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구조주의의 태반

소한마리-화절령- 2011. 12. 10. 09:32

구조주의의 태반

임상훈 | 대안연구공동체 연구위원
ㆍ소쉬르 (1857 ~ 1913)

스위스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이야기하지 않고 20세기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다. 그만큼 그의 업적이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위대한 언어학자가 생애 단 한 권의 책도 출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기획에서 소쉬르에 앞서 소개했던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의 경우, 그들이 남긴 놀라울 만한 저작물의 양은 내용을 떠나 그 자체로도 경이로움이다. 그에 비하면 저자로서의 소쉬르는 거의 학문적 흔적을 남기지 않은 셈이다. ‘거의’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단 하나의 저서 <일반언어학 강의>는 그의 사후, 몇몇 제자들이 강의로만 이루어졌던 그의 이론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책무로 만들어낸 일종의 강의노트 정리이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그러한 ‘막중한’ 책무를 스승의 사후까지 기다렸으며, 소쉬르 자신 또한 생전에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일까? 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소쉬르 본인은 자신의 새로운 인문학적 방법론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녕 스스로 사장시키려 했던 그 엄청난 내용들이 사후 얼마 안 있어 현대 인문과학의 지형을 바꿔놓게 되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중요한 건 원소가 아니라 체계”…체계 원리로 ‘구조’개념 밑그림
 
소쉬르는 언어학자, 그것도 당대 최고의 언어학자였다. 그를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만든 당시의 언어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언어를 대상으로 삼는 연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 연구는 특정 언어의 올바른 문법과 어휘 사용, 발음법을 제시하는 규범적 접근이거나 보편적 언어의 기원에 관한 막연한 신화적, 철학적 추론에 근거하는 사변적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언어 연구의 역사에 일대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바로 18세기말 이후 이루어졌던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발견이었다. 유럽과 인도라는 먼 지리적 상황, 그리고 현대와 고대라는 먼 시간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던, 소위 ‘인도-유럽어족’의 여러 언어들은 이후 상호 유사성에 따라 게르만어, 슬라브어, 켈트어, 로망스어 등의 하위 어족으로 분류되며 지구촌 다른 언어에까지 같은 방법론으로 연구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소쉬르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수학하며 1878년 <인도유럽어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고>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단숨에 학계의 주목을 끈 그는 이후 프랑스 파리의 고등연구원에서 게르만어 비교문법 등을 강의하다 고향인 스위스 제네바로 돌아와 역시 역사비교언어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언어의 비교문법, 그리고 후기로 가면서는 신화연구 등의 더 넓은 분야로 관심을 넓혀갔다.


하지만 정작 소쉬르의 이름을 사후 역사에 남기게 된 분야는 그가 생전에 명성을 날렸던 역사비교언어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1907년부터 1913년 사이에 3회에 걸쳐 제네바 대학에서 강의했던 ‘일반언어학’이라 불리는 전혀 새로운 언어학이었다. 거인의 눈에만 한계와 그 너머가 보이는 걸까? 소쉬르는 ‘역사비교’가 아닌 ‘일반’이라는 용어에서 보듯 더 이상 사적(史的) 방법론으로는 언어 고유의 영역을 다룬다고 장담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른 모든 분야도 역사적 진화의 관점은 있으며 그것은 언어학 고유의 영역도 아니고 그렇게는 언어학의 학문적 단위와 자율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문제는 언어학 고유의 방법론과 고유의 대상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언어학자의 임무였다.

그는 언어학의 대상을 묻는 인식론적 출발로 시작한다. 모든 학문의 대상은 미리 주어지는 것일까? 얼핏 보면 그래 보인다. 언어가 있으니까 언어학이 있을 테고, 사회가 있으니까 사회학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소쉬르는 그러한 경험론적 사고를 단호히 배격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한국어 ‘여우’라는 단어를 발음하면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적어도 서너 가지의 대상을 만든다. ‘여우’는 일정한 파장으로 들리는 음향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의 관계인가? 또는 그 뒤에 숨은 ‘교활하다’는 의미를 지닌 한국 사회 고유의 용법인가? 얼핏 봐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접근법이 나오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연구대상이 등장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대상이 관점을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이 대상을 만들어낸다”고 단언하면서 언어학의 거대한 인식론적 전환을 이뤄낸다.

그렇게 그가 고안해낸 언어학의 대상이 바로 “언어활동 능력의 사회적 산물인 동시에, 개개인이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집단이 채택한 필요한 약정의 총체”로서의 언어(랑그, langue)이다. 반면 그 총체를 근거로 개인이 활용하는 구체적 발화가 말(빠롤, parole)이 된다.

이렇게 소쉬르는 랑그-빠롤과 같은 양분 이론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기표(시니피앙, signifiant)와 기의(시니피에, signifie′)의 대립관계이며 이것이 바로 소쉬르를 20세기 인문과학의 조타수로 만든 개념이 된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언어는 구체적 소리와 구체적 관념의 대응관계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라고 발화를 했다면 그 소리가 저기 길에 심어져 있는 저 대상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쉬르에 따르면 기호작용을 통해 지시하는 그 발화체 [나무]는 음향으로서의 소리 자체가 아니라 그 구체적 소리를 가능하게 하는 ‘청각영상’, 즉 보이지 않는 틀(기표)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수많은 소리들은 음향학적으로 보면 모두 다르지만 그중에서 어떤 것들은 우리가 ‘같은 소리’라고 판단한다. 그 판단의 기준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특정 체계 안에서 다른 소리들과 구별되는 상대적 동질성들의 합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상대적 동질성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체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소들이 아니라 그 원소를 결정지우는 체계인 것이다. 이 체계라는 단어가 훗날 일련의 학자들이 선호했던 ‘구조’라는 개념의 기원이 된 것이다.

구조란 무엇인가? 바로 구체적 원소가 아닌 전체를 지배하는 틀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 축구팀에서 박지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라운드에서 구체적으로 박지성의 위치는 없다. 상대편 골문 앞일 수도 있고, 우리 편 골문 앞일 수도 있으며 중간 지역일 수도, 왼쪽일 수도 오른쪽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위치는? 바로 다른 선수와 중복되지 않아야 할 그 어딘가이다. 박주영과 겹치지 말아야 할, 기성용이나 차두리와 겹치지 말아야 할 그 어딘가여야 구조 안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만약 어떤 다른 선수와 늘 위치가 겹친다면 둘 중 한명은 빠져야 한다. 구조 안에서 원소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 원소를 다른 원소들과 구별하게 하는 틀, 이것이 바로 소쉬르가 말한 체계(system), 훗날 구조주의자들이 선호했던 구조(structure)의 원리이다.


소쉬르의 사후, 그리고 그의 <일반언어학 강의> 출판 이후 이 구조의 개념, 특히 기표(시니피앙)의 구조가 야콥슨과 트루베츠코이라는 두 걸출한 러시아 언어학자들에 의해 발전되며 ‘음운론’이라는 분야로 새롭게 탄생한다. 이 이론은 그 후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학문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하면서 이른바 구조인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킨다. 이와 함께 한동안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루이 알튀세르 등의 스타급 학자들과 함께 철학, 정신분석학, 문예비평, 마르크시즘 등의 분야에서 핵심 화두로 자리 잡으며 20세기를 다양한 인문학적 담론을 꽃 피게 하는 계기가 된다.

반면 그의 기의(시니피에)이론은 청각영상으로 설명되었던 기표와 달리, 이것이 구체적 개념을 말하는 것인지, 개념의 영상을 말하는 것인지 이론의 여지를 남겼다. 기표 이론은 훗날 코펜하겐 학파의 루이 열름슬레우를 비롯한 몇 몇을 제외하고는 이론적 불구의 영역으로 남아 오히려 많은 구조주의자들이 소쉬르의 기표마저 오해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텍스트의 모호함과 불균형, 그리고 소쉬르 본인의 소극적 행보, 적은 저작에도 불구하고 소쉬르는 한 언어학자를 넘어 실존주의를 잇는 20세기의 새로운 사상적 주류로 자리매김된, 구조주의의 태반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 소쉬르를 더 알고 싶다면

소쉬르의 저서는 제자 그룹이 받아 적고 편집해 출판한 <일반언어학 강의> 단 한 권만 남아 있었다. 1985년 오원교 번역(형설출판사)으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뒤 1990년대 최승언 번역(민음사)으로 다시 출간됐다. 이 책은 소쉬르의 강의를 제자들이 받아 적은 것을 다시 다른 제자들이 편집한 것이다. 책의 가치와 독창성으로 보면 소쉬르의 것이라는 점이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내용의 난해함이나 구성의 불균형 같은 문제들이 소쉬르 본인 탓인지, 필기한 제자 탓인지, 편집자 탓인지 알 수 없다. 다행히 1990년대 들어 발견된 한 뭉치의 수고(手稿)가 소쉬르 연구가들에게는 메시아와 같은 빛을 주기도 했다. 소쉬르의 수고는 단행본으로 출간됐으며 국내에도 <일반언어학 노트>(인간사랑)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소쉬르의 신비주의적 모습들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소쉬르>(김방한/민음사)를 추천할 만하다. 또한 그의 언어학뿐만 아니라 기호학, 아나그람 연구, 신화학에 걸친 다양한 학문적 파노라마를 보고 싶으면 국내 소쉬르 연구의 권위자인 김성도 교수의 <로고스에서 뮈토스까지, 소쉬르 사상의 새로운 지평>(한길사)도 권하고 싶다.


■ 시리즈 목차

I. 왜 20세기 사상인가

II. 현대사상의 뿌리들 
① 카를 마르크스 : 변증법, 프락시스 
② 프레드리히 니체 : 반이데아, 영원회귀 
③ 지그문트 프로이트 : 무의식, 욕망 
④ 페르디낭 드 소쉬르 : 구조, 언어

III. 인식과 관념(Homo loquens)

IV. 아트(art)혁명, 노동과 여가(Homo faber)

V. 자아, 주체, 사회(Homo politicus)

VI. 욕망의 꽃, 윤리(Homo ethicus)

VII. 좌담 : 20세기 사상 시리즈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