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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용설명서- 文대통령 '복심' 윤건영 앞세운 '정책 워치독' 국정상황실

소한마리-화절령- 2017. 8. 11. 17:47

 청와대 사용설명서- 文대통령 '복심' 윤건영 앞세운 '정책 워치독' 국정상황실

최경민 백지수 ,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기자 입력 2017.08.08. 09:26

'대통령의 눈과 귀', '비서관 중의 비서관', '작은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칭하는 말들이다. 국정원·검찰·경찰 등에서 올라온 각종 정보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국정상황실장은 청와대 내의 실세로 불려왔다. 물론 문재인 정부 내 역할은 과거와 달리 '정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윤건영)가 국정상황실장에 낙점됨에 따라 그 위상이 여전하다는 평가가 적잖다.

국정상황실장은 대통령비서실의 비서관급(1급) 직책이다. 여타 비서관들이 비서실장-수석비서관 아래에 있는 것과 달리 비서실장 직속에 위치한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복심이었던 장성민 전 의원의 건의로 처음 만들어졌다. 국민의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대통령에게 현장의 '생생한 정보'를 보고하자는 취지였다. 미국 백악관의 상황실 컨셉을 토대로 구성했다고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동안 국정상황실은 정보를 다루는 요직 중의 요직이 된다. 국정원·검찰·경찰 부터 각 행정부처에서 올라온 정보가 모두 국정상황실로 모였다. 과거 국정상황실장을 경험했던 한 여권 인사는 "국정상황실이 우리나라의 고급정보를 다 갖고 있을 때가 있었다"며 "정보를 다 모아놓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정책으로 가야할 것, 혹은 긴급 대응해야 할 것 등을 분류했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하게 국정상황실장을 맡아왔다. 초대 국정상황실장은 DJ의 최측근이자 국정상황실 구성을 건의한 장성민 전 의원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첫 국정상황실장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였다. 국정상황실장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한 인사들도 다수다. 3선의원 출신인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현직 국회의원 박남춘·이훈 의원,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 문 대통령의 최측근 이호철 전 민정수석 등의 전직이 국정상황실장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폐지됐던 국정상황실은 문재인 정부에서 부활했다. 하지만 기능은 사뭇 달라졌다. 정보를 독점하는 역할을 맡기 보다 '정책 워치독' 역할에 충실하게 했다. 안보나 재난관리 상황감시 기능의 상당 부분은 국가안보실 산하의 위기관리센터로 이동시켰다. 분권과 소통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스타일에 맞춘 기능 조정이었다. 그럼에도 존재감은 여전하다. 국정상황실장은 매일 오전 9시쯤 갖는 문 대통령의 '티타임 회의'에 임종석 비서실장과 함께 항상 들어가 보고한다.

국정상황실의 청와대 내 위치는 행정관의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국정상황실 내 행정관은 약 30명에 달한다. 다른 비서관실 행정관(5~6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윤 실장 바로 아래인 선임 행정관은 포럼광주 사무총장을 맡아 호남지역에서 문 대통령의 승리에 기여한 박시종 행정관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는 오재훈(전해철)·정용상(문미옥)·최일곤(박주민) 행정관 등이 자리했다. 관 출신으로는 고용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장을 거친 홍경의 행정관, 금융위원회 구조개선과장을 거친 이동훈 행정관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양한 정책이슈를 다뤄온 보좌관 출신들과 부처 출신들이 같이하며 각종 정책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행정관 한 명이 최소한 한 개 부처 정도는 담당을 해야 원활한 업무가 가능한 만큼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3철' 떠난 文대통령의 '마지막 복심'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200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윤건영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사진=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블로그,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마지막 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른바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에 비해 유명세를 타지 않았지만 윤 실장은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의 당선 이후 '3철'이 청와대와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윤 실장의 존재감은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 내 각종 회의에서도 윤 실장의 존재감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현안과 정보를 다루는 국정상황실장 업무 특성상, 각종 사안에 대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경우가 많은데 그 때마다 표면적 이유, 내면적 이유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실장은 회의에서 '문 대통령 맞춤형' 보고를 한다. 왜 복심인지 알겠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윤 실장은 1969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국민대 88학번이다. 국민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다. 1998년 서울 성북구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2002년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親盧) 성향 인사들이 주축이 된 개혁국민정당에서 기획팀장으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이후 2003년부터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했고 2007~2008년 정무기획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이때 윤 실장에게 임명장을 준 사람이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성북구청장에 도전했다가 경선에서 낙선했다. 이후 당시 야인(野人)이었던 문 대통령이 2012년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사표를 내자 캠프에 합류, 수행비서격으로 활동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의원실 보좌관으로 함께 했고 같은해 대선 캠프에서는 일정기획팀장으로 활약했다.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실에서 익힌 정무적 감각과 꼼꼼한 일처리로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에는 정무특보를 맡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쓴맛도 적잖게 봤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와 단일화를 앞두고 친노그룹 일괄퇴진 명단 9인에 이름을 올리며 일정기획팀장 자리를 내려놨다. 문 대통령이 2015년 당 대표 시절에 제20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비주류로부터 '측근 챙기기' 비판을 받자 양정철 전 비서관, 이호철 전 수석과 함께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윤 실장에게 꾸준한 신뢰를 보냈다. 중요한 자리마다 현장에 배석한 윤 실장을 볼 수 있었다. 2012년 11월 단일화 협상 당시 배석한 윤 실장을 두고 안 후보측이 문제를 제기했고, 문 대통령이 직접 "윤건영이 배석하지 못할 이유가 뭐냐. 친노인 게 이유냐"라고 반박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윤 실장은 2016년 총선 직후 문 대통령과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독대 자리에도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대선 국면에서도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옆을 지켰다. '친문' 논란을 피하려고 요직을 피한 채 캠프와 선거대책위원회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선대위에서 상황실 부실장 역할을 하면서 일정, 정무적 아이디어 제공, 조직 살림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무적 감각, 동선 세팅, 조직 관리 등 다방면에서의 능력을 발휘해 문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이 됐다. '3철'이라는 측근을 정권초기 인선에서 배제한 문 대통령이 윤 실장까지 놓을 수 없었던 이유다.


장성민·이광재·이호철까지…국정상황실장, '키맨'의 산실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장성민, 전병헌, 이광재, 이호철, 그리고 윤건영까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키맨'으로 불린 이들이다. 그리고 모두가 정부의 국정상황실장을 거쳤다. 국정상황실장 대부분이 정권을 거치며 '실세'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지나간 길은 제각각이다. 모두가 꽃길만 걷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는 4명의 국정상황실장이 배출됐다. '동교동계의 막내'로 1999년 당시 36살이었던 장성민 전 의원이 초대 국정상황실장이었다. 장 전 의원은 DJ가 14대 대선 패배 후 정계에서 모습을 감췄을 때 곁을 지킨 핵심 측근이었다.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으로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2002년 사무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에는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대통합당의 후보로 출마해 0.01%의 득표율을 올렸다.

장 전 의원과 이상진 전 실장을 거친 후 세번째 국정상황실장이 현재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전 수석은 DJ가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기획단에서 기획위원으로 기여했었다. 이후 3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까지 지냈다. 네번째 국정상황실장은 DJ의 공보비서 출신인 이훈 현 민주당 의원이었다. 전 수석과 이 의원의 경우 여권의 '전략통'으로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젊은피'였던 이들이 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상황실장을 경험한 게 정치적 자산이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총 5명이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인 '386' 핵심들이 맡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을 배치해 권력과 정보의 '중추'인 국정상황실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첫 국정상황실장이 '실세' 이광재 전 강원지사였다는 점에서 이같은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 의원실 비서관을 거쳐 그를 대통령 당선까지 이끈 인물이다. 이후 강원지사에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박연차 게이트'로 도지사직을 상실했다. 현재 싱크탱크 '여시재'의 총괄부원장으로 활약하며 여전히 정치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전 실장의 뒤는 박남춘 현 민주당 의원이 이었다. 정통 관료 출신인 박 의원은 참여정부 국정상황실 팀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했고, 이 전 지사가 국정상황실장 자리를 내려놓자 그대로 후임을 맡았다. 현재 재선의원이자 여권의 정책통으로 활약 중이다. 세번째 국정상황실장을 맡은 이는 '친노 핵심'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였다. 천 전 대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참여당을 창당했고 이후 통합진보당 합당-분당을 거쳐 정의당에서 활동중이다.

참여정부 네번째 국정상황실장이 이른바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 중 한 명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최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활동을 도왔고,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이후 해외로 출국하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실제 이 전 수석은 현실정치에 뜻을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수석에 이어 관료 출신인 구윤철 당시 인사관리비서관이 참여정부 마지막 국정상황실장을 겸임했다. 그는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으로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짰고 내년도 예산안 편성 작업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명박(MB) 정권 이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보직이 사라졌다. MB는 국정상황실을 기획조정비서관·기획관리비서관·기획관리실 등으로 쪼갰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상황실장에 준하는 자리인 기획조정비서관은 박영준 전 차관 등 실세들이 맡았다.

최경민 백지수 ,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기자 shyun88@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