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11명이 줄줄이 죽어나갔다우∼"
한 직장에서 1년여 만에 11명의 동료 노동자가 숨졌다면? 그런데도 회사 측이 근무환경 점검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
그래서 남아 있는 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일하고 있다면? 또 이를 외부에 알리며 도움을 청하는 직원들은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가상이 아니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과 금산 제조 공장, 인근 연구소 등에서 최근 1년여 동안 노동자 11명이 줄줄이 숨졌다. 이중 대다수가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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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부터 최근까지 사망자는 모두 19명이다. 이 중 무려 9명이 심장질환으로 돌연사 했다. 나머지도 폐암, 뇌출혈, 약품 중독, 사고사 등으로 사망원인이 석연치 않다. 사망자 유가족들은 대책위를 구성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과 과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장 앞에 모여 사인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전산통제장비로 화장실 이동시간까지 체크"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넘친다.
지난 2003년 특수건강진단 결과 5명이 '벤젠 취급주의 요관찰자'로 판정 받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도 유기용제 중독에 의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다발성 뇌경색으로 산재 판정을 받았다.
대전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타이어 접착에 필요한 유기용제(솔벤트)를 보호장비 없이 스펀지 등에 묻혀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솔벤트는 호흡기를 통해 흡수돼 뇌와 신경에 해를 끼치는 유해물질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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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노동자는 "사측이 IMF 이후 경영상 이유로 종전 3반 3교대를 4조 3교대로 바꿔 두 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도 "회사 측이 노동자 의사와 무관하게 잔업과 공휴일 출근 명단을 적어놓는다"며 "사실상 강제로 공휴일에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산통제장비(DAS)를 활용해 화장실 이동시간까지 체크하고 있다는 증언도 쏟아졌다.
무재해 달성시 호봉을 올려주는 '무재해 인센티브 제도'도 노동자 스스로 산업 재해를 감추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유가족 가계도 작성... 종교, 술 담배 여부까지 뒷조사"
열악한 작업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사측은 뒤늦게 벤젠이 함유된 유기용제의 사용 중지를 지시했다. 이때가 지난 9월이다. 이어 외부기관과 전문가들을 불러 때늦은 '근무환경 점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당초 '점검결과 공개'를 약속하다 돌연 "공개 불가"로 선회했다. "자율 점검한 것이라 공개여부도 자율"이라는 얘기다.
유가족 대책위는 자율 점검을 중단하고 지역 시민사회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참여하는 역학 조사를 벌이자고 요구했다.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동료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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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유족대책위 주관 집회에 참여하거나 동조하면 명예훼손으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경고문을 내붙였다. 또 은밀하게 유가족의 가계도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가계도에는 유가족의 할머니에서 형제자매를 비롯 3세대에 걸쳐 학력, 종교, 술 담배 여부까지 기재돼 있다. 유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사생활까지 뒷조사했다는 지적을 받기 충분한 대목이다.
이쯤 되면 유가족들이 기댈 언덕은 노동청 밖에 없다. 유가족들은 노동청에 거듭 한국타이어 전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뒷짐'진 노동청... '뒷전'인 노동자 안전
한국타이어 사망자 현황 (사망시기, 당시 근무처 등) |
황00 돌연사 2001 대전공장 품질관리과 손00 화상/분신 2007 한국QA(도급사) 최00 폐 암 2007 대전공장 LTR사상공정 이00 급성뇌출혈 2007 금산공장품질관리팀 |
노동청은 "현재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중대 재해와 업무상 재해는 근로감독을 실시할 수 있지만 개인 질병에 의한 것은 근로감독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히고 있다. 역학조사 과정에 유가족이 추천한 전문 의사를 포함시켜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노동부 소관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앞서 노동청은 지난 2004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으로부터 한국타이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받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노동부 장관에게 사망자 수와 함께 11가지 노동환경 개선 항목을 꼽으며 특별근로감독을 청하는 유서를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국타이어에 근무하는 한 노동자는 기자를 찾아와 "특별근로감독을 호소한 이후에만 13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갔다"며 "그런데도 노동청은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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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회사 노동자부터 돌아봤으면...
한국타이어는 홈페이지를 통해 "소외받고 그늘진 곳을 돕기 위해 의료지원사업 등 사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해외시장에서의 가격 인상과 ERP(전사적 자원관리)로 사상 최대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사측의 눈에는 정작 제품을 만드는 소속 현장 직원들의 소외받고 그늘진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생산력 발전과 직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 쓰여야 할 과학기술이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는데 쓰이는 21세기 산업 현장을 어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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