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로 간 여고생

소한마리-화절령- 2006. 6. 16. 10:23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로 간 여고생
10766 | 2006-06-16 추천 : 3 | 조회 : 5868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를 여행하는 게

대한민국 평균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건가요?

내가 특별하게 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어른들이

나를 특별하고 이상한 아이로바라볼 때, 그때뿐이에요.

이렇게 여행을 할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내가 그렇게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Interview

이산하_17세

 

키가 큰 산하와 말을 해보기 전에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 아이처럼 오물거리며 말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열일곱 살 여고생으로 보였다.
산하는 4개월 전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지는 아직 모르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고민이 꽤나 많은 것 같다. 6개월 동안 인도를 여행하다가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태국으로 왔다는 그녀는 비자가 나오는 대로 다시 인도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학교 대신 여행을 하고 있는 거니?


자퇴를 했어요. 잘린 건 아니고… (한참 있다가) 그러니까 휴학을 한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마치고. 지금 한창 고민 중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행하면서 그걸 구체화시키고 있는데… 학교로 돌아갈까 말까, 돌아간다고 해도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산하는 학교를 자퇴했다고 말했다가 나중엔 휴학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 다음엔 다시 자퇴를 했다고 말했다. 휴학을 한 것인지 자퇴를 한 것인지 되물었을 때도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산하에게는 휴학이건 자퇴건 별 차이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 중이라는 얘기가 좀 놀라운데… .


모르겠어요. 나는 나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떠난 것 뿐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통의 아이들은 하지 못하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보면 그런 특별함은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스스로 대한민국 평균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내가 이렇게 지내는 데 감사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렇게 특별하게 지내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여행은 졸업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잖아.

꼭 ‘자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어?


난 자퇴가 극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냥 여행을 하고 싶은데 방학 때는 숙제도 있고 너무 짧잖아요. 여행할 때 이왕이면 시간이 충분하기를 바랐고, 그러려면 학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난 학교가 힘들었어요. 왜 힘들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말하기가 어려워요.

 

 

말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한테 크게 대들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공부하는 게 너무 지겨웠나?
선생님이랑 싸우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으면 좋겠어요. 수험생활, 그런 게 힘든 건 아니었고….

그럼 도대체 뭐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학교에 진학할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학교인 이우고등학교를 선택했어요. 대안학교인데,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에 이 학교가 잘 맞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내 생각과 너무 달랐어요. 학교가 나빴던 게 아니라… 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오로빌, 온 김에 한번 살아볼까?

 

 

열일곱 살 딸아이가 혼자 인도를 여행하도록 허락하는 부모님은 어떤 분들일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산하를 보고 자퇴와 여행을 권했던 사람이 산하의 어머니였다니 궁금증은 더 커졌다 .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매일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엄마가 학교로 전화를 해서는 “산하야, 엄마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가기 싫은 학교에서 억지로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그만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그때부터 여행을 생각하게 됐어요.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은 없어?


학교 안 다닌다고 불안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게 생각 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잖아.
다시 돌아간다는 게 어디에요? 1, 2년 늦게 대학 가는 게 뭐가 문제죠? 인생은 길게 봐야 돼요. 중요한 건 햇수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에요.

 

 


인도에선 어디를 여행했니?


5월에 인도의  첸나이로 가서 첸나이와 그 주변을 여행하다가 6월에 너무 더워서 북부로 갔어요. 스리나가르와 다람살라에서 한 달간 지내고 이후 첸나이 남쪽에 있는 오로빌에서 지냈어요. 오로빌에서 지낼 때는 여행자도 없고 워크숍도 별로 없어서 일거리를 찾았어요. 그러다 근처의 학교에서 보조교사를 하게 되었죠. 아침 9시에 가서 열 살 꼬마들 수업하는 교실에서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소풍가면 아이들 챙기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노래 가르쳐주고 게임 하고, 뭐 이런 일을 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학교 사서를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친구가 오면서 다 그만두었죠.

 

 


산하가 얘기하는 오로빌은 인도에 있는 공동체로, 난 작년에 전세계의 공동체 방문기를 담은 『세계 어디에도 내집이 있다』를 읽고 오로빌을 알았다. 어린 산하가 그 오로빌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오로빌을 어떻게 아니?  


원래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고, 그런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었어요.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 작은 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가 어떤 공동체 안에 있는 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있었죠.

그럼 전세계 수많은 나라 중 인도를 선택한 것도 오로빌 때문이었어?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인도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익숙한 느낌이 있었어요. 전에 엄마와 인도 불교 성지순례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해 대강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 선택이 쉬웠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여행을 떠나야지’라는 생각만 하다가, ‘그럼 무슨 여행을 해야 하나?’ 했고, ‘세계에 있는 공동체나 대안학교를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에요.

 

 

왜 하필 공동체를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공동체 사람들은 대안적인 삶을 산다고 나름대로 이념을 갖고 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같이 살아 보고도 싶었고.

 


 
실제로 가본 오로빌은 어땠어?

 


오로빌의 일원이 되면 인도를 자기 나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가서 느낀 건 오로빌 사람들이 그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붕 떠있는 것 같았어요. 똑같이 오로빌에 살아도 여기가 내 땅, 내 자리라고 생각하며 지내는 것과 오로빌이라는 편안한 환경에만 의지해서 지내는 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오로빌에서도 돈이 필요한데 돈 떨어지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돈을 번 다음 다시 돌아와 지내는 게 이중적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뭔가 괴리감이 느껴졌죠. 그 사람들이 정말 인도 시민이 되고 싶은 건지 모르겠어요. 노동력이 싸고 환율 차이로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오로빌에서 사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모든 게 애정의 문제인 것 같아요. 난 인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 마음도 용기도 없어요. 그래서 오로빌에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내가 얻은 결론은 사람 사는 것은 어딜 가나 똑같다는 것. 오로빌 안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되는대로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적당히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산하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여행 중 특히 힘들었던 게 있니?


스스로 전부 책임지는 거. 그런 것도 힘들고… 잘 모르겠어요. 사실 힘든 것보다는 그래도 이렇게 혼자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아니, 사실 혼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혼자 여행했다고 말하기가…  그러니까 내 말은, 뭐가 혼자 여행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혼자 한국에서 왔지만 완벽하게 혼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계속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고 친구들을 만났고… 아! 힘든 일? 하나 있었어요. 내가 여행을 하면서 사랑을 했거든요. 그게 힘들었어요. 그 외에는 별로 힘든 거 없었어요.

 

 

사랑? 누구랑?

 


그게 짝사랑이었는데 그냥 그렇게 됐어요. 독일 사람이었고 나이는 스무한 살. 영어를 좀 더 잘 했더라면 그 친구와 좀 더 친해졌을 텐데. 그 친구는 오로빌에서 1년 지내고 독일로 돌아갔어요. 좋아한다는 말은 못했지만 같이 일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좋아해서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지금은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 친구는 어떻게 만난 거야?

 

 

오로빌에서 만난 한국분이 젊은 독일 애가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같이 일해 보면 어떻겠냐고 소개시켜주셨어요. 일은 너무 힘들어서 못했고, 나중에 우다비 학교에서 보조교사 하면서 다시 만났어요. 오로빌이 생각보다 좁은 곳이라 어딜 가나 맨날 만나요.

 

 

 

잘 생겼어?

 


그럼요, 잘 생겼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첫인상이 비열해 보여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졌어요. 밝고 재미있는 친구였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때? 여행을 계속할 생각이야?

 


나도 몰라요. 하하. 하지만 겨울쯤 한국에 갈 거라는 거, 이건 정말 확실해요. 가고 싶어요.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는 건 춤을 더 배우고 싶어서. 12월에는 사막에 갔다가 오로빌로 돌아올 거에요. 겨울에 사람들이 많은 즐거운 오로빌이 보고 싶어요. 한국에서 나랑 여행하려고 오는 친구가 오로빌을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그 친구는 생태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거든요.

 

 

 

춤을 배우고 있어?

 


‘오디씨’라는 인도 춤을 배우고 있어요. 오로빌에서 한 달 동안 배웠고 델리에서 본격적으로 개인 교습을 받은 지 두 달 됐어요. 전부터 춤에 관심이 있었거나 즐겨 추거나 하진 않았는데, 춤을 계속 배우게 돼요. 왜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느낌은 들어요. 춤을 추면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감정 표현이 한결 자연스럽고 편안해진다는 거. 전에는 노래하거나 춤을 추는 걸 매우 쑥스럽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어요.

 

 

 

대학 가면 무슨 공부를 하고 싶니?

 


불교철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요즘 진로 고민이 제일 많아요. 학교에 복학하려면 내년 1월까지 한국에 가야 하고, 복학하지 않으면 1년 더 있을 수 있잖아요. 내가 정말 고민하는 것은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요.

 

 

 

하고 싶은 여행을 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뭔가 불편해 보일까?

아직도 네 안에 뭔가 힘든  게 있니?

 


왜 힘들어 하냐면… 학교를 떠나기로 한 것은 여러가지 고민으로 힘들기 때문이었고, 그때는 그 자리를 떠나야만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았어요. 떠나고 나서 시간이 제법 흘렀는데 내가 수시로 변하니까 그 변화된 모습에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아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6개월 인도에서 지낼 때 돈은 얼마나 들었어?

 


부모님이 주신 500불을 들고 왔는데, 델리에 오기 전까지 4개월간 500불정도 쓴 것 같아요. 오로빌에 있을 때는 가난하게 살았어요. 일부러 아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고,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냈어요. 사실 일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돈 쓸 일이 별로 없어요. 그래봐야 오토바이 대여료랑 기름값 정도이고 학교에서 일하니까 점심은 공짜로 먹었고. 그 돈 다 쓰고 나선 마침 뭄바이로 아버지가 오셔서 돈을 더 받았어요.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항상 집 생각해요. 지금도 가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 춤을 배우고 싶어서.

한국에 가면 배울 수 없잖아요.

 

 

 

(산하가 그린 체 게바라)

 

 

춤 배우는 데는 돈 많이 들지 않아?

 

 

일주일에 다섯 번 하는데, 두 번은 공짜이고 세 번은 수업당 200루피(4,500원) 들어요.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 오디씨를 배우는 것에 감동하셔서 아주 싸게 해주시는 거에요.

 

 

 

참, 인도의 첫인상은 어땠어?


음… 인도에 대한 첫인상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을 텐데 딱 꼬집어 뭐라 말할 수가 없어요. 인도에 오기 전 사람들한테 들은 얘기와 책에서 읽은 정보들 때문에 이미 선입견이 생겨버린 것 같거든요. 그래서 뭘 느껴도 온전히 내 느낌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순수한 것은 아닌 거죠.

 

 

 

오로빌에서 잠시 살았던 건 인도를 그냥 여행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

살아보니 어땠어?

 

 


솔직히 인도를 여행하는 동안 늘 흥정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같은 흥정이라 해도 여행자로 흥정을 하며 힘든 것과 찬거리 사러 시장을 다니는 것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또 한 곳에 정착해 살아보니까 친구를 사귀게 되고 여행할 때 본 인도와는 다른 모습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흔히들 인도 사람들이 외국인들 많이 속이고 골탕 먹인다고 하는데, 난 그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내가 일을 저지르죠. 하하.

 

 

읽고 있던 책은 무슨 책이야?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건데… 요즘 종교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거든요. 한국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델리에 있는 한인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이런 게 바로 여행이 준 변화죠. 여행을 하면서 갑자기 성경이 공부하고 싶어졌거든요. 사실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해선 아직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긴 한데,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건 별개의 문제라 생각해서 성경공부도 할 겸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매주 나를 시험에 들게 해요. 카트리나 같은 지진 있잖아요? 그런 것을 비롯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사건 사고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게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격이라고 설교 시간마다 말씀하시는 거에요.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싶어서 간 것인데, 그렇게 말할 때마다 정말 곤혹스러워요. 더 당황스러운 것은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다시 마음을 잡으려는 중이에요.

 

 

 

처음에 산하는 매우 별난 아이로 보였다. 특히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 중인 자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 산하를 더 특별한 아이로 생각하게 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인 의미건 기성세대는 산하를 여느 고등학생들과 달리 분류한다. 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좋지 않을 거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과연 그 또래의 아이들이 가야할 길이 그 한 가지뿐일까?

 


산하는 이따금씩 나의 고등학생 시절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초, 중, 고등학교 12년을 개근한 내게 자퇴란 극단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 학교를 빼먹는다는 것은 결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학교를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탈이었다. 내가 산하를 보면서 무엇인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런 나와는 다른 발칙한 용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산하는 지금 자신에게 어렵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지낸다고 했다. 바늘귀만한 틈도 없는 산하의 진지함이 오히려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답다. ‘여행’이라는 큰 결정을 내린 것처럼 앞으로도 지혜롭게 제 갈 길을 잘 찾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난 산하가 진지해서 좋다. 하지만 좀 더 자주 웃는 모습을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On The Road - 카오산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지음/ 넥서스BOOKS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