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가 중요한 캐나다 이력서 | |
3773 | 2006-05-28 | 추천 : 5 | 조회 : 52379 |
캐나다 이력서 그 두번째 이야기
지난 3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개인정보 없는 캐나다 이력서' (당시 필명은 '몽레알레즈')에 이어 이곳 이력서 문화에 대해 부연설명할 기회를 노리던 차에 한 기업의 이력서 양식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캐나다에도 연고(緣故)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려 한다. 더불어 이곳에서의 연고란 한국의 연고와 어떻게 다른지도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예로 드는 이력서 양식은 IKEA(영어로는 '아이키아', 불어로는 '이께아'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케아'란 이름으로 알려진 조립식 가구와 생활용품 등을 파는 회사) 에서 몬트리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력서 양식이다.
우선 먼저 기사에도 밝혔듯이 성별, 사진, 주민등록에 해당하는 SIN 번호, 가족관계 같은 개인정보는 당연히 없다. 다만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분인지만 확인한다.
맨 위에는 주소와 전화번호, 이메일 아이디 등의 연락처
두번째 칸은 어느 직종에 응시하는지, 희망연봉은 얼마인지, 언제부터 요일별 몇시간 근무할 수 있는지 자세히 적게 돼있다. 주말에도 문을 여는 데다 주중에는 9시까지 일하는 매장이기 때문에 근무가능시간은 중요하다. 어떤 경로로 채용공고를 접했는지도 묻고있다. ( 신문, 광고, 직업소개소 등. 몬트리올의 직업소개소는 정부가 운영하거나 지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바로 두번째 칸 밑부분.
부모나 친구들중에 이케아 직원이 있는가? (Avez-vous des parents ou des amis à l'emploi d'IKEA?)
그리고 그게 누구인지 적는다. 여기서 친구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친한 사람들을 말한다.
캐나다 이력서에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여기서 끝나지않는다.
맨 아랫 칸에는 최근 3 군데까지의 전 직장에 관해 적게 돼있는데 아주 자세하다. 경력에 관해서는 한국 이력서보다 훨씬 많이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직장을 떠난 이유가 뭔지, 직장 주소와 전화번호, 같이 일했던 직속상관의 이름까지 적는 것이다.
전에 일하던 곳에서의 소개장(reference)을 요구하는 경우도 이곳 캐나다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베이비 시터처럼 신뢰가 아주 중요한 직종의 경우는 필수라고 봐도 좋다.
자 이제 뒷 면으로 넘어가면...
맨 윗칸은 학력을 고등학교부터 자세히 쓰게 돼있고 두번째는 놀랍게도 또 다시 추천인 이야기다.
추천하는 이의 회사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업무상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적는다. 무려 세 명까지 쓸 수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지원자가 사인을 하는데 위에 적은 사람들에게 회사(IKEA)가 연락해도 좋다는 동의서다.
그 밑에는 아직 복권되지 못한 범죄경력이 있는지를 묻는다. 바꿔 말하면 형 집행이 끝났거나 사면됐으면 전과는 문제가 안된다는 뜻이겠다.
캐나다 이력서에서의 연고주의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신문광고 등을 통한 공식적인 사원모집은 전체 고용의 30% 정도에 머문다고 한다. 그만큼 내부에서 연고를 통한 채용이 많다. 그 이유는 우선 광고의 비용문제,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렸을 경우 과중한 채용업무에도 있겠지만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능력이 검증되거나 신뢰할만한 지원자를 찾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이력서 한두장으로는 지원자의 자질이나 품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몇 번의 면접을 거쳐도 적당한 인재를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사람의 능력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 현재 일하고있는 그 직원이 회사에 만족도가 높아서 가족이나 기타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더 오래 근무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의 추천채용은 캐나다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아는 사람을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 추천해서 지원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미국계 기업의 경우 이력서에 기존 직원이 추천의 뜻으로 사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이력서 양식에서 '공식적인' 추천인 칸은 본 일이 없다.
우리 정서상 가까운 사람에 대해 객관적인 평을 하기보다는 좋은 말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MBA 입학을 위해 한국 지원자가 가져오는 추천서는 국제적으로 신용을 잃었다. 제자, 또는 자기 밑에서 일하던 직원의 앞날을 위해 차마 단점은 적지못하는 인정주의 때문이다. 최대한 추켜세우는 글만 쓰거나 심지어는 지원자 본인이 쓴 글에 서명만 해주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글이 선정과정에 무슨 참고가 될 것인가?
또한, 이제는 한국사회도 많이 바뀌었지만, 캐나다의 경우는 아무래도 이직률이 높다보니 학교 졸업하자마자 평생 직장으로 근무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쓰는 한국식 신입사원 이력서는 맞지않는 이유도 있다.
얼마 전, '이직도 매너있게 해야한다'는 요지의 국내기사가 났다. 이제는 한국사회도 캐나다, 서양식의 이력서 문화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정주의를 배제하고 공과 사를 구분하는 합리주의가 먼저 자리잡아야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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