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주도하는 건 자본이 아니라 노동
ㆍ안토니오 네그리 (1933 ~ )
1963년, 서른 살에 네그리는 이탈리아 사회당을 탈당했다. 그것은 사회당이 기독민주당과 연합하여 중도좌파정부를 구성한 것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었다. 그는 부인 파올라 메오,마시모 카치아리와 함께 마르게라 항의 산업복합단지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본> 세미나를 조직한다. 이 선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상적 전환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당 형태가 더 이상 저항과 혁명을 조직하는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그는 이후 당으로 결코 복귀하지 않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 형태는 공장과 국가라는 부르주아 조직형태를 복기하는 일종의 권력형태라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전환이 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자본 중심적 접근에서 노동 중심적 접근으로의 전환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해석들은 노동계급의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역사를 주도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라고 보았고그 결과 노동자는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나 희생자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네그리는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부각시키면서, 자본이 역사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역사를 주도한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오페라이스모’(operaismo)라는 독특한 노동운동의 흐름을 창출했는데, 노동강제에 대한 거부를 전략적 축으로 삼는 이 운동의 발전은 노동운동 속에서 68혁명을 예비한 획기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네그리가 마흔 살이 되는 1973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조차 ‘역사적 대타협’이라는 이름 하에 기독민주당과 사회당으로 구성된 좌파연립정부에 합류한다. 68혁명에서 출현한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들은 좌파 정당들과 노동운동에 심각한 도전을 제시했고 공산당의 이러한 선택은 이 도전에 대한 권력화 방식의 대응이었다. 여성, 학생, 실업자 등의 주체성의 부상과 공산당의 권력화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오페라이스모 집단들에게도 중대한 도전을 제시했다. 새로운 주체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역사적 타협인가 테러인가라는 양자택일로 좁히는 경향이 있었다. 네그리는 이 억압적 문제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노동 개념을 공장적 문맥을 넘어 사회적 문맥에서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의 제기로 읽었다. 여성은 가사노동자이며, 학생은 지식노동자이고 실업자는 배제된 노동자이다. 노동은 사회 속에 산포하면서 복합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네그리는 이렇게 자본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 어떤 외부성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지상황 속에서 노동이 사회 전체를 조형하는 힘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사태를 읽어냈다. 노동의 자율적 힘은 잠재적으로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는 판단에 입각해 그는 ‘노동자의 자율’을 조직하고 자율의 운동을 확장시키는 데 참가했다.
쉰 살이 되던 1983년 9월19일에 네그리는 프랑스로 밀입국한다. 이탈리아 하원이 그의 면책특권 철회를 승인하기 하루 전이었고, 1979년 7월7일 체포되었다가 1983년 옥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석방된 지 2개월여 만이었다. 그의 망명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 이 망명을 통해 네그리는, 역사적 타협을 거부하는 자율운동이 테러리즘과 혼동되고 있는 상황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고 이 정치적 조건을 극복할 필요성을 과제로 설정한다. 제도로서의 당 형태에 대한 거부가 투쟁과 조직의 대안적 형태를 발명하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노동거부는 필요했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 수준에서 노동을 조직할 적극적 대안이 부재하다면 그 거부는 테러리즘과 식별불가능하게 되고 만다. 네그리는 이제 가타리, 들뢰즈, 부탕 등 프랑스 철학자들과의 철학적 정치적 교류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진한다. ‘전 미래’ 지의 창간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장치였다.
예순 살을 전후하여 맺어진 이 작업의 결실은 노동을 정치경제학적 범주를 넘어 존재론적 범주로 이해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가지 작업이 그것을 보여준다. 하나는 1992년 <제헌권력>의 출간이고 또 하나는 1994년 마이클 하트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노동>을 펴낸 것이다. <제헌권력>에서 네그리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어져온 혁명의 역사를 노동의 존재론적 구성역량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서술한다. 그리고 국가형태의 전환도 노동의 그 존재론적 역량의 전개에 의해 촉발된다는 생각은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전개된다. 1991년 사회주의 해체와 부시에 의한 새로운 세계질서 선언은 네그리로 하여금 국가주권에서 제국주권으로의 이행이 도래했다는 판단을 갖게 만든다.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전 지구적 주권형태인 제국이 자신의 질서를 다중에게 강요하기 위한 내전으로 파악하면서 네그리는 하트와 함께 <제국>의 집필을 시작하여 8년여의 작업 끝인 2000년에 출간한다. <제국>은 자본주의가 세계시장을 실제적으로 구축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통합되었다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혁명은 이제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사유된다. 네그리는 일국혁명의 관점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전통적 아우토노미아의 혁신을 위해서는 잔존하는 1970년대의 운동지형을 끝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1997년 7월 귀국을 결행한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좌파정당은 네그리를 사면하기는커녕 5년이 넘는 실형을 부과한다. 이 시기를 네그리는 제국에 대항할 새로운 주체성의 형상을 그려내고 그 주체성이 취할 수 있는 조직적 가능성과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바친다.
그가 구금과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은, 일흔 살이 되는 2003년이었다. 바로 이듬해에 출간된 책, <다중>에서 그는 새로운 주체성을 다중이라고 명명하고, 이 이름이 주권적 동일성의 구축이 아니라 존재론적 공통성의 실현으로 될 방법을 모색한다. 다중의 존재론적 구성능력인 노동은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지적·정보적·정동적·소통적 노동, 요컨대 인지노동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거부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었고 삶정치적 혁명의 추동력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네그리는 당 형태를 대체할 정치적 조직형태로 네트워크 형태를 제안한다. 이러한 생각은 1999년 이후 활성화된 대안세계화 투쟁에 잠재된 힘을 이론적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들뢰즈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네그리의 사유에서 가장 명확한 표현을 얻었다’는 니콜라스 소번의 단언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내년이면 여든을 맞는 그에게 커다란 역사적 도전들이 던져져 있다. 그가 ‘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반발’이라고 명명했던 9·11의 굉음, 즉 세계무역기구와 펜타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는 이미 다른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타종소리와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7년 뒤인 2008년 9월에는 월스트리트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이 전 세계 금융가의 연쇄붕괴를 가져왔다. 2011년에 도래한 재정위기는 2008년 위기의 직접적 연속이다. 제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이 역사적 시간을 무엇이 대체할 것인가? 네그리의 생각은 분명하다. 그는 2008년에 출간한 <공통체>에서 그람시가 제시한 새로운 군주의 표상을 가져와 ‘다중의 군주되기’를 제안한다. 그러나 다중의 군주되기는 결코 사회의 상부에 자신을 권력으로 정립하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반란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교차하는 과정으로서의 혁명을 민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행복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쓰던 시기에는 단지 남미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 전조에 불과했던 이 혁명적 가능성이 2011년에는 남미를 넘어 아랍, 유럽, 북미 등지를 휩쓸기 시작했다. 네그리는 이 일련의 혁명적 과정들이 대안세계화 투쟁의 흐름을 잇는 것으로 보면서 그것들은 단순히 경제적 불만의 표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근대국가들의 착취적 헌법을 뒷받침해온 낡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끝내고 집단적 행복추구를 달성할 실질적인 민주주의 헌법을 발명하려는 다중형식의 정치적 시도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그리의 삶과 사상의 이 극적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라는 냉정한 타산보다 부단한 역사적 위기 속에서, 그 위기에 대항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사상적·실천적 진화의 역량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조정환 | 다중지성의정원 대표
1963년, 서른 살에 네그리는 이탈리아 사회당을 탈당했다. 그것은 사회당이 기독민주당과 연합하여 중도좌파정부를 구성한 것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었다. 그는 부인 파올라 메오,마시모 카치아리와 함께 마르게라 항의 산업복합단지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본> 세미나를 조직한다. 이 선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상적 전환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당 형태가 더 이상 저항과 혁명을 조직하는 수단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그는 이후 당으로 결코 복귀하지 않았고 새로운 당을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 형태는 공장과 국가라는 부르주아 조직형태를 복기하는 일종의 권력형태라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근본적인 전환이 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자본 중심적 접근에서 노동 중심적 접근으로의 전환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해석들은 노동계급의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역사를 주도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라고 보았고그 결과 노동자는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나 희생자로 설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네그리는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부각시키면서, 자본이 역사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역사를 주도한다는 생각을 제시했다. 이러한 생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오페라이스모’(operaismo)라는 독특한 노동운동의 흐름을 창출했는데, 노동강제에 대한 거부를 전략적 축으로 삼는 이 운동의 발전은 노동운동 속에서 68혁명을 예비한 획기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네그리가 마흔 살이 되는 1973년에는 이탈리아 공산당조차 ‘역사적 대타협’이라는 이름 하에 기독민주당과 사회당으로 구성된 좌파연립정부에 합류한다. 68혁명에서 출현한 새로운 사회적 주체성들은 좌파 정당들과 노동운동에 심각한 도전을 제시했고 공산당의 이러한 선택은 이 도전에 대한 권력화 방식의 대응이었다. 여성, 학생, 실업자 등의 주체성의 부상과 공산당의 권력화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오페라이스모 집단들에게도 중대한 도전을 제시했다. 새로운 주체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를 역사적 타협인가 테러인가라는 양자택일로 좁히는 경향이 있었다. 네그리는 이 억압적 문제 틀을 거부하고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노동 개념을 공장적 문맥을 넘어 사회적 문맥에서 재해석해야 할 필요성의 제기로 읽었다. 여성은 가사노동자이며, 학생은 지식노동자이고 실업자는 배제된 노동자이다. 노동은 사회 속에 산포하면서 복합적인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네그리는 이렇게 자본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면서 어떤 외부성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있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인지상황 속에서 노동이 사회 전체를 조형하는 힘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사태를 읽어냈다. 노동의 자율적 힘은 잠재적으로는 더욱 증대되고 있다는 판단에 입각해 그는 ‘노동자의 자율’을 조직하고 자율의 운동을 확장시키는 데 참가했다.
예순 살을 전후하여 맺어진 이 작업의 결실은 노동을 정치경제학적 범주를 넘어 존재론적 범주로 이해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가지 작업이 그것을 보여준다. 하나는 1992년 <제헌권력>의 출간이고 또 하나는 1994년 마이클 하트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노동>을 펴낸 것이다. <제헌권력>에서 네그리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로 이어져온 혁명의 역사를 노동의 존재론적 구성역량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서술한다. 그리고 국가형태의 전환도 노동의 그 존재론적 역량의 전개에 의해 촉발된다는 생각은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전개된다. 1991년 사회주의 해체와 부시에 의한 새로운 세계질서 선언은 네그리로 하여금 국가주권에서 제국주권으로의 이행이 도래했다는 판단을 갖게 만든다. 제1차 이라크 전쟁을 전 지구적 주권형태인 제국이 자신의 질서를 다중에게 강요하기 위한 내전으로 파악하면서 네그리는 하트와 함께 <제국>의 집필을 시작하여 8년여의 작업 끝인 2000년에 출간한다. <제국>은 자본주의가 세계시장을 실제적으로 구축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통합되었다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혁명은 이제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사유된다. 네그리는 일국혁명의 관점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한 전통적 아우토노미아의 혁신을 위해서는 잔존하는 1970년대의 운동지형을 끝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1997년 7월 귀국을 결행한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좌파정당은 네그리를 사면하기는커녕 5년이 넘는 실형을 부과한다. 이 시기를 네그리는 제국에 대항할 새로운 주체성의 형상을 그려내고 그 주체성이 취할 수 있는 조직적 가능성과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바친다.
그가 구금과 가택연금에서 완전히 풀려난 것은, 일흔 살이 되는 2003년이었다. 바로 이듬해에 출간된 책, <다중>에서 그는 새로운 주체성을 다중이라고 명명하고, 이 이름이 주권적 동일성의 구축이 아니라 존재론적 공통성의 실현으로 될 방법을 모색한다. 다중의 존재론적 구성능력인 노동은 육체노동만이 아니라 지적·정보적·정동적·소통적 노동, 요컨대 인지노동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거부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없었고 삶정치적 혁명의 추동력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네그리는 당 형태를 대체할 정치적 조직형태로 네트워크 형태를 제안한다. 이러한 생각은 1999년 이후 활성화된 대안세계화 투쟁에 잠재된 힘을 이론적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대안세계화 운동은 들뢰즈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네그리의 사유에서 가장 명확한 표현을 얻었다’는 니콜라스 소번의 단언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내년이면 여든을 맞는 그에게 커다란 역사적 도전들이 던져져 있다. 그가 ‘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반발’이라고 명명했던 9·11의 굉음, 즉 세계무역기구와 펜타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는 이미 다른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타종소리와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7년 뒤인 2008년 9월에는 월스트리트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이 전 세계 금융가의 연쇄붕괴를 가져왔다. 2011년에 도래한 재정위기는 2008년 위기의 직접적 연속이다. 제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이 역사적 시간을 무엇이 대체할 것인가? 네그리의 생각은 분명하다. 그는 2008년에 출간한 <공통체>에서 그람시가 제시한 새로운 군주의 표상을 가져와 ‘다중의 군주되기’를 제안한다. 그러나 다중의 군주되기는 결코 사회의 상부에 자신을 권력으로 정립하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반란들이 서로 수평적으로 교차하는 과정으로서의 혁명을 민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행복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쓰던 시기에는 단지 남미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 전조에 불과했던 이 혁명적 가능성이 2011년에는 남미를 넘어 아랍, 유럽, 북미 등지를 휩쓸기 시작했다. 네그리는 이 일련의 혁명적 과정들이 대안세계화 투쟁의 흐름을 잇는 것으로 보면서 그것들은 단순히 경제적 불만의 표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근대국가들의 착취적 헌법을 뒷받침해온 낡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끝내고 집단적 행복추구를 달성할 실질적인 민주주의 헌법을 발명하려는 다중형식의 정치적 시도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그리의 삶과 사상의 이 극적 진화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라는 냉정한 타산보다 부단한 역사적 위기 속에서, 그 위기에 대항하며 그것을 넘어서는 사상적·실천적 진화의 역량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조정환 | 다중지성의정원 대표
네그리를 더 알고 싶다면
네그리의 저작에서 필수적인 것은 물론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인 <제국>, <다중>, <공통체> 삼부작이다.
이 삼부작은 권력의 구성, 혁명적 주체성의 구성, 그리고 그 주체의 정치적 과제 등을 완결된 형태로 제시한다. 그런데 네그리가 도달한 지점에 대한 독서만으로는 그의 생각의 내밀한 올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마이클 하트 지음)는 주로 네그리의 초기 사상 형성 과정을,그리고 <아우또노미아>(조정환 지음)는 주로 중·후기 사상의 형성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혁명의 만회>는 네그리의 혁명적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저작으로 그의 삶을 지배한 실천적 문제설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타리와의 공저인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유가 만나서 이루는 멋진 이론적 풍경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생각을 급진적 방식으로 되살려 내려는 그의 노력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에서 정초되고 <시간의 구성>과 <혁명의 시간> 등 거의 모든 저작에서 지속된다. <예술과 다중>은 사회이론과 혁명이론을 미학으로 확장하는 독특한 저작이다.
네그리의 저작에서 필수적인 것은 물론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인 <제국>, <다중>, <공통체> 삼부작이다.
이 삼부작은 권력의 구성, 혁명적 주체성의 구성, 그리고 그 주체의 정치적 과제 등을 완결된 형태로 제시한다. 그런데 네그리가 도달한 지점에 대한 독서만으로는 그의 생각의 내밀한 올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네그리 사상의 진화>(마이클 하트 지음)는 주로 네그리의 초기 사상 형성 과정을,그리고 <아우또노미아>(조정환 지음)는 주로 중·후기 사상의 형성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혁명의 만회>는 네그리의 혁명적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저작으로 그의 삶을 지배한 실천적 문제설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타리와의 공저인 <자유의 새로운 공간>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사유가 만나서 이루는 멋진 이론적 풍경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생각을 급진적 방식으로 되살려 내려는 그의 노력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마르크스>에서 정초되고 <시간의 구성>과 <혁명의 시간> 등 거의 모든 저작에서 지속된다. <예술과 다중>은 사회이론과 혁명이론을 미학으로 확장하는 독특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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