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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국가 그리고 기호의 파노라마

소한마리-화절령- 2017. 10. 6. 07:46

스포츠와 국가 그리고 기호의 파노라마

이정우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 교수)


국기와 국가는 한 나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도구다. 그러나 그러한 상징물들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광화문광장에서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가 흔든 태극기가 의미하는 대한민국과,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외치며 떠올렸을 태극기의 의미는, 비록 그 외적인 기호는 같을지언정, 두 그룹이 꿈꾸는 국가는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국가와 국기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특히 스포츠가 그 논란의 중심에 있다. 흑인선수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무릎 꿇기”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기술하자면, 미국 프로스포츠 현장에서 경기시작 전 국민의례로 국가가 연주되고 성조기가 펼쳐질 때,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인종차별적인 공권력 행사에 저항하는 의미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이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미식축구에서 시작된 이 저항운동은, 메이저리그 야구와 NBA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현장으로 빠르게 전파되었음은 물론, 스티비 원더 등 유명한 흑인연예인들마저도 이러한 “무릎 꿇기”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프로선수들의 이러한 저항을 비애국적 행위로 규정하고, 각 구단주에게 “무릎 꿇기”시위에 참여하는 선수들에 대한 계약을 해지하라고 트위터를 통해 요청한 바 있다. 나아가 팬들에게는 선수들이 무릎을 꿇는 순간, 경기장을 떠나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함께 문화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러한 과격한 요구의 핵심이다. 국가와, 국기, 그리고 애국심. 과연 트럼프 대통령과 흑인선수들은 같은 표상을 바라보며 다른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최근 벌어지는 “무릎 꿇기” 운동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미국에서 흑인인권운동의 흐름과, 그 가운데 스포츠가 차지했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노예제도와 백인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주의적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시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X 등의 인권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나아가 흑인들의 인권을 증진하기위한 사회운동이 강하게 벌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무하마드 알리.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말로 유명하기도 한 1960년대의 대표적인 복싱 챔피언이다. 하지만, 알리 선수는 또한 흑인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원래 그는 카시우스 클레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흑인들이 서구식 영어이름을 따르는 것이 바로 식민주이와 노예제도의 유산이라는 점을 들어,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더불어 알리 선수는 월남전 징집 통지서를 받기도 했지만, 입영을 거부하고 감옥행을 택하였다. 흑인들을 한번도 “깜둥이”라고 조롱하고 차별하지 않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200m 경기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선수는, 메달 수여식에 검은 양말과 검은 장갑을 끼고 등장하였다. 미국 국가가 연주되고 국기가 게양되는 순간 이 두 선수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지만, 정작 인종주의가 만연하는 미국사회로 돌아가면 2등 시민으로 차별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저항이었다. 사건 직후 대표 팀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 모습이 여러 나라로 생중계 된 탓에 흑인인권운동에서 이들의 행동이 미친 여파는 결코 적지 않았다.  

무하마드 알리, 토니 스미스, 존 카를로스 그리고“무릎 꿇기” 운동에 동참하는 많은 흑인선수들. 이들에게 국가와 성조기가 상징하는 미국은 다분히 백인 중심적이고 유색인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국가다. 비록 오늘날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그 문화 전반에는 과거 인종주의 유산이 남아 있다. 때문에 트럼프의 애국심이 지칭하는 미국과 흑인선수들이 경험한 미국 사이에는, 비록 그 외연은 같을지라도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최근의“무릎 꿇기”운동은 상징적 투쟁의 장으로서 스포츠가 감당해온 흑인인권운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저항운동은 미국사회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