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처럼

평등없이 정의없고 정의없이 평화없다.-한 노점상의 죽음-

소한마리-화절령- 2007. 10. 16. 18:26

"한 붕어빵 아저씨의 죽음 앞에서…"


[기고] 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프레시안 송경동/시인]

   지난 12일 새벽, 경기도 고양시 한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사람이 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부인과 함께 떡볶이와 붕어빵 등 먹거리 노점상을 해오던 이근재 씨(48세)였다.
  
  바로 전날인 11일, 고양시는 시내 일대에서 대대적인 노점 단속을 벌였다. 올해 들어 수 차례 '노점상 집중 단속'을 벌였던 고양시는 이날도 400여 명의 용역직원을 동원해 단속에 나섰다. 이를 막는 노점상과 용역업체 직원들의 싸움에서 8명의 상인이 다쳤다. 고(故) 이근재 씨 역시 이날 단속에서 부인과 함께 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고양시 관계자는 "노점상들이 폭행을 당한 것은 상인 측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2007년 들어 "도시 미관을 해치는 불법 노점상을 근절하겠다"는 방침이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지역자치단체로 확대되고 있다. 서울을 '깨끗하고 맑은 세계적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는 오세훈 시장 못지 않게 강현석 고양시장도 "시민의 휴식공간을 잠식하는 노점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강력한 단속 의지를 밝혔다. 고양시는 지난 7월 대대적인 노점상 정비를 위해 3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노점상인들은 이 같은 정책에 대해 분노를 넘어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거리를 미화의 대상으로 보는 지역자치단체장의 '원칙' 앞에서 '생계를 위해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력하기만 하다.
  
  전국노점상연합회 회원이던 고 이근재 씨는 올해 고양시와 서울시가 본격적으로 노점상에 대한 강제철거를 확대해나가자 이에 항의하며 집회와 천막농성에도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숨진 그날도 고양시 직원은 언론에서 "12월 말까지 노점상 단속에 대한 계획이 수립돼 있는 만큼 지속적인 단속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인이 16일 <프레시안>에 고 이근재 씨를 추모하는 시를 보내왔다. 그는 함께 보내온 글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형 자살인 듯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사회구조적 타살이라고 생각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전노련과 고양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5일 항의집회를 벌인 데 이어 16일 오후 1시부터 화정역에서 '이근재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양시 노점탄압 책임자 처벌과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결의대회'를 벌일 예정이다. <편집자>
  
▲ 붕어빵 노점상 ⓒ프레시안

  비시(非詩)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 불량식품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붕어빵을 13년동안이나 구워 오종오종 어린이들에게는 발길 멈추는 꿈을 주시고, 배고픈 이들의 배를 값싸게 채워주시며, 가난한 모임방에 훈훈한 인정이 배달되게 하시고, 그 한 푼 거짓 없는 노동으로 자식들 공부도 시켜주셨다는, 붕어빵 아저씨 故 이근재 선생님 영전에 드림.
  
  어떤 그럴듯한 표현으로 당신을 그려줄까
  13년 동안 밀가루값 가스값 빼면
  이제 100원 벌었고 200원 벌었고 300원 벌었고를 헤아리며
  변함없이 붕어빵만 구웠을 당신의 무미건조한 삶을
  당신의 옆에서 또 그렇게 순대를 썰고 떡뽁이를 팔던
  당신의 아내를
  
  어떤 그럴듯한 은유로 그날을 보여줄까
  2007년 10월 11일 오후 2시 고양시 주엽역 태영프라자 앞
  트럭을 타고 갑자기 들이닥친 300여명의 용역깡패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붕어틀이 부서지고 가판이 조각나고
  조각난 리어카라도 지키려다
  부부가 길바닥에서 얻어터지며 울부짖던 날을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 그 밤을 형상화해 줄까
  잘난 것 없는 죄, 못 배운 죄 억울해
  붕어빵 순대 떡뽁이 팔아 대학공부시키는
  자식들 마음 아플까봐 몰래 숨죽여 울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사죄하며
  부르튼 아내 손 꼭 잡은 채 잠들지 못했다는 그 밤을
  
  어떤 이미지로 그 아침을 새겨줄까
  뜬눈으로 샜을 새벽 4시 30분
  일용일이라도 나갔다 오겠다고 나간 아침
  어디론가 떠돌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설움 참지 못하고
  길거리 나무에 목을 매단 당신
  
  당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500여 가구의 노점상 양민들을 거리에서조차 몰아내기 위해
  31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는 고양시청
  30명도 채 안 되는 노점상 양민들의 생존권을 빼앗기 위해
  150명의 폭력배를 고용한 구청
  그 공무수행을 돕기 위해 나와 있었다는 경찰
  쓰레기처럼 짓밟히되
  저항하면 공무수행위반으로 구속하겠다는 경찰
  그렇게 폭력배를 고용한 관공서를 경찰이 보호하며
  양민을 향한 폭력이 공무로 수행되는 나라
  
  이런 민주주의가 판치는 세상을
  어떻게 그럴 듯하게 문학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려줄까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읊어줄까
  국화꽃 같은 누이로 그려줄까
  어떤 존엄한 시어를 찾아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연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그러면 나의 시도 어느 평론가들로부터 상찬받을 수 있을까
  그 애매함으로, 그 모호함으로, 그 규정되지 않음으로
  그 깊은 서정성으로, 그 새로운 해석과 역사성으로
  어떤 문학사의 말미에나마 기록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더러운 세상
  이 엿같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저들이 당신들의 생존권과 터전을 가진자들을 위한 법으로 들어엎듯
  당신들이 또한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없는자들의 새 법을 만들어 들어엎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무슨 시를 쓸까
  
  여보, 미안해
  여보, 미안해
  붕어빵틀을 잃어버려 미안해
  당신의 순대를
  당신의 떡뽁이를
  당신의 도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 게로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았으리*
  이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보편적이지는 않았으리
  이렇게 평범하지는 않았으리
  
  * 김남주 선생의 시구절을 빌어 옴.
  
송경동 시인은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맡고 있다. 포스코 건설노동자 파업 당시 숨진 하중근 씨를 위한 추모시,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 씨에 대한 추모시를 짓는 등 적극적인 현실 참여 시 활동을 벌여 왔다.


송경동/시인 (sealovei@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