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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정보화 사회 연 ‘인공지능’의 아버지-앨런 튜링

소한마리-화절령- 2012. 4. 22. 13:39

지식정보화 사회 연 ‘인공지능’의 아버지

박정일 |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
 
ㆍ앨런 튜링 (1912~1954)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사회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일어난 정보혁명을 거쳐 도래했다. 그 이전에는 산업화 사회였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후기 산업화 사회’ ‘탈산업화 사회’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용어들은 싹 자취를 감추고 현재 21세기는 명실상부한 지식정보화 사회인 것이다. 정보혁명을 이끈 핵심 주역은 다름 아닌 컴퓨터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누가 발명했을까? 전화는 벨이, 비행기는 라이트 형제가, 축음기는 에디슨이, 엘리베이터는 오티스가 발명했다고들 말한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혹자는 컴퓨터가 전자기계이므로 전자공학자가 발명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결코 어느 한 사람만으로 대답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컴퓨터라는 이 강력한 기계가 탄생하기까지는 수많은 과학자, 공학자, 철학자, 수학자들의 노력이 있었으며 현대 컴퓨터는 그러한 모든 노력들의 합작품이요,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대 컴퓨터의 가장 핵심적이고 직접적인 아이디어를 창안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다. 앨런 튜링이다.

튜링은 괴델과 함께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대표하는 100인의 사상가 목록에 오른 단 두 명의 수학자이다. 튜링과 괴델은 20세기 수학과 논리학의 발전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립된 착상들이 현대 컴퓨터의 발명과 직결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컴퓨터를 발명하게 했던 그 핵심적인 착상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그 핵심 아이디어를 ‘튜링 기계’, 더 나아가 ‘보편 튜링 기계’라고 부른다. 요컨대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마우스를 클릭할 때 우리는 바로 보편 튜링 기계의 화신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튜링은 1954년 그의 나이 42세 때 자살을 했다. 그는 동성애 사건에 연루되어 극심한 모멸감과 굴욕감 속에서 청산가리에 담가놓았던 사과를 한 입 먹고 자살했다. 그의 비극적인 결말은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 애플의 로고를 연상케 한다. 그 로고는 가만히 살펴보면 오른쪽으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다. 또 애플의 로고는 빨간 사과, 검은 사과도 있지만 예전에는 무지개색 사과였다. 무지개색은 동성애를 상징한다. 애플의 로고가 현대 컴퓨터의 핵심 아이디어를 창안한 사람의 죽음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기막히다.

자살하기 2년 반 전인 1951년 겨울, 튜링은 한 젊은 청년과 애정 행각을 벌인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징역 2년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중범죄였다. 청년은 튜링의 집에서 며칠을 보낸 후 돈을 훔쳐 달아난다. 청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튜링은 부자다. 그러니 돈 몇 푼은 대수가 아닐 것이다. 또 튜링은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왜 함께 있었는지 심문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징역 2년을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튜링 같은 천재 수학자가 어떤 사람인가!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동성애 사실을 밝혔으며 급기야 법정에까지 서게 된다. 담당 판사는 징역형 대신 1년 동안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을 투여받을 것을 제안했다. 결국 튜링은 주기적으로 에스트로겐을 투여받았고, 그 결과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목소리가 변했다. 부푼 가슴은 옷으로 가리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강연을 해야 했던 튜링에게 변해버린 목소리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튜링은 극심한 굴욕감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는 그의 극단적인 선택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인간은 아무리 성욕에 굶주렸다고 해도 자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젊은 베르테르와 같이 실연을 당하면 자살을 하는 존재이다. 튜링의 비극적 결말에는 더 중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의 발명과 관련된 튜링의 업적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야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튜링이 사망한 해가 1954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뭔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컴퓨터의 발명과 관련된 튜링의 업적은 서양에서조차 30년 넘게 은폐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떻게 30년 이상 그의 업적이 철저하게 은폐되었던 것일까?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기에서 자신의 조국인 영국을 구한 영웅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는 튜링과 처칠이 있었다고나 할까. 당시 영국의 입장에서는 독일 군대의 암호 해독이 국가의 존립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과 대륙에서 영국으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는 선박을 독일의 잠수함이 어뢰를 쏘아 모조리 격침시키고 있었다. 독일 잠수함과 독일 사령부 간의 통신 암호를 해독하지 못하면 영국은 말 그대로 굶어 죽어야 할 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국으로서는 독일 군대의 암호 해독 작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튜링은 이러한 독일군의 암호 해독 작업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해낸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서방세계는 냉전체제로 전환된다. 영국 정부는 튜링이 소련으로 넘어가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왜냐하면 튜링은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아주 많은 국가 기밀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암호 해독 기술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튜링이 암호 해독 작업을 했다는 것, 컴퓨터 발명에 관여했다는 것은 철저하게 은폐되고, 영국 정보기관은 튜링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조국을 구했다는 튜링의 긍지와 자부심은 이렇게 탄압과 감시로 얼룩지며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튜링은 암호 해독 과정에서 자신의 위대한 착상을 응용해 컴퓨터 발명을 모색했다. 그 착상이란 앞에서 지적했듯이, ‘튜링 기계’와 ‘보편 튜링 기계’이다. 그렇다면 튜링 기계란 무엇일까? 튜링 기계는 튜링이 구성한 수학적인 기계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계산 기계이다. 튜링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계산을 수행하는지를 관찰한 후, 계산의 본질적 요소를 추출해 재구성함으로써 튜링 기계를 구성해냈다. 요컨대 튜링 기계는 인간이 계산하는 과정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튜링 기계에 어떤 입력 값이 주어질 때 그 기계가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알 수 있고 이를 흉내 낼 수 있다. 이렇게 튜링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 수 있고 흉내 낼 수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다시 본떠서 만든 것이 ‘보편 튜링 기계’이다. 다시 말해 보편 튜링 기계는 튜링 기계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튜링 기계로, 다른 어떤 튜링 기계라도 흉내 낼 수 있는 기계이다.

현대 컴퓨터는 튜링 기계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반드시 보편 튜링 기계를 거론해야만 설명될 수 있다. 보편 튜링 기계라는 프로그램은 어떤 임의의 튜링 기계의 프로그램도 모두 흉내 낼 수 있다. 이는 보편 튜링 기계라는 프로그램이 하나만 있으면 이 프로그램에서 다른 어떤 프로그램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 컴퓨터에서 운영체계와 중앙처리장치(CPU)는 보편 튜링 기계를 구현한 것으로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다른 모든 프로그램을 적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 컴퓨터는 보편 튜링 기계의 이념을 구현한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것이다.

계산과 정보처리에 관한 한, 우리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편 튜링 기계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대한 철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떤 기계가 모두 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과연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튜링은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보편 튜링 기계는 계산과 정보처리에 관한 한, 우리 자신을 흉내 낼 수 있으며, 이를 첨단공학에서 풍부하게 구현하면 그 기계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으며, 튜링을 인공지능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튜링을 더 알고 싶다면

현대 컴퓨터의 발명과 관련된 튜링의 업적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 출판된 튜링 관련 저작은 소수에 불과하다.

튜링의 업적은 미국 사회에서도 1987년 이후에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학자는 마틴 데이비스이다. 따라서 그의 저서 <수학자, 컴퓨터를 발명하다: 라이프니츠에서 튜링까지>(마틴 데이비스 지음, 박정일·장영태 옮김, 지식의풍경, 2005)는 튜링 관련 저작으로는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라이프니츠의 ‘보편 문자’로부터 튜링의 ‘보편 튜링 기계’로 나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대단히 명쾌하게 해명하고 있다.

튜링에 초점을 맞추어 저술된 책으로는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앨런 튜링과 컴퓨터의 발명>(데이비드 리비트 지음, 고중숙 옮김, 승산, 2008)이 있다. 이 저서는 튜링을 중심으로 수학, 논리학, 철학 등의 관련된 문제들과 그의 삶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수학과 논리학, 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있어야 순조롭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출판된 책으로 <추상적 사유의 위대한 힘: 튜링&괴델>(박정일 지음, 김영사, 2010)을 추천한다. 이 책은 튜링과 괴델이라는 두 천재 수학자를 중심으로 컴퓨터의 기원과 그 수학적 원리를 해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