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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PD 아내 오영미씨, 이한빛 PD 동생 한솔씨..방송계 갑질과 싸우는 '남은 사람들'

소한마리-화절령- 2018. 2. 1. 16:01

김광일 PD 아내 오영미씨, 이한빛 PD 동생 한솔씨..방송계 갑질과 싸우는 '남은 사람들'

노도현 기자 입력 2018.02.01. 15:12

 

[경향신문]

고 김광일(왼쪽)·박환성 PD. 한국독립PD협회 제공

지난해 7월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독립PD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야수와 방주>를 제작하던 김광일, 박환성 PD였다. 두 사람은 빠듯한 제작비 때문에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못했고, 늦은 시간 직접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김 PD는 아내에게 ‘지금 이동’이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그보다 9개월전인 2016년 10월 26일에는 CJ E&M 소속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한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에 힘들어했고, 비정규직들의 계약을 해지하는 업무를 떠맡아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긴 유서를 남겼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해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그가 원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는 건 남은 이의 몫이다. 김 PD의 아내인 방송작가 오영미씨는 최근 남편에 대한 기억을 담은 에세이집 <그대 잘가라>를 냈다. 이 PD 동생 이한솔씨는 방송 노동자가 사람답게 일할 환경을 만들고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웠다.

오씨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뒤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자부하는 남편을 영웅처럼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김 PD는 종종 ‘하루에 25시간을 일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부부는 늘 휴대폰으로 안부를 전해야 했다. 고생한 대가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오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다른 사람들도 두 PD와 안타까운 사고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더이상 전할 수 없으니 남편에게 하고픈 말도 담았다”고 했다.

오씨는 열악한 방송제작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독립PD나 작가들은 프리랜서이니 본사에서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거의 퇴출당하니 말을 못한다”고 했다. 제 2의 김 PD가 나오지 않도록 더 바쁘게 살 거라고 했다. 한국독립PD협회와 함께 1주기 추모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두 PD의 사고를 그린 영화 시나리오도 써볼 생각이다.

한빛방송노동인권센터 이한솔 이사(왼쪽에서 세번째)와 관계자들.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줄기의 빛’. 이 PD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한빛’을 세우고 그 밑에 한빛센터를 뒀다. 한빛센터는 ‘방송인 신문고’를 만들어 부당행위에 대한 제보를 받고 노동문제를 상담하며 직접 대응에 나선다. 세월호 유가족과 기륭전자, KTX 해고노동자들에게 후원금으로 보낼 정도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이 PD의 삶은 곧 한빛센터가 추구하는 가치로 이어졌다. 한빛센터 이사를 맡은 한솔씨는 지난 24일 센터 출범을 알리면서 “한빛 PD의 죽음은 단순히 가족과 지인에게 안타까운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방송현장의 적폐, 모순, 부조리 그리고 한국사회 노동문화를 전반적으로 드러낸 사회적 의미의 죽음”이라고 했다. 그는 “한빛 PD를 온전하게 추모하는 길은 이 꼬인 실타래를 끈기있게 하나하나 풀어가며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과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빛센터는 가장 먼저 ‘드라마 현장 개선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을 포함한 전체 드라마 제작 현장을 조사하는 게 목표다. 2월 중 방송노동자들이 주로 근무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터를 잡을 예정이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