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는 정말 좌파 테러리스트를 옹호했을까
경향신문 | 백승찬 기자 | 입력 2013.02.08 20:39
사회주의 철학자는 좌파 테러리스트를 옹호했을까.
...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수감 중이던 독일 적군파 수장 안드레아스 바더(1943~1977)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39년 만에 밝혀졌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974년 12월4일 있었던 사르트르와 바더 사이의 대화록을 입수해 지난 6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 공개했다.
당시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여론은 사르트르에 비판적이었다. 극좌파 무장단체인 적군파는 주요 요인을 납치·암살하거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투쟁 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세계적인 철학자 사르트르가 바더를 만난 사실 자체...가 극한투쟁 방식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쳤다. 실제 사르트르는 면회 이후 독일 교도소의 열악한 시설을 성토했다.
그러나 당시 바더가 수감된 교도소는 텔레비전, 도서관까지 갖춘 신식 건물이었다. 둘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은 두 차례의 심장 발작 이후 쇠약해진 69세의 사르트르가 정세 판단 능력과 총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나치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적이 있는 사르트르가 서독을 "나치 독일의 계승자"로, 적군파를 레지스탕스로 여겨 호의적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는 사르트르와 바더의 냉랭했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사르트르는 무장투쟁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바더를 만났으나 오히려 실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더가 "독일 적군파는 합법과 불법 양 측면의 소규모 그룹으로 분화돼 성장하고 있다"고 하자 사르트르는 "그런 행동은 브라질에선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일에선 아니다"라고 답했다. "(독일에는) 브라질과 같은 형태의 프롤레타리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역을 사이에 둔 둘의 대화는 시종 어긋났다. 바더가 사회주의, 자본주의, 독재 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사르트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르트르가 추가 질문을 해도 바더는 같은 답을 반복하거나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넘어갔다. 사르트르는 서독에서 적군파의 정치적 행동은 "아무런 반향이 없다"고 지적했다. 바더가 프랑스에서도 무장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자 사르트르는 "테러리즘은 프랑스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훗날 사르트르는 바더가 "꼴통"이었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더 역시 동지들에게 사르트르가 "늙은이 같다"고 전했다.
면회에 배석한 교도관은 문서에 "사르트르가 적군파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바더는 실망하고 당황한 듯 보인다"고 적었다. 둘의 대화 시간은 딱 60분이었다.
<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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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대 6인의 전쟁.” 70년대 서독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테러전에 대해 프랑스의 좌파 실존철학자 샤르트르가 한 말이다. 엇그제 신문에 샤르트르가 74년 말 안드레아스 바더를 감옥소로 면회를 가서 나눈 대화록이 공개되어 샤르트르의 적군파 지지논란에 일정한 가닥을 그었다. 요컨대 샤르트르는 알려진 것과 달리 적군파의 테러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를 만류하고 노선을 바꿀 것을 권유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시 샤르트르가 이들을 면회하고 나온 뒤 대화록이 공개되지 않아 샤르트르가 마치 이들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양 전해져서 서독 헌법보호청(국내정보수사기관)을 비롯한 서독과 유럽의 보수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는 샤르트르가 바더에게 무장투쟁을 중단하도록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바더가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샤르트르로서는 당연한 권고였다고 생각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68혁명이 좌절되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진영의 세계지배는 더욱 강화되는 상황에서 일단의 젊은이들이 무장투쟁에 나선 결기나 심리적 구조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무모한 싸움에 나선 이들을 대책없이 부추길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 나라, 즉 한국에서 일단의 좌파 그룹이 적군파 정도의 치열함이나 혁명적 투신은 없고 컴퓨터를 이용한 투표 조작과 같은 잇속만 밝히는 타락성보다는 훨씬 더 진지한 그들의 투쟁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여하튼 40여년이 지난 적군파의 투쟁을 떠올려 나름대로 폭발성 강했던 68혁명의 여운을 느꼈던 세대로서 12월 19일의 좌절을 곱씹으며 새삼스레 그들의 치열했던 정신만은 되새기고 싶다.더 보기 더 보기
경향신문 | 백승찬 기자 | 입력 2013.02.08 20:39
사회주의 철학자는 좌파 테러리스트를 옹호했을까.
...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가 수감 중이던 독일 적군파 수장 안드레아스 바더(1943~1977)와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 39년 만에 밝혀졌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1974년 12월4일 있었던 사르트르와 바더 사이의 대화록을 입수해 지난 6일(현지시간) 온라인판에 공개했다.
당시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여론은 사르트르에 비판적이었다. 극좌파 무장단체인 적군파는 주요 요인을 납치·암살하거나 공공시설을 파괴하는 투쟁 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세계적인 철학자 사르트르가 바더를 만난 사실 자체...가 극한투쟁 방식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쳤다. 실제 사르트르는 면회 이후 독일 교도소의 열악한 시설을 성토했다.
그러나 당시 바더가 수감된 교도소는 텔레비전, 도서관까지 갖춘 신식 건물이었다. 둘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론은 두 차례의 심장 발작 이후 쇠약해진 69세의 사르트르가 정세 판단 능력과 총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나치 독일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적이 있는 사르트르가 서독을 "나치 독일의 계승자"로, 적군파를 레지스탕스로 여겨 호의적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는 사르트르와 바더의 냉랭했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사르트르는 무장투쟁을 중단하라고 설득하기 위해 바더를 만났으나 오히려 실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바더가 "독일 적군파는 합법과 불법 양 측면의 소규모 그룹으로 분화돼 성장하고 있다"고 하자 사르트르는 "그런 행동은 브라질에선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일에선 아니다"라고 답했다. "(독일에는) 브라질과 같은 형태의 프롤레타리아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역을 사이에 둔 둘의 대화는 시종 어긋났다. 바더가 사회주의, 자본주의, 독재 등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사르트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르트르가 추가 질문을 해도 바더는 같은 답을 반복하거나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넘어갔다. 사르트르는 서독에서 적군파의 정치적 행동은 "아무런 반향이 없다"고 지적했다. 바더가 프랑스에서도 무장단체를 조직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자 사르트르는 "테러리즘은 프랑스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고 답했다.
훗날 사르트르는 바더가 "꼴통"이었다고 지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더 역시 동지들에게 사르트르가 "늙은이 같다"고 전했다.
면회에 배석한 교도관은 문서에 "사르트르가 적군파의 행동을 거리낌 없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바더는 실망하고 당황한 듯 보인다"고 적었다. 둘의 대화 시간은 딱 60분이었다.
<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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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만대 6인의 전쟁.” 70년대 서독 적군파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테러전에 대해 프랑스의 좌파 실존철학자 샤르트르가 한 말이다. 엇그제 신문에 샤르트르가 74년 말 안드레아스 바더를 감옥소로 면회를 가서 나눈 대화록이 공개되어 샤르트르의 적군파 지지논란에 일정한 가닥을 그었다. 요컨대 샤르트르는 알려진 것과 달리 적군파의 테러를 지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를 만류하고 노선을 바꿀 것을 권유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당시 샤르트르가 이들을 면회하고 나온 뒤 대화록이 공개되지 않아 샤르트르가 마치 이들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양 전해져서 서독 헌법보호청(국내정보수사기관)을 비롯한 서독과 유럽의 보수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대화록에는 샤르트르가 바더에게 무장투쟁을 중단하도록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바더가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샤르트르로서는 당연한 권고였다고 생각된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68혁명이 좌절되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진영의 세계지배는 더욱 강화되는 상황에서 일단의 젊은이들이 무장투쟁에 나선 결기나 심리적 구조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무모한 싸움에 나선 이들을 대책없이 부추길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이 나라, 즉 한국에서 일단의 좌파 그룹이 적군파 정도의 치열함이나 혁명적 투신은 없고 컴퓨터를 이용한 투표 조작과 같은 잇속만 밝히는 타락성보다는 훨씬 더 진지한 그들의 투쟁에 대해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여하튼 40여년이 지난 적군파의 투쟁을 떠올려 나름대로 폭발성 강했던 68혁명의 여운을 느꼈던 세대로서 12월 19일의 좌절을 곱씹으며 새삼스레 그들의 치열했던 정신만은 되새기고 싶다.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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