의 기술문명에 대항하겠다는 논리였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서, 서양과의 교역을 찬성해, 실학과 개화사상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그는 살육과 전란이 끊이지 않은 서양의 실상은 서양 선교사들이 말한 이상세계와는 거리가 멀고, 따라서 그들의 포교는 위선적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동양의 유교문명에 감화된 서양인들이 출현하고, 궁극적으로 동양 문명이 서양을 감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양의 유교문명이 우월하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낙관론이자 동도서기론적 발상이다.

  서양 기술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했던 동도서기론은 동양 전통의 도기(道器)론의 논리구조다. 그렇다면 도와 기는 분리될 수 있는가? 서양의 가치와 기술을 분리시킬 수 있는가? 동도서기론은 도기불상리론(道器不相離論)에 근거한 위정척사파의 공격에 이론적으로 밀렸다. 현실에서는 변법론에 밀렸다.

  박규수가 서양의 실정을 들어 서양 선교사들이 추구한 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러면 박규수가 긍지를 가진 동양의 도는 구현되었는가? 도(道)라는 것이 동도와 서도처럼 다를 수 있는가? 지켜내야 할 도(道)란 과연 무엇인가? 기(器)가 도를 돕지 못한다면, 도의 옳음만을 주장하여 될 일인가?

□ 글쓴이 :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박규수의 영향을 받은 개화파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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