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와 세월호, 그리고 코키토스 |
성 염 (전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
누구는 ‘서양 고대사의 기적’이라지만 로마사가 실은 시민끼리, 동맹민족들과, 또 주변의 모든 국가와 끊임없이 벌이는 전쟁사였다. 제국 시대로 들어와 유난히 역사의 웃음거리로 꼽히는 두 황제가 칼리굴라와 네로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재위: A.D. 37-41년)의 별명 ‘칼리굴라’는 어려서 부친의 병영을 따라다닐 적에 병사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애기 군화’라는 뜻.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대로, 칼리굴라가 통치권을 쥔 3년 10개월(우연하게도 박근혜 대통령 직무기간과 일치한다)에 저지른 독재와 만용, 그리고 시민들을 죽이다죽이다 지쳐 “로마 국민이 모가지 하나였으면 참 좋겠다!”던 호언장담은 기록으로 남겨져 갖가지 소설과 연극과 영화로 조롱을 받아왔다. “우리의 모델은 구체(球體)가 아니라 다면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이 진행되면서 국회 소추위의 기소는 사실상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을 가닥으로 한 ‘블랙리스트’로 집중되고 있다. 선거공약에서는 ‘국민대통합’을 내세웠지만 대권을 쥐자 “종북세력까지는 아니다. 빨갱이까지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라면서 자기 심기와 이권을 거스르면 리스트에 올려 문화인, 교육자, 공무원들을 감시하고 쫓아내고 배제해왔음이 드러난 까닭이다. 이런 엄청난 헌법유린의 범죄를 ‘반공이념의 구현을 위한 통치행위’로 내세운 피의자의 발언으로 미루어 기득권집단에 방해되는 국민을 모조리 칼리굴라식으로 처치하고 싶었을까? ‘애기 군화’가 대한민국 헌법을 ‘혁명공약’ 정도로 얕본 게 아닐까, 그 아비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쥐고서 내걸었던?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선박 한 척의 침몰은 대한민국 역사의 갈림길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무능·무책임한 정부의 행태, 진실을 어떻게든 은폐하려던 언론들, 세월호 유가족들을 공격하던 우익 집단들의 행패는 이 사회 기득권자들의 가면을 벗겨 민낯을 보여주었다. 교황은 서울을 떠나며 “타인의 고통에 중립은 없습니다.”라는 훈유를 남겼는데 지난 3년여 한국 주류언론이 국민 눈에서 세월호를 가리고 지우려던 수작은 참 추잡했다. 세월호 침몰은 박근혜 정권의 침몰이었다! 필자는 함양에 살면서 가까운 산청의 한센인 마을을 가끔 방문한다. 알다시피 한센병은 피부의 통각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손발가락이 떨어지고 눈이 멀고 입술이 손상돼도 미리 감지를 못한다. 팽목항을 찾아가 카메라 앞에서 눈물까지 보였으면서도 정작 청와대를 찾아와 진상조사를 호소하려는 세월호 유가족을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은 대통령, 유가족의 농성과 시위를 폭거로 취급한 경찰과 언론사들, 유가족을 찾아와 희롱하고 겁박한 관변단체들이 국민에게는 동포의 고통에 대한 동정의 통각을 잃어버린 ‘문디’들로 보였을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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