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마클 이병과 조승희

소한마리-화절령- 2007. 4. 30. 14:37
 

‘조승희’ 사건과 한국사회의 성찰



지난 1992년 동두천 기지촌에서 미군 상대의 윤락녀인 윤모씨가 마클 이병 이라는 미군병사에게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 반세기 동안 외국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면서 발생한 수많은 주권 침해와 인권 유린 범죄 사례 중의 하나로써 최근의 반미 무드를 타고 두드러지게 드러난 사건이다. 특히나 마클 이병의 잔혹한 살인 수법으로 한국인의 피를 나누어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응하는 동두천의 재야 시민단체 등 뜻있는 이들의 분노에 찬 규탄은 너무도 정당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 가족들과 동료들의 분노는 마클 이병의 사형만으로는 진정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두천의 시민 단체는 물론 모든 단체 인사들과 여성계에 의해 미군 철수 또는 불평등한 한미 행정 협정의 합리적 개정을 제기한 것은 지극히 옳고 바람직한 요구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동두천 윤모씨의 가족이나 동료가 아닌 재야 시민단체의 규탄운동 구호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가 치솟기로 생명과 인권의 존중과 그 보호에 누구보다 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진보적인 재야․ 사회단체들이 덮어놓고 가해자의 사형을 요구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거나 국가 권력의 합법적 살인이 과연 정당한 것이냐는 회의에서 출발하는 사형 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실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악독한 미군 범죄자라고 하지만, 아직 나이 어린 철부지 마클 이병에게 일말의 동정의 여지를 찾아 볼 필요가 없었을까? 사태를 조금이라도 냉정하게 관찰하고 판단할 여유라는 것은 정말 불필요한 것일까? 그동안 진보 민주화 운동 진영이야 말로 독재 권력이 범법 피의자를 덮어놓고 구속부터 하고 재판도 끝나기 전에 유죄의 예단을 갖고 죄인시하는 그동안의 법 관행을 누구보다 비판하고 반대해 왔지 않은가? 윤모씨가 죽었으니 범인도 당연히 죽어야 한다는 탈리오 법칙(法則) 수준의 사회규범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민주화 운동, 변혁은 아니지 않는가?


그동안의 미군 범죄가 아무리 잔혹했고 부당한 협정 때문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주권이 훼손되고 피해자와 국민들의 법 감정에 상처를 입었다 해도 마클 이병은 자신의행위에 대해서만 처벌받으면 되는 것이다. 마클 이병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자신이 하지도 않은 지난날의 일까지 책임지고 과중한 처벌을 받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이다.


가족들과 동료들의 슬픔과 분노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미군 주둔과 SOFA협정의 부당성과 그 시정에 대한 입장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석명(釋明)하는 태도를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범인인 마클 이병에 대한 일말의 동정을 표하고, 사형을 요구하는 것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자제하며 법원 당국의 엄정한 재판을 기대하는 사려 깊고 합리적인 입장을 담은 의견을 발표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같은 태도를 기조로 규탄운동을 차분히 전개하였더라면, 재야 사회단체에 대한 여론의 인식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마클 이병 자신도 스스로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성찰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일방적인 규탄이 미군주둔에 따른 제도를 향한 것을 넘어 유약할 수밖에 없는 개인을 향하여 과도하게 분출될 때, 미군당국이나 범법자 자신도 이에 대한 방어심리를 강화할 뿐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반성을 강제할 만큼 압도적 힘이 없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비단 윤모씨 사건만이 아니다. 무슨무슨 사건만 생겼다하면 다짜고짜?구속하라!?부터 앞세우는 태도는 다양한 이해집단과 전문부문의 병립과 대등한 발전을 전제로 하는 민주 사회의 기본 규칙을 침해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기하여 공론에 붙이되 성급하게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해 집단의 상호존중을 전제로 하는 시민사회에서 각각의 사회운동이 존립할 수 있는 기본 요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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