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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범한 사랑이야기 : 크리스와 돈 (Chris & Don)

소한마리-화절령- 2011. 9. 20. 17:36

 

어느 평범한 사랑이야기 : 크리스와 돈 (Chris & Don) 





1. 그 남자, 이셔우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라는 천재 작가가 있었다.
그런 작가가 있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좀 웃긴다. 모짜르트라는 천재 작곡가가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아무도 모짜르트라는 천재 작곡가가 있었다라고 모짜르트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어느날, 모짜르트는..." 쪽이 더욱 나아보인다. 하지만 이셔우드 쪽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니까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겠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영국에서 1904년에 태어나서 독일과 미국을 돌아다니며 소설/수필/영화대본을 집필한 작가다. 수많은 소설을 썼지만 그를 유명하게 한 건 그의 중편 소설인 "베를린이여 안녕"이다. 2차대전 직전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가난한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6~70년대 히트 뮤지컬 "캬바레"의 원작이되었다.

이셔우드는 명문가 출신의 엄친아였다. 훤칠한 외모에 지적인 눈빛, 누구와도 쉽게 친해지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유난히 반짝거리는 남자였다. 1차대전에서 전사한 영국군 장교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돈 걱정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던 그는 명문 공립 렙튼 스쿨을 거쳐 캠브리지에서 수학하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어머니의 소망대로 의사가 되려고 했지만 뮤즈에게서 축복받은 기질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공부 시간을 줄여 글을 쓰려고 학업이 빡센 캠브리지를 중퇴하고 여러 중급 의대를 전전하며 문학과 의사수업을 병행하려 했지만 결국 그는 문학을 선택한다.

캠브리지 입학당시의 이셔우드




이셔우드의 친구 중에는 영시 좋아하는 고등학생들도 아는 유명한 영국 시인인 W. H. 오든이 있었는데 이 둘은 연애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 못지 않게 뜨거웠다. 둘은 (우리나라로 치면)초등학교 때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그 때의 3학년 차이라는 건 까마득 한 거라 아마도 그다지 의미있는 친분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이셔우드는 막 캠브리지를 중퇴한 스물 한 살이었고 오든은 막 옥스포드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열여덟 새내기 였다. 고등학교 때 부터 시인으로서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오든은 도도한 공주기질의 독불장군 이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학교까지 때려친 이셔우드의 치열한 모습과 한 없이 반짝거리는 재능에 매료되었음이 틀림없다. 오든은 이셔우드에게 자신의 시를 보냈고 이셔우드는 조언을 해주는 식으로 일종의 멘토역할을 해주게 된다. 결국 일 년 후 오든은 생물학에서 문학으로 전과하게 된다.

당시 그들의 관계에 대해 이셔우드는 훗날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한다.
"우리는 섹스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로맨스는 전혀 없었어요. 그냥 섹스친구(fuck buddy)라고나 할까. 맞아요 바로 그거였어요"
하지만 이셔우드의 냉소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관계는 그 이상이었다. 물론 서로를 알고 지내는 동안에도 둘은 각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곤 했지만 그 와중에 여행기 한 편과 세편의 희곡을 함께 만들어 낸다. 이셔우드가 모든 걸 버리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베를린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에는 오든과의 친분도 있었다. 옥스포드에서 학업을 계속하기위해 영국을 오가던 오든과는 달리 이셔우드는 베를린에 완전히 정착했고 그 곳을 기점으로 유럽을 떠돌며 그는 소설가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간다.


오든(우)과 이셔우드


1939년 1월, 이셔우드와 오든은 전운이 감도는 유럽을 떠나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길은 거기까지였다. 뉴욕에 머무르기로 한 오든과는 달리 이셔우드는 따듯한 햇살을 찾아 대륙의 반대편인 캘리포니아에 정착하면서 그들의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이셔우드가 캘리포니아로 떠날 무렵, 오든은 뉴욕에서 일생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미국시인 체스터 콜맨을 만나게 되지만, 이셔우드가 그의 진짜 짝을 만나는 것은 그로부터 14년 후의 이야기다.



2. 그 소년, 돈 바카디
그 날은 1953년 발렌타인 데이였다. 이젠 48세가 된 이셔우드는 평소에 어울리는 젊은 아이들 중 한 아름다운 소년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돈 바카디, 사진 속의 공식나이는 19세라지만...



돈 바카디가 이셔우드를 처음 만났을 때 몇 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1953년, 18세 때라고 하는데 그건 아마도 18세 미만의 성행위에 대해서는 법적동의를 인정하지 않는 캘리포니아 주법의 눈치를 본 듯한 계산이다.  최근 돈 바카디는 자기 입으로 "아마 열여섯 쯤이 아니었을까"라는 다소 충격적인 고백(?)을 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꽃게이였던 돈 바카디의 형 테드 바카디를 따라 산타모니카로 놀러나가서 처음 크리스 이셔우드를 만난 것이 열여섯 그리고 그와 처음 밤을 보낸 것이 열 여덟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아마 맞을 듯 하다.

이셔우드는 바카디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곧 이셔우드는 가는 곳마다 그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가 어울리던 헐리우드의 지식인사회는 바카디와 이셔우드의 나이 차이가 30년이나 된다는 점을 조금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듯 하다. 이셔우드의 남성편력이야 그의 작품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었다. 50줄을 바라보는 이셔우드는 자기보다 훨씬 젊은 청년들을 자주 데리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이셔우드의 애인이겠거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익숙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의 편력을 감안해도 30년 차이는 너무 심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바카디는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이셔우드가 이젠 열 두살짜리 애랑 사귄다"라는 소문이 돌기까지 했다.


아무리 봐도 부자지간


그나마 개방적인 축에 속하는 이셔우드의 지식인 친구들 중에서 조차도 정말 도시락 싸가지고 다니면서까지 말린 사람들이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당시 이들의 사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셔우드의 친구들 조차 그들의 관계를 "원조교제"라고 손가락질 하며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30년의 차이를 감안하면 이셔우드가 어리고 예쁘장한 바카디를 단순한 트로피나 장식품쯤으로 여겼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바카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역시 그 쪽도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외모를 밑천 삼아 능력있는 중년남을 만나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건 너무 흔한 처세의 방법이니까.  그런 이해의 계산을 배제하고도 첫눈에 반하는 강렬한 사랑이라도 정신적 레벨에서의 의미 있는 교류 없이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게다가 저 정도 나이 차이, 게다가 어느 한 쪽이 철없는 10대라면 더더욱 그런 교류는 힘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이셔우드가 죽는 1986년까지 무려 33년간 지속된다. 이셔우드의 나이 82세, 바카디의 나이 52세 였다. 둘은 그토록 사랑했었다. 정확히 그 둘 사이에서 어떤 형태의 교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짐작하고 냉소하거나 감동할 뿐이다.

3. 돈 바카디의 성공
바카디를 단순히 애인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동반자로 여겼던 이셔우드는 자신의 삶과 일에 바카디를 연관시키려고 했다. 그가 바카디와 사귄 후 최초로 출간한 소설인 "World in the Evening"의 원고를 타이핑한 건 바카디였다. 사실 그 사실에 대해 널리 알리고 다닌 건 그들의 관계를 반대해온 지식인 친구들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우리는 사랑에 빠져있지만 결코 너희에게 미안하지 않다"라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바카디가 사춘기를 벗어나면서 부터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머리가 크기 시작한 바카디의 눈에는 자신의 초라한 처지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신의 애인과 그의 화려한 친구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그림의 길을 보여 준 것 역시 이셔우드였다. 원래 나름대로 그림에 소질이 있던 바카디에게 이셔우드는 초상화를 부탁했고 바카디는 곧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결국 그림에서 소명을 찾은 바카디를 이셔우드는 자신의 모국인 영국의 슬레이드 스쿨에 보내 교육 받도록 도와준다. 이쯤 이야기 하면 미국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그 돈 바카디가 이 돈 바카디!" 하실지도 모르겠다. 돈 바카디는 독특한 화풍을 구축한 미국서부의 대표적인 초상화가들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카디는 그 자신이 그림의 소재를 닮아가며 그리는 독특한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한 번만의 세션을 통해 그렇게 모델을 흉내내면서 그림을 완성시키는 바카디는 자신이 완성한 그림에 자기의 서명이 아닌 모델의 서명을 받아 넣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초상화는 모델과 화가의 공동작업이라고 여기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돈 바카디의 이름을 미국 미술사에 아로 새긴 작품
"제리브라운 주지사 공식초상"







둘의 관계가 평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끊임 없이 베풀어 주려는 이셔우드의 선의(善意) 역시 바카디에게는 가끔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성공이 언제나 이셔우드라는 대문호에게 빚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그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그에게 "당신은 날 만나기전에 많은 다른 남자들을 만났었는데 나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어요. 나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라고 투정부리기도 했다. 그 때도 이셔우드는 "예술가라면 당연한 것"이라며 오히려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질투 때문에 그의 마음은 찢어지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바카디 역시 다른 사람을 잠시 만날 때라도 언제나 마음 속 가장 큰 자리엔 이셔우드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노인이 시들어가는 동안 청년은 피어나고 열매를 맺었다. 


4. 크리스와 돈 : 어느 평범한 사랑 이야기

1981년, 77세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게된다.
이제 자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셔우드만큼 나이를 먹은 47세의 돈 바카디는 사실상 30년 가까이 인생을 공유해 온 이셔우드의 배우자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주법은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둘은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바카디에게 두려운 것은 만약 이셔우드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가족도 아니고 친지도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그의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 그래서 둘은 변칙적인 방법이지만 "입양"을 통해 법적인 관계를 확립하기로 한다. 그러니까 법적으로 부자지간이 된 셈이다. 

이셔우드의 증세가 악화되고 마지막 선고를 받은 1985년 여름, 바카디는 모든 초상화 의뢰를 취소하고 이셔우드 곁을 지키기 시작한다. 그를 보살피며 생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이셔우드의 모습을 그린다. 크로키에서 채색화에 이르는 다양한 화법으로 그의 동반자를 그려가며 바카디는 이셔우드와 함께 죽어가는 과정을 나누고 있었다. 

점점 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날이 늘어만 갔다. 



1986년 1월 4일의 아침, 이셔우드의 침대 옆에서 자고 있던 바카디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를 발견한다. 그리고 슬프게 울기 시작한다. 32년 11개월의 만남이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바카디는 그를 그냥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오후 1시까지 흘릴 눈물을 다 흘려버린 바카디는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쪼그라든 채로 죽어버린 연인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 장, 두 장,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진다. 열 한 장째를 끝내고 열 두장째를 시작할 무렵, 이셔우드의 주치의가 도착한다. 바카디는 조용히 스케치북을 치우고 이제 그를 보낼 준비를 한다. 


5. 뒷이야기
작년 이셔우드와 바카디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했고 이 때 이뤄진 인터뷰에서 바카디는 이셔우드 이후의 그의 연애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한 바 있다. 90년대 한 때는, 자신이 익숙한 관계는 이셔우드와의 관계뿐인데 이제 이셔우드의 나이 또래의 사람을 만날 수는 없어서 자신이 이셔우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26살 연하의 남자를 만났었지만 10년 정도 지속되다 이젠 끝났고 요즘은 생전처음으로 자기 또래의 사람을 친구 반 애인 반 처럼 사귀고 있다고 한다. 




 












* 이 글의 제목과 단락4의 소제는 이 둘의 사랑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Chris & Don: a Love Story"에서 따왔다.  누가 수입해서 상영해줄지 모르지만 한다면 꼭 보러가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