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연합정치
국제관계에서 어떤 강대국도 독자적인 힘만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는 없다. 지금은 쇠락하여 세계경제의 1/5 가량을 간신히 유지하며 천문학적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악화에, 국제 테러단체의 표적이 되는 등 동네북 신세가 된 미국은 세계경제의 3/4을 차지하며 세계의 경찰로 자처하던 때가 있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태환(兌換)정지가 선언된 1971년을 전후한 때까지 미국의 힘은 실로 막강하였다. 이러한 때에도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동맹 체제를 유지하며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수호하거나 관철하려 하였다. 나토처럼 엇비슷하게 대등해 보이는 동맹도 있고 한미, 미일동맹처럼 명백한 하위동맹도 있으나 베트남전이나 그라나다 침공을 비롯하여 어떤 경우에도 미국 단독으로 안보전선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국내정치도 다를 바 없다. 같은 정당 안으로 포괄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어떤 형태로든 이해를 달리하는 세력 간의 다양한 합종연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적인 정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간의 대연정(大聯政)이 종종 결성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자민당이나 기독교 사회연맹, 녹색당 같은 작은 정당과 소연정(小聯政)을 통해 정부가 구성된다. 미국의 민주당도 20세기 초부터 이어져 온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적이나마 미국사회의 진보적 정치기류를 일정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그의 전력을 볼 때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그래도 기업가출신의 실용주의자답게 최소한의 성과는 낼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취임 두 달도 안되어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이후 집권기간 내내 보여준 역사의식, 공공의식 결핍과 인간적 정치적 협량(狹量)에 정나미가 떨어진 나머지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연장에 진절머리를 내는 국민이 많아졌다.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보수독점 체제를 끊어 낼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지난 1987년 양김 단일화 실패이후 25년 만에 찾아 온 보혁(保革) 교체의 기회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1997년 김대중 김종필 연합, 즉 DJP연합으로 일컬어지는 이 나라 온건 진보진영과 보수일각의 연합정치에 이어, 2002년 불발된 노무현․정몽준 연합에 이은 문재인․안철수의 온건진보․온건보수연합의 성사를 앞두고 좋게 말하면 ‘밀당’이 심하게 이어지고 있고 제대로 말하면 한쪽의 몽니부리기로 변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들의 짜증지수를 높이고 있다. 이 연합이 바람직하게 성사될 경우 한국사회는 질적인 전환기를 맞아 개혁정권의 롱런을 통해 수평사회로 가는 큰 길을 열어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보수정권 연장이라는 악몽으로 이어지거나, 정체성 불명의 반쪽짜리 개혁과 끊임없는 정국불안으로 인해 가스통 할배들을 이용하여 수구세력이 준동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소동으로 돌출한,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열풍으로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는 2013년 체제로 나아가는 갈림길에서 한국 연합정치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가까이는 외환위기, 멀리는 박정희식 개발연대 이래 삶의 피로에 지친 대중들의 이른바 ‘로망’을 대변하는 안온하고 윤택한 삶을 실현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이후 고비마다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 또는 이벤트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며 정치적 위상을 높이거나 유지해 온 안철수 후보가 이제는 대중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명박 정권에 봉사하던 이들을 중용한 안후보가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민주당과 문재인 측 인사들을 구태로 모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일견 정상적인 정당 활동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민주당을 구태정치로 비판하고 새로운 정치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세력기반 확대를 위해 민주당 비주류 의원들을 접촉하는 등 그 자신 구태로 비칠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어쨌거나 위기에 봉착한 문․안 연합정치가 이해찬 대표와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사퇴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다수의 주요 인사들이 지난 시절 엄혹한 군사독재에 맞서며 고난을 감수해 왔던 상대측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바탕으로, 나아가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과 역사에 대한 엄숙한 책임의식으로 단일화를 성사시켜 정의롭고 평화로운 2013년 체제에 대한 기대를 되살려 주기를 소망한다. 문․안연합의 순조롭고 통 큰 성사로 한 달 후인 12월 19일 밤, 모두가 웃는 민주주의 승리의 날, 민생 승리의 날, 한반도 평화 승리의 날을 맛보기 기대한다.
황인오(전 부천시민사회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재작년(2012) 11월 대선을 앞두고 쓴 글로 최근의 이른바 통합신당 발기인 대회를 보며 다시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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