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절령통신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소한마리-화절령- 2010. 8. 30. 21:24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2010년 08월 30일 (월) 16:17:59 부천타임즈 webmaster@bucheontimes.com

황인오(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 '4대강공사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 8일차에 동참한 황인오

 

'4대강공사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 8일차

8월 27일 1,

 

望江村(망강촌)

 

高低烟樹外 多小浦人家(고저연수외 다소포인가)
過柳懸帆直 張釐補綱斜(과류현범직 장리보강사)
細花漁作浪 凉雨鷺占沙(세화어작랑 량우로점사)
顧此塵埃夢 欲從還路賖(고차진애몽 욕종환로사)

 

강 마을을 바라보면서 1899.

 

안개 속 높고 낮은 나무들 너머로
여남은 고기잡이의 집들이 보이네
버드나무 아래로는 곧게 돛을 세운 배가 지나가고
울타리에선 비스듬히 그물을 펼쳐놓고 깁네
잘 자란 꽃 아래에선 물고기가 물결 일으키고
서늘한 빗줄기 속에선 해오라기가 모랫벌이 서 있는데
이 마을 돌아다보니 티끌 세상이 꿈 같지만
머물고 싶어도 다시금 갈 길은 멀기만 해라

 

 

國恥(국치) 100년을 이틀 앞둔 오늘이다.
나라가 망하는데 자결하는 선비하나 없어서야 되겠는가 탄식하며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한
梅泉(매천) 黃玹(황현)선생의 초기 시 한수를 읽었다.

옛 사람들은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라고 하여 비록 나라, 즉 왕조는 멸망해도 의연히 남아있는 국토, 산하를 바라보며 많은 회환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4대강 파괴사업은 명목이나마 나라는 그대로 있으되 국토의 산하가 파괴되는 전대미문의 사대로 치닫고 있다.이땅에 발을 딛고 定着(정착)하기 시작한 겨레의 조상들보다 앞서 한반도를 유유히 관통하여 숨결을 불어넣던 산하, 국토의 젖줄인 강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쇳덩이에 찢기며 수만 년, 수억 년을 갈무리 하던 강의 속살들이 아프게 노출과 해체의 능욕을 당하고 있으되 기껏해야 메아리 짧은 소리로 허공을 향해 종주먹질이나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매천선생처럼, 국토가 찢기는 현실을 당하여 함께 사대육신의 찢김을 당해야겠으나 우리를 대신하여 수십일 째 이포보 위에서 공통을 자청한 이들과 텔레파시로나 교감할 수밖에-

   
▲ '4대강공사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 8일차

 

8월 27일 2.

 

絶命時 三 (절명시 삼)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를 생각해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매천선생의 절명시 4 首(수) 가운데 세 번째 시이다.
글 아는 사람 노릇이 어렵다는 것은 고금동서가 다 같은 형국이다.
굳이 나까지 글 아는 사람, 지식인을 자처할 것은 없으나 어쨌거나 역사와 겨레에 복무하기로 마음 먹은지 어언 30년이 넘었으니 이 강토에 몰아치는 미친 바람을 모른달 수는 없는 일이긴 하다.

고작 하룻동안 곡기를 멀리한데서 나라의 위정자들이 눈이나 꿈쩍하겠는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대체 이 땅에 숨을 붙이고 산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설마 그들인들 우리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고 역사와 겨레에 복무하는 방법이 다를 뿐, 어디 나라를 팔아먹기야 하겠는가. 하며 쓰린 속을 애써 달랜 것이 지난 2007년 12월이다. 헌데 쇠고기 파동과 용산 참사를 대하는 저들의 야만을 목도하면서 나름대로 30년 동안 정세를 보는 안목이 약간은 될 것이라고 자만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자탄한 바 있다.

도대체 역사의식이라고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이명박, 김문수, 이재오 무리들의 反 생명정치형태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미디어법이나 기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악행들이야 또 어떻게 정세가 변동이 되어 정권이 바뀌면 되돌릴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도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그러나 4대강은 아니지 않는가. 겨레의 숨결이 함께 수천 년, 수만 년, 아니 수억 년을 면면히 이어 흘러야 하는 국토의 핏줄을 파 재끼는 야만은 그냥 둘 수 없는 일이다.

재작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시대의 지구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아의 징조가 아니었던가? 석유에 기반을 둔 근대문명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새로운 거대 패러다임으로 바꿔 타지 않으면 달리 어쩔 수 없는 재앙을 맞닥뜨리게 될 것을 미리 알려 준 것이 아니었을까?

산업혁명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욱 크게 인류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는 신호탄 말이다. 징조를 읽고 종말에 대비하는 새로운 버전의 문명을 예비하는 지혜가 아직도 부족한 지구인들에게 종말을 피할 수 없는 일일까?

   
▲ '4대강공사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 8일차

 

8월 27일 3.

 

안양천-서시  

 

                      박민규

 

저것 좀 봐 물장구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반짝반짝
물 위에 은비늘로 뿌려지고 있어
나붓나붓 어깨를 맞댄 공장들이
고대 수그려 바라보는 강가엔
쉬는 시간인지 고깔을 쓴 아가씨들
웃음소리도 까르르
물결 타고 노네
공장 탁아소에서 아기를 찾아온 아줌마는
버드나무 아래 젖을 먹이고
저만치
쑥스러운 여인들은 여울목에.

 

부천에 살고 있는 박인규 시인의 <들풀의 사랑>이라는 시집에서 강을 다룬 몇 편의 시에서 하나 골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우리 국토를 유장하게 관통하는 4대강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도회지 한복판을 흐르는 와글벅적하고 사람냄새 가득한 생활하천이야기입니다.

사실 안양천 정도만 해도 다른 나라에서는 큰江에 속한다고 합니다. 특히 기독교성서에 나오는 이름난 江들, 요단江(요르단江)이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江들은 말이 江이지 우리로 치면 시골마을 앞에서 흔하게 보이는 개천정도라고 합니다.

도심 한 가운데 한강과 같은 큰 江이 흐르는 도시는 그리 흔치 않다고 하지요. 아시는 분은 아는 것처럼 파리의 세느江도 막상 눈으로 보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미라보다리’가 어쩌구 할 만큼 대단하지도 않지요. 강 폭 이나 流量(유량)따위는 중랑천 정도라고 할까요?

어쨌든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강은 문명의 근원입니다. 강에서 배태된 文明은 자신의 근원인 江을 죽이려하고 있습니다. '개발'이라면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생태근본주의는 저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文明자체가 어떤 식이든 자연을 改造하는 것이고, 자연 그대로의 삶이 주는 고통을 덮어놓고 수용해야 한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삶을 포기하는 말 그대로 문명이전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건 이미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어떤 식이든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야 하는 인류의 처지에서 강이나 산을 마냥 두고 보기만 할 수는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지난 3-4백년간 가속도를 내며 달려 온 산업문명이 가져온 역기능을 근본적으로 뒤돌아보면서 새로운 문명의 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총체적 역주행을 지켜보며 중앙무대의 외곽에서 조그맣게 부르짖는 우리의 외침이 힘을 발휘할까 만은 그래도 이런 작은 외침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을 믿습니다. 단지 4대강만이 아닌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인류사적 전환기의 한 가운데 우리가 서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오락가락한 날씨, 아열대화하는 한반도의 기후 변화가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8월 28일(아침 7시 40분)

 

강의 백일몽(헤날강)

 

                      가르시아 로르까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그 영상들은 남긴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에게 바람을 남겨 놓는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

(얼마나 슬프고 짧은
시간인가!)

허나 그건 우리에게 그 메아리를 남긴다.
강 위에 떠도는 그것.

부나비들의 세계가
내 생각에 엄습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그리고 축소된 심장이
내 손가락들에 꽃핀다.

   
▲ '4대강공사 중단 촉구 릴레이 단식 농성' 8일차

 

1936년 8월, 스페인 공화정을 총칼로 무너뜨린 프랑코 장군의 파시스트 팔랑헤당에 의해 38세 젋은 나이로 학살당한, 시인 가르시아 로르까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강의 백일몽’이다.

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파시스트 독재자들은 로르까처럼 강과 자연과 어울려져 서정을 남기는 시적 아름다움에 태생적으로 적대적인 모양이다. '태양 아래 모든 것에 바람은 수의를 입힌다.'는 구절에서 보듯 거대한 문명을 이룩한 인간의 모든 것 또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한날 덧없는 무명임을 노래하는 따위의 사물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혐오하는 것이다.
하긴 좌. 우익을 막론하고 모든 권력은 기본적으로 밝은 햇빛아래 까발리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되도록 감추고 독점하며 썩은 권력을 대대손손 이어가려는 속성을 갖는 것이 권력이라고 할까.

4대강은 물론이고 시민들에게 무엇이든 일단 숨기고 보는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마치 부나비처럼 눈앞에 닥치고 있는 거대한 심판을 알지 못한 채 파국의 낭떠러지를 향해 지쳐 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패퇴되는 것은 저들의 사정이겠으나 문제는 그 동안 고통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입을 이 땅의 민중들과 山河인 것이다.

'포플러 나무들은 시들지만 우리에게 바람을 남겨 놓는다'우주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지만 우리는 세상의 모든 작은 것들과 함께하는 자취를 남긴다. 상식과 순리를 부정하는 이 정권의 어깃장이 이쯤에서 방향을 전환해서 좀 더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생과 공존의 시간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