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II. 현대사상의 뿌리들 ① 카를 마르크스(1818 ~ 1883) : 변증법, 프락시스

소한마리-화절령- 2011. 12. 10. 09:26

ㆍII. 현대사상의 뿌리들 ① 카를 마르크스(1818 ~ 1883) : 변증법, 프락시스

“<자본론>에는 이른바 경제학보다도 더욱 풍부한 통찰이 들어있고 경제학자는 도리어 그것을 알 수 없다.”

가라타니 고진이 설명한, 자신이 <자본론> 읽기를 그만둔 이유다. 경제학 이상의 풍부한 통찰…. 그랬다. 카를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넘어 역사와 철학에 정통했고, 문학·예술·외국어 등 매우 광범한 영역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풍부한 통찰이 가능했던 원인을 단순히 지적 관심의 다양성에서 찾을 수는 없다.

마르크스의 폭넓은 관심 영역에서 항상 중심적 지위를 차지했던 임금노동자 계급은 ‘시민이면서도 시민이 아닌 자,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자’였다. 그들은 소외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소외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 저술들의 배경화면과도 같았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인간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마르크스의 정치적 저술들은 그의 정치관과 열망을 함께 보여준다. <공산당선언>과 프랑스혁명에 대한 세 저술(<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내전>)이 혁명에 대한 개념과 열망을 보여준다면, 그를 뒷받침해야 할 당파성은 <고타강령비판>에서 표현되었다. 그는 동시대의 혁명가들조차 그 폭력성과 구성원에 대해 혐오를 표시했던 파리 코뮌을 지지하고 이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전형이라고 선언함으로써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시도했다. 그의 관심은 실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정치란 궁극적으로 경제적 운동을 반영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았고, 따라서 그 토대를 이해하고 법칙을 해명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이 문제의식은 <자본론>을 통해 집대성되었다.

정치와 혁명에 대해 언급할 때, 또는 자본주의의 종말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예언자처럼 보인다. 에리히 프롬이 마르크스의 주장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 대부분 오해였다고 말했을 때, 아마도 세계는 이 측면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그는 차라리 (죽은 신체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살아있는 유기체를 취급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해부학자에 더 가깝다.

그는 어떤 이상적 세계나, 마땅히 존재해야만 할 영원한 자연법칙 같은 것을 상상하지 않았고, 주어진 대상이 존재하는 특수한 방식과 역사적 조건을 분석했다. 따라서 그의 비판은 도덕률과는 관련이 없었다. 노동가치설은 노동자가 세계를 지배해야만 한다는 도덕적 가정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가치 창조적 행위가 어떤 방식으로 전도되어 자본이라는 사물의 자기증식으로 나타나게 되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노동은 분석의 전제가 아니라 결과였으며,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모순된 행위로 현상되어야 했다. 노동의 이중성이야말로 그의 학설의 핵심적 문제였던 것이다. 세계는 단순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에 지배된다. 그것이 그가 파악한 세계의 실체적 본성이었고 실존적 진실이었다.

정치·자본 말할 때 도덕률이 아닌 특수 방식·역사적 조건으로 분석

동시대의 다른 혁명가들과 달리 마르크스는 어떤 이상이나 새로운 윤리를 호소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한 요구는 하나의 환상을 다른 종류의 환상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주어진 사회를 운동시키는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인간은 움츠러든 자아를 확인하는 대신 행동하는 주체가 된다. 비판의 무기가 아니라 무기의 비판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정의롭지 않은 현재의 질서를 비판하는 대신 그러한 질서를 만들어내는 역사적 조건을 공격하고자 했으며, 인간성을 탓하기 전에 무지를 질타했다. 이성을 강조한 사람은 물론 많았다. 하지만 마르크스처럼 엄격하고 일관되게 자기의 주장을 밀고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라일과 쇼펜하우어로 하여금 외딴 문명이나 이상화된 과거로 도피하게 하고 자기 시대의 최대의 적인 니체를 히스테리와 광기로 몰고 간 어지러운 시대에 오직 마르크스만이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자신을 지켰다.”(이사야 벌린)

<자본론>은 1867년에 출간되었고, 마르크스는 1883년에 죽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20세기를 지배했고, 동유럽의 몰락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며,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숙고한 19세기의 현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이미 그 증거다. 대중의 저항이라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20세기 전체(실은 자본주의가 지배적이었던 시대 전체)에 걸쳐 존재했다. 공황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상을 발견하고 고민했지만, 그 치유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케인스의 세계는 채 30년이 가지 못했고, 신자유주의 역시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희생은 불가피했다. 사회주의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유의미의 내용이 항상 같았던 것은 아니다.

홉스봄의 말마따나 20세기는 극단의 시대로 평가받을 만했다. 경제발전의 속도가 그랬고, 전쟁의 규모가 그랬다. 공황이라는 부작용이 미치는 폐해도 극단적이었다. 극단성 속에서 인간의 소외를 목격한 지성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에 심각한 회의를 가졌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형이상학적 단언이 인간의 존재를 소외시킨다고 본 실존주의는 본질이 아니라 존재를 되살리고 싶어 했으며, 존재 그 자체에 본질적 의의를 부여하고자 했다. 실존주의가 마르크스에게서 유의미성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소외의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존의 주제는 개인이었지 계급은 아니었고, 그들이 보기에 마르크스의 이론은 수정될 필요가 있었다. 근대성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 문제로 되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했고 이를 거부하고자 했지만, 문제를 단순히 경제로 환원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이들에게 세계는 획일화된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가진 것이었고, 획일성의 강요는 곧 인간성의 파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자본주의의 문제는 인간의 본성인 다양성을 억압하고 자본의 논리에 따른 획일적인 구성을 강요한다는 데 있었다. 비록 마르크스가 여전히 유의미한 존재였을지라도 역시 변형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변형이란 곧 발전과 동의어였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훼손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반드시 마르크스와 일치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의 사상과 다른 사람의 사상이 융합되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일례로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의 개념은 대체로 마르크스와 같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따라서 계급적이다. 그는 자본의 개념을 경제적 영역에 국한시키기보다 교육, 사회, 문화 등의 영역으로 확대해 사용함으로써 자본을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는 기제로 만들고 그에 대한 저항을 촉구한다. 하지만 개념을 이렇게 확대하는 방식 자체는 마르크스가 아니라 베버의 것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다중과 제국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정치의 복권을 주창한 네그리는 발리바르로부터 슈미트주의의 혐의를 받아야 했다.

마르크스가 현대 사상, 특히 인문학에 미친 영향을 한두 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르트르에서 지제크에 이르기까지 그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매료된 현대 사상가들의 사유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마치 편린처럼 펼쳐져 있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광범위한 영역에서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고진이 마르크스를 ‘가능성의 중심’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이질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질성의 중심에는 동질성이 존재하고, 그 동등성의 실체는 증식만이 목적인 자본의 욕망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들의 저항을 옹호하고, 저항하는 인간들을 주체로 고양시키려는 데 있다. 마르크스의 요청은 실천적 지성이었고, 행동하는 주체였다.

마르크스를 더 알고 싶다면

한 사상가의 사상을 이해하는 첩경은 그의 전기를 읽는 것이다. 보통 대상에 비판적인 쪽은 과(過)를 과장하여 실체를 왜곡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사야 벌린이 쓴 전기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는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과장을 최대한 피하는 남다른 재주를 보이고 있다. 자크 아탈리의 전기는 화려한 듯 보이지만 뭔가 밋밋하다.

마르크스의 최대 업적은 역시 <자본론>이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 흠이지만 그의 사상의 정수를 맛보려면 이만한 게 없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이라는 고유의 대상을 넘어 한 사회의 상부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그에 조응하는지를 짐작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열렬히 강조한 방법론(변증법)의 진정한 교본이기도 하다. 풍부한 역사 이해는 또 하나의 부록이라고 해도 좋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형성>(로만 로스돌스키)은 <자본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역사란 곧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강조는 마르크스가 처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다른 혁명가들과 달리 단순히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의 일시적 필연성과 역사적 의의를 지적하고자 했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은 산업혁명 기간 동안의 노동자계급의 경험, 러다이트운동에서 드러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을 연구한 탁월한 저서이다. 그가 제시한 ‘도덕경제’라는 문제의식은 경제사의 연구에서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