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기러기 아빠’가 없는 이유
[기자칼럼] 이진숙의 Global Report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의 주제는 ‘세계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였다. 주제 발표를 한 미국 학자는 일본에서 6년을 보낸 경험이 있는 ‘일본통’이었다. 그는 국제 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높은 기여도에 비해 국제화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일본과 같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거론된 중국과 한국의 경우 미국 정부나 학계에 진출한 이들이 적지 않은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이 같은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실제 미국 정부에 빅터 차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이나 전신애 노동부 차관보 같은 이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나 유수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인물들을 보면 일본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 이야기도 나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은 영어를 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제 발표를 한 학자가 한국의 ‘기러기 아빠’를 국제화의 근거로 제시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경우 ‘이산가족’이 되면서까지 자녀들을 해외에서 교육시키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일본인들은 해외 주재가 끝나면 바로 전 가족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주제 발표를 한 학자는 국제 사회에서 일본인의 위상이나 역할이 커진 만큼 더 많은 진출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발표가 끝나자 참석한 일본인들로부터 반박과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에 진출하는 수준이 반드시 국제화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이 말하는 국제화라는 것이 미국화를 뜻하는 것인가, 미국에 거주하는 것이 반드시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가라는 반박 끝에,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일본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필자에게 번쩍 귀에 들어왔던 것은 마지막 지적이었다. 미국 중심의 교육을 받아온 데다, 일본과의 역사 문제를 경험한 때문인지 ‘일본이 미국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해준다’는 점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곧 국제화의 중심’이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미국인에게 일본 사람들은 당당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돈에 절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인가. 세미나에서 지적된 대로 제3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미국의 연방은행장에게 전화를 하면 노(No)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일본은행장이 전화를 걸어오면 골프 약속까지 미루게 된다는 일화는 일본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 거리를 점령한 듯 질주하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최상품은 일본 제품이다. 일본 사람이 미국에서 미국을 배우는 대신 일본을 배우고 싶으면 미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배우라는 배짱이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유학하는 일본 학생들이나 기자, 주재원들이 학업이나 임기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반면 한국인들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자녀를 남겨두고 귀국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자녀들이 한국 교육 체제에 적응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통계에 따르면 워싱턴 인근 지역 한국 교민이 15만 명인데 비해 일본인의 경우는 7천 명에서 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 내 한국계 혼혈인을 취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한국에서 인간 취급을 못 받았어요. 미국이 유일한 탈출구였지요. 일본은 다르답니다. 일본계 혼혈인은 미국으로 오려고 하지 않아요. 일본이 더 편하기 때문이죠.”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 더 넓은 무대로의 진출 등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목표는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한국과 다른 것은 (적어도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거부하고 온 가족이 귀국하는 일본인의 경우에는) 삶의 터전으로 일본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왜 꼭 미국에 남아야만 국제화가 되고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 됩니까? 당신네 미국인들은 이곳 대학에 일본인 교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원한다면 당신네 미국인들이 우리 일본으로 와서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일본에 차별이 없다면 일본인에게 가장 편한 곳은 일본이 될 것이다. 일본 대학이 더 나은 봉급과 대우를 해 준다고 할 때 그 교수에게 미국에 남아서 기여를 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또 요구를 한들 그것이 실현될까?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더 나은 교육과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부모 역시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감내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같은 미국 교육에 대해 한국의 부모와 일본의 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천지 차이다.
결국 ‘일본인 기러기 아빠’가 없는 이유는 기러기 아빠가 될 이유가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홀로 떨어져 사는 한국 기러기 아빠의 수는 2005년 기준으로 만 명에서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숫자는 대학생이 아니라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해 부부를 떨어져 살게 만드는 조기 유학생의 경우다. ‘기러기 부모’들이 춥고 외로운 생활을 참고 견디는 이유는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의 주제는 ‘세계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였다. 주제 발표를 한 미국 학자는 일본에서 6년을 보낸 경험이 있는 ‘일본통’이었다. 그는 국제 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를 역사적으로 분석하면서, 높은 기여도에 비해 국제화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에 따르면, 일본과 같이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거론된 중국과 한국의 경우 미국 정부나 학계에 진출한 이들이 적지 않은 반면에 일본의 경우에는 이 같은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실제 미국 정부에 빅터 차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이나 전신애 노동부 차관보 같은 이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나 유수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인물들을 보면 일본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어 이야기도 나왔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은 영어를 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주제 발표를 한 학자가 한국의 ‘기러기 아빠’를 국제화의 근거로 제시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경우 ‘이산가족’이 되면서까지 자녀들을 해외에서 교육시키고 있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일본인들은 해외 주재가 끝나면 바로 전 가족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주제 발표를 한 학자는 국제 사회에서 일본인의 위상이나 역할이 커진 만큼 더 많은 진출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주제 발표가 끝나자 참석한 일본인들로부터 반박과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에 진출하는 수준이 반드시 국제화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이 말하는 국제화라는 것이 미국화를 뜻하는 것인가, 미국에 거주하는 것이 반드시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가라는 반박 끝에,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은 일본이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필자에게 번쩍 귀에 들어왔던 것은 마지막 지적이었다. 미국 중심의 교육을 받아온 데다, 일본과의 역사 문제를 경험한 때문인지 ‘일본이 미국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해준다’는 점은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 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이 곧 국제화의 중심’이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미국인에게 일본 사람들은 당당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돈에 절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인가. 세미나에서 지적된 대로 제3세계의 어느 나라에서 미국의 연방은행장에게 전화를 하면 노(No)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일본은행장이 전화를 걸어오면 골프 약속까지 미루게 된다는 일화는 일본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도요타는 미국 거리를 점령한 듯 질주하고, 전자제품 가게에서 최상품은 일본 제품이다. 일본 사람이 미국에서 미국을 배우는 대신 일본을 배우고 싶으면 미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와서 배우라는 배짱이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유학하는 일본 학생들이나 기자, 주재원들이 학업이나 임기가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반면 한국인들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자녀를 남겨두고 귀국하는데,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자녀들이 한국 교육 체제에 적응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통계에 따르면 워싱턴 인근 지역 한국 교민이 15만 명인데 비해 일본인의 경우는 7천 명에서 만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 내 한국계 혼혈인을 취재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한국에서 인간 취급을 못 받았어요. 미국이 유일한 탈출구였지요. 일본은 다르답니다. 일본계 혼혈인은 미국으로 오려고 하지 않아요. 일본이 더 편하기 때문이죠.”
국제 사회에 대한 기여, 더 넓은 무대로의 진출 등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목표는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한국과 다른 것은 (적어도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거부하고 온 가족이 귀국하는 일본인의 경우에는) 삶의 터전으로 일본을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왜 꼭 미국에 남아야만 국제화가 되고 세계에 기여하는 것이 됩니까? 당신네 미국인들은 이곳 대학에 일본인 교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만 원한다면 당신네 미국인들이 우리 일본으로 와서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고, 일본에 차별이 없다면 일본인에게 가장 편한 곳은 일본이 될 것이다. 일본 대학이 더 나은 봉급과 대우를 해 준다고 할 때 그 교수에게 미국에 남아서 기여를 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또 요구를 한들 그것이 실현될까?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더 나은 교육과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고 생각한다면 일본의 부모 역시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감내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같은 미국 교육에 대해 한국의 부모와 일본의 부모가 보이는 반응은 천지 차이다.
결국 ‘일본인 기러기 아빠’가 없는 이유는 기러기 아빠가 될 이유가 일본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홀로 떨어져 사는 한국 기러기 아빠의 수는 2005년 기준으로 만 명에서 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숫자는 대학생이 아니라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해 부부를 떨어져 살게 만드는 조기 유학생의 경우다. ‘기러기 부모’들이 춥고 외로운 생활을 참고 견디는 이유는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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