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田惠麟!!

소한마리-화절령- 2007. 8. 30. 08:05
 

    田惠麟!!



 1965년 1월 10일 이제 31살인 수필가 田惠麟이 자살했다. 아직 60년대 초,중반의 가난한 후진국, 아니 문화적 식민지 청년들의 가슴에 천형(天刑)처럼 자리잡고 있는 절망과 자학과 쌍을 이루는 서구 제국주의 본국에 대한 부박(浮薄)한 동경, 삶의 허망함을 너무 일찍 깨달은 자의 허무주의와 지독한 염세주의 등 온갖 시큼한 감상과 제스추어로 가득 찬 그의 글들이 60~70년대의 설익은 영혼들을 유혹했다. 경기여중․고, 서울대, 뮌헨대라는 호화찬란한 학벌이 그 얄팍한 감상문들의 깊이를 `보증`(?)해주었다.

 전혜린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를 만든 것은 그의 사후에 간행된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1966)의 발문(跋文)일 것이다. 이어령의 이름으로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지금은 저명한 불문학자인 김화영이 24살이던 그때 썼다고 하는데 그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어둠이 깔리는 박명(薄明)의 층계 위에서 그 여자는 기다리듯이 서 있다. 그에게 다가가는 이는 그 여자가 얼마나 낯선 얼굴 속에서 놀라움의 눈을 뜨는가를 볼 것이다. 만나는 자리에서 그는 항시 떠날 준비를 한다.(.....)당신은 이제 알 것이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값을. 그리고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전혜린을 강원도 탄광촌에서 아직 소년티를 다 벗지 못한 10대 후반에 접했다. 머리와 가슴에는 산골소년답지 못한 온갖 잡동사니 지식과 간 큰 野望으로 가득 찬 데 당장의 처지는 천형(天刑)의 몇 겹 지옥과도 같은 지하 수 백, 수 천 미터의 갱(坑)속에서 인생과 젊음을 나날이 갉아먹고 있다는 조바심에 몸부림치던.....

 전혜린이 들려주는 한 잔의 맥주를 들고 앉아 있는 뮌헨의 노천카페 풍경과 알프스와 슈바벵의 식민지 모국이 주는 달콤하고 매콤한 동경과 절망이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윤심덕의 그것과 함께 절친한 친구의 진술처럼 ‘절망적인 삶보다는 더 나아 보이는 다른 세계’에 대한 유혹 또한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누구나 비슷한 추억을 한 움큼씩 안고 산다. 비록 돌이켜 생각하면 몹시도 유치찬란한 상처이자 아련한 꿈이지만. 바로 그 젊은 날에 꿈꾸었던 허망하고 유치한 추억이 누군가의 표현처럼 ‘입안 가득 고여오는’ 달콤하고 매캐한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나중에, 그러니까 스물 몇 살 무렵 이 땅의 변혁운동가를 자처하며 슬픈 조국의 현대사의 한 가운데를 질풍과 노도처럼 짓쳐 나아갈 시절, 그 행복한 추억의 ‘전혜린’이 일제의 특고형사(特高刑事)로,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짓밟은 헌병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특무대장 김창용과 함께 독재의 주구(走狗)로 악명을 떨친 전봉덕(田鳳德)의 큰딸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받은 실망 때문에 한 동안 ‘혜린’을 애써 미워하였다. 결국 혜린이 독일에 유학을 가고 온갖 낭만을 부릴 수 있었던 물적 기초는 그 아비가 일제와 독재의 하수인으로 얻은 특권과 재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받은 상처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미 조국의 정의와 민족혼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고 비슷한 부역과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중생들도 품위(?)를 유지하며 잘 사는데 이미 죽고 없는 ‘혜린’에게만 그 아비에 연좌하여 단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직접 친일매국의 범죄를 저지른 모윤숙이나 김활란도 아닌 ‘혜린’에게만 지식인으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싶어서 다시 옛날의 그리움을 어느 만큼 되살리는 중이다. 이를테면 지난 몇 년 전부터 변혁의 열망 속에 잊혀지고 잃어버린 내 청춘의 기억을 하나씩 복원하려는 것이다. 이를테면 몇 차례의 나랏밥을 먹는 동안 유실되고 압수되고 잃어버린 그 많은 책과 음반 따위를 헌 책방을 돌며 되사 모은다거나 하는 행위와 더불어 ‘혜린’에 대한 애절한 모정(慕情)을 되살리기로 하는 중인 것이다.

 

 그렇게 전혜린을 빌미 삼아 아련한 과거의 감상에 빠져 보려는데 아직도 어깨에 힘이 덜 빠져서인지 무언가 어색한 기분을 숨길 수는 없다. 아쉬운 20세기가 어느덧 저물어 버리고, 아득한 미래일 것 같던 서기 2000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우리 기억의 대부분은 지난 세기에 머물러 있음을 반영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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